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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솔은정 Jun 16. 2024

함께, 같이 가

함께 사는 것은 매력적이고 아름다우며 

계속되는 여정이다. 여기엔 지켜야 할 

세 가지가 있다. 


"해도 될까요?"

"고마워요."

"미안해요."

프란치스코


2021.08

주말 아침이면 늘 천변을 산책하곤 한다. 

그이와  오늘 산책 중에 질문한 세 가지는

“당신이 가장 두려운 일은?”

“내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 아이들에게 기억되고 싶은 내 모습은?”

“내가 기억하는 배우자의 모습은?”

그가 두려워하는 건

"혼자 남겨지는 거." 

"아이들에게는 다정다감하고 자신들을 사랑하는 아빠"

"나를 많이 이해해 주고 사랑해 준 아내 "

그이와 산책하면서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얼굴 맞대고 이야기하는 것보다 같은 방향을 보면서

이야기하는 게 훨씬 더 부드럽게 이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두려워하는 건

"병에 걸려 아프게 되는 것." 

아파서 가족들에게 짐이 되는 모습을 생각하면 

싫고 두렵고 무서웠는데 그걸 가만히 바라볼 수 있게 되고 다독일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아이들에게 기억되고 싶은 모습은

"현명하고, 재미나고, 나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해 주던 엄마 "

내가 기억하는 그이의 모습은

"다정하고, 좋은 남편으로 인정받으려고 노력했던 남편" 


여보. 이야기 많이 나누자~^^

당신이 혼자라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같이 이야기 많이 하자.


 매주 월요일 아침이면 나는 그이를 회사에 출근을 시켜주고, 그이는 출퇴근 버스로 광주에 있는

어머니댁으로 퇴근을 해서 거기서 지내다가 금요일 오후가 되면 내가 그이를 데리러 갔다.

내가 항암이 끝나, 일도 다시 하면서 조금씩 바빠지기도 하고, 그이가 이제 운전을 조금씩 해도 자신이 있다는 말에 어느 순간 자연스레 그이가 운전을 시작하게 되었다.

 금요일 오후에 집에 들어온 그이가 기분이 안 좋아 보이는 것을 넘어서 불안하게 느껴졌다.

"무슨 일 있었어?"

"사고가 있었어. 아파트 주차장에서 주차하다가 오른쪽 백밀러를 다 깨 먹었어."

그이는 정말 운전을 잘했기에 아마도 그 실수가 엄청 크게 느껴졌나 보다 했다.

"놀랐겠다.. 고치면 되지!"

"아냐.. 나 눈이 잘 안 보여."

그이의 불안은 내게 더 크게 옮겨오지만, 나까지 덜덜 떨 수는 없다.

"어차피 병원에 가야 하니까, 사진도 찍어보고 확인해 보자."


그이와 함께 진료를 받으러 분당 서울대 병원에 올라가 사진을 찍고, 

진료 결과를 다학제에서 만난 선생님들에게서 들으려고 기다리는데 

한참 말없이 사진만 보시니 점점 긴장감이 더 나를 조여 온다.

"후두엽 쪽에 새로이 암세포가 보이네요."

"눈이 잘 안보이셨죠?"

 내 손을 잡고 있는 그이 손에 땀이 난다.

"치료가 가능할까요?"

"방사선 치료와 표적치료도 한 번 해봅시다."

"방사선 치료를 33회나 받았는데. 가능한가요?"

"네. 그 부위만이라도 좀 해보게요."

병원에서 나와 집으로 내려오는데  둘 다 말이 없다.

그이는 그이대로,

나는 나대로 생각이 너무나 많아서다.

"여보,, 휴직을 하고 치료에 전념해 보는 건 어떨까?"

오로지 복직만을 생각하고 달려왔던 시간을 생각하면, 다시 병원으로 돌아간다는 이 상황이

얼마나 힘들게 느껴질까 싶다. 온갖 상념들이 다 밀려온다.

잘 될 거라는 생각보다, 치료를 위해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할 일들이 뭔지가 더 많다.



2021.09

그이가 휴직을 받아들이고, 치료에 전념해 보기로 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출근시켜 주면 좋겠다고 해서

어쩌나 고민했다.  

휴직을 결정하기까지 그이가 얼마나 고민하고, 불안해하는지 안다.

 당장 월급이 나오지 않기에 아마도 경제적 어려움에 대한 고민이 가장 클 것임을 안다.  

생각해 보니 2019년에 발병했을 때는 정말 더 어려웠고,

아무 대책이 없이 더 막막했다.

그래도 잘 지나왔다.

언제나 주님은 더 좋은 것을 준비해 두시고,

날 오라 하신다

삶은 항상 내게 선물을 준비해 둔다.

내게 온 여러 상황들을 내가 어찌 바라보느냐가 가장 큰 문제다.  


 또 잘 통과해서 가보자~ 

잘해왔고, 잘하고 있고, 잘할 거니까.  


내일 코로나 검사하고

모레 다시 병원으로~

치료과정이 순조롭게 잘 진행되고,

모든 일이 잘 되었다고 말하기를   

오늘부터 집에 있을 때는 함께 건지산 편백숲으로  출근하기로 했다.

여보, 함께 가자. 같이 가.

그리고, 지금 할 일만 하자.

우리 지난번에도  잘 해냈으니까. 이 번에도 잘 해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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