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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솔은정 Apr 07. 2024

목소리는 안 나와도 마음은 나와.

술은 못 마셔도 살루떼는 꿈꾸듯이

2019.07.16


 내일이면 수술 한 지 딱 3주가 되는 날인데.  목소리가 돌아오질 않는다.  

노래는 부를 수도 없고(이러니 평소에 내가 엄청 노래를 잘 부른 느낌이지만, 노래방에서 환영받는 완벽한 음치다)

 세 문장 이상의 이야기를 하면 목이 더 잠긴다.

 열두 시간 의 긴  수술 덕분에  마취하는 동안 기도에 관을 삽입해서 그런다는데 생각보다 목소리가 잘 안 돌아온다.

 그래서 아주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해야만 한다. 이게 성대에 더 무리라고 그러면서 시간이 걸리니 그냥 기다리라고만 하신다.

네.. 기다려야죠. 제가 별 수 있나요

말하기 좋아하는 나로선 하루에 4500 단어는 더 써야 할건데, 450 단어 쓰고 나면 이미 목소리는 아웃이다.  

 그이도 수술 이후 목소리가 잠기고 더 느릿느릿.

나도 작은 목소리에 느릿느릿.

 (서로 못 알아들으면 그냥 패스)

귀도 어두워진 느낌인데 목소리까지 안 나와 가끔 필담을 나눌 때도 있다.

함께 늙으면 이럴 거라는 걸 미리 겪고 있는 느낌이다.

그이는 주 2회 언어 치료를 내려가서 받고 오는데 돌아오면 매일 함께 시집을 큰 소리로 읽고는 한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 이름이 너무 어려워서 자기는 읽기 너무 어렵다고 해서 선택한 시집이 읽기 좋고 편하고, 뜻도 마음에 와닿는 나태주 님의  시집이다.

말이 어눌해지고, 발음이 잘 나오지 않고 새는 느낌이라  재활 치료를 위해서는 자주 소리 내서

읽는 것이 좋기에 같이 연습 중이다. 시집을 읽기 전에 발성 연습 하듯이 혀 운동을 좀 하고

"갈날달랄말발살알잘찰칼탈팔할,

 각낙닥락막박삭악작착칵탁팍학."

이걸 한 세 번 반복하면 그이는 힘들다고 그런다.

혀 반쪽이 먹먹하고 둔한 느낌이라고,

왼쪽 뇌에 문제가 생겨 오른쪽 혀 부분과 성대 부분이 늘어져서 근육에 힘이 전혀 없다고 그런다.

이게 쉬운 거 같지만, 쉽지 않다.

열심히 연습하는 그이를 칭찬하면서 아나운서 시험도 보겠다고 해줬다.

언어재활치료사 선생님이 하시는 것보다 마누라가 내주는 숙제를 더 열심히 하는 착한 남편이다.

동서가 내게 말한 적이 있다.

"아주버님은 진짜 형님 말씀을 잘 들으시는데 비결이 뭐예요?"

"마누라가 무섭거나 이쁘거나, 둘 중 하나만 선택해!"

"아아! 형님은 무서우시구나! 전 그냥 이쁜 걸로 선택할래요!"

"응,, 평생 말 안 듣는 남편과 살아야겠네." 하며 웃었던 적이 있다.

멋지고 폼나는 모습만 보여주고 싶어 하는 그이는 병원에서도 매일 아침 면도를 하고,

머리도 감고, 나름 단장을 한다. 그리고 말도 아주 천천히 한다. 자신의 발음을 신경 쓰면서

"여보, 진짜 뇌수술받은 사람 같지 않게 말도 아주 진중하고 좋아. 발음이 매일 좋아지는 거 같아."

"칭찬 들으니 좋다."

병원에 있지만 둘이서 매일 아침 단장을 하고, 출근하는 사람 마냥 하루 일과를 잘 보내려고 한다.

7시 반에 아침밥이 오고 8시 무렵에 회진을  도는  시각이라,  우리는 그전에 다 씻고, 약까지 다 먹고, 단정한 모습으로 주치의 선생님의 회진을 기다린다.

나는 가끔 7층에서 신경외과 선생님을 더 많이 기다려 유방외과 선생님에게 핀잔을 많이 듣는다.

"제자리에 좀 계세요!"

"여기가 제 자리인 거 같아서요, 선생님."



   오늘 방사선과에서 치료받고 다시 병실로 돌아가는 그이와 엘리베이터 안에서

“여보, 난 이제 음주도 틀렸고, 가무도 틀렸어~. 이제 남은 건 정말 미모뿐인 거 같아.”

하는데. 휠체어 밀어주는 이송요원이  갑자기 막 웃는다.

(아마 안 웃으려고 참은 듯)

 여보는 나에게 느릿느릿

“우리 나으면 그래도 포도주 한 모금은 할 수 있을 거야.”

잘 걷지도 못하고 휠체어를 나란히 탄  부부가 목소리도

안 나오고 말도 어눌한데.

음주가무 이야기에 포도주 마실 생각을 하니. 웃겼겠지.


"여보야. 얼른 나아서 포도주 고르러 가자.  냄새만 맡아도 좋을 거야."

"샬루떼~"

챙! 와인잔 부딪는 소리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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