해로라는 단어가 참 아름다운 단어구나.
2019.07.13
그이의 방사선 치료가 33회인데, 다음 주 세 번이면 끝나기에 좋아하며 그이의 퇴원을 기다리고 있었다.
자기가 퇴원하면 내 간병인 노릇을 해주겠다고 큰소리를 쳤는데.....
산후조리하던 때 내 곁에 와서 추운 겨울에 덥다고 창문 열어놓고 잔 이 남자를 믿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믿어본다며 장난치고 놀고 있는데 어제 갑자기 얼굴에 경련이 세 번이나 찾아왔다.
한 두 번은 경련이 일면 시간이 지나 가라앉기도 하는데
저녁 먹는 중에 일어난 경련은 한 시간 가까이 계속되어 멈추질 않는다. 불안하고 걱정을 넘어 낙심하게 만들어서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경련이 일어나면, 말도 잘할 수가 없고, 꺽꺽 소리를 계속 내게 되는 데다, 뇌에 있는 종양들이 더 커져서 나빠지는 건가 싶으니 불안감이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안 울려고 해도 자꾸 눈물이 나니, 그이는 그 와중에도 자꾸 내 얼굴을 닦는다.
“치~다음 주에 퇴원하면 내 간병인 해준다더니 이렇게 반칙하기야? 나빴어~~”
라고 하니 경련하는 그 얼굴로 웃는다.
주말 밤이라 담당의사가 없기도 하고, 상태가 나빠질지도 모르니, 그냥 중환자실에서 주말을 보내는 게 좋겠다고 그런다. 일반실에 있는 것보다 나을 거 같다고 어제저녁 일곱 시 반 경에 중환자실로 그이를 보냈다.
준비물을 챙겨서 잠깐 부탁하고 들어가니 진정제를 많이 맞아선지 눈을 못 뜨는 그를 뒤로하고 나왔다.
일반병실에서 중환자실로 옮기면 병실의 짐도 다 빼야 한다. 친구에게 전화해 부탁해서 그이 입원실의 짐을 내 입원실로 옮기니 짐이 한가득이다.
정리를 다 해놓고, 우두커니 앉아 있으니 간호사 선생님들이 번갈아 와서 위로하고 간다. 커튼을 살짝 젖히고 고개를 내밀고
“괜찮으세요?” 조용히 묻고 가신다.
아침에 중환자실에서 연락이 왔다. 환자 분이 심심해하니 책과 안경과 눈약을 가져 다 달라고.
가서 얼굴 좀 볼 수 있나 물으니 안된다 그런다.
다시 내려와 과일 몇 가지랑 구운 달걀등을 챙기고 재경이와 같이 쪽지편지 써서 중환자실 간호사선생님에게 좀 전해달라 부탁하고 돌아오면서도 눈물이 또 났다.
함께 늙어가는 것을 당연히 여겼는데,
지하철에서 마주치는 노부부들을 보면서 내가 그분들을 부러워할 줄은 생각하지도 못했다.
건강하게 함께 늙어가는 것도 큰 복이고 진짜 감사할 일이다.
주말 내 중환자실에 있던 그이가 오늘 일반 병실로 돌아왔다.
중환자실에서는 침대 밖으로 나올 수가 없어 대소변을 침대에서 해결해야 하는 조건인지라 그게 너무나 싫었던 그이는 식사도 안 하고 물도 최소한으로만 마셨다. 수치스럽고, 의식이 있기 때문에 기저귀를 사용하는 건 더 끔찍하다고 먹는 것도 거부했다고 그런다.
엊저녁에 면회하러 들어갔다가 너무 속상하고 그이의 마음이 백 번 이해가 되는지라 울다 나왔다. 중환자실에 들어갔더니 오히려 전해질 수치는 더 나빠지고, 경련만 멎었지 식사와 변이 해결되지 않아 컨디션은 더 악화된 거 같았기에 빨리 일반실로 돌아오기만을 바랐다.
점심에 그이가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로 돌아온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놓였다.
중환자실에는 면회도 하루에 두 번뿐이라, 들어간 그이도, 바깥 병실에서 기다리고 있는 나도 애가 타지만, 그나마 위로가 되는 건 나도 입원 중이라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다.
내가 입원하기 전에 그냥 간병인으로 있을 때는 중환자실로 그이가 들어가면 나는 있을 곳이 없어 병원로비에서 밤새 기다리거나 성당의자에 누워있었던 적도 있었으니 말이다.
일반실로 돌아온 그는 점심에 밥 한 그릇 뚝딱 비우고 화장실도 다녀왔다. 먹고, 싸고, 자고의 가장 기본적인 문제가 해결되니 마음이 놓인다. 오래간만에 밥을 먹은 그는 어지럽다고 일찍 잠이 들어 재경에게 간호 부탁하고 난 내 병실로 내려왔다. 재경은 엄마 아빠 병실 오가는 중이다.
누가 툭 건들기만 해도 터지는 풍선처럼 주말 내내 오늘까지 내 몸 가득 눈물이 들어 있는 거 같았다.
병원 6,7층에서는 부부가 다 입원 중인 걸 아니 간호사, 의사 선생님들 모두 한 번씩 들여다보며 안부를 묻는데 안부인사받는 중에는 웃으면서,
“괜찮아요~”라고 답 하지만 눈에서는 눈물이 절로 나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우리 처지가 본의 아니게 다른 병상 분들에게 희망이 되기도 하나보다.
“그래도 저 사람들 보다는 내 처지가 낫네.” 뭐 이런 느낌이다.
아침에 눈뜨면 그래도 살아 있음에 감사고
통증 느끼면 살아 있으니 느끼는구나 생각한다.
그이가 일반 병실로 와서 함께 눈 맞추고 웃어서 감사다.
"나 보고 싶었지?" 물으니
"당연하지!"라고 말한다.
"나도!"
이제 중환자실 고만 가~
안 날 줄 알았는데 새순이 나네.
다 죽은 줄 알았는데 파랗게
산천을 물들이네.
아픈 세상살이 이와 같아서
바닥인 줄 알았는데 더 내려가네.
다 내려간 줄 알았는데 창이 뚫리네.
겨우 열린 창 틈으로 먼 하늘 보며
때로는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감사,
살아 있어서 감사.
김재진 님의 살아 있어서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