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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솔은정 Jun 09. 2024

소소한 일상 누리기

우리 남편이 달라졌어요

2021.06.14

주말에 수업이 많아서 남편보고 밥을 좀 해놓으라고 했다.  

지난번에 쌀을 씻어놓으라 했더니-밥 해놓으라는 말이었는데, 

진짜 쌀만 씻어놓아서 이번에는 정확한 말로 전달했다(고 생각함)

밥솥 켜는 방법을 모른다고 해서 이번에는 잡곡밥 취사로 꼭 하라고 알려줬다.  

 점심도 거른 채 수업이어서 4시에 집에 오니 너무 배가 고파 5시쯤 저녁을 먹자고 했다.  

자랑스럽게 잡곡밥을 했다고 하길래 열어보니 밥이 멀끔하다.  

찹쌀과 멥쌀 구분을 못하는 그는 찹쌀에 9분 도미 멥쌀이 현미라 생각하고 밥을 해놓았다.

덕분에 질척한 찰밥을 먹었다.

"먹기 부드럽지? 좋지? 당신은 진밥 좋아하잖아!"

참고로 이 남자는 된밥을 좋아한다. 진밥은 손대지 않는다.

"응! 딱 좋아. 나 먹으라고 진밥 했구나! 세상에 우리 남편 밖에 없네!"

"당연하지! 진짜 맛있지?"

밥 먹으면서 맛있다고 대체 몇 번을 말해야 하는 건가!


덕분에 어쨌든 이 남자는

56년 만에 찹쌀과 멥쌀을 구분하게 되었을게다.  

결혼 초에 일이 많아  그이에게 가서 좀 도와달라 말하면

그는 가만히 누워 티브이를 보면서 동생들 이름을 크게 불렀다.

결국 어머니가 오시고, 난 졸지에 시동생과 남편을 부리는 철없는 새댁이 되어 무참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아예 부르지를 말아야지.

 오히려 도와 달라 부르면 후폭풍이 더 커서 그 뒤로는 시동생들을 부르는 게 나았다.

(서른도 넘은 우리 아들들이 부엌에 있는 꼴이 나는 제일 싫다)라던 울 어머니여서 어느 순간 시동생들도 부를 수 없었다.  


 남편을 왕자로 키운 건 부모님이지만

밥도 못하고, 반찬 하나도 못하는 생활인으로 만든 건 나로구나.

그래서 은퇴 후 편히 내가 살아가려면

장도 보고, 밥도 할 줄 알고, 반찬도 하나씩 할 줄 아는 사람과

살아야 해서 가르치는 중이다.   


어제 하루 종일 설거지 했던 남편에게

“고마워.  덕분에 시험 잘 끝냈어, 설거지 많았지?”

물어보니

“예전에 주말 내내 부엌에서 일하는 당신이 어땠을지 헤아리게 되었어.” 

70대 아니고 그나마 지금이라도 깨달아줘서 다행이다  


그래도 이 남자가 잘하는 건 한 가지는 수박 썰기

주말에 와서 가지런히 썰어서 통에 담아놓고 갔다.

평생 남(의) 편인 남자는

주중에 엄마랑 살며 왕자로 지내다가

주말에 와서 살림 배우는 중이다.

그래도 수박을 참 얌전하게 잘 써는구려!


2021.06.21


태어나서 요리라고는 해본 적이  없는  남자에게

못한다는 말은 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다른 표현이라고 해줬다

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넘쳐나는 게 정보인데.  

 어제는 일요일. 남편은 요리사!

요리를 처음으로 도전해 선택한 그이의 메뉴는 카레였다.

오후에 약속이 있어 나갔다 왔는데

카레 완성! 

그이의 첫 요리, 카레

 요리해 본 사람은 안다

그 요리에 대해 리액션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 남자는 음식 앞에서 칭찬이 없다. 아픈 뒤로는  마지못해 먹는 기분으로 앉아있을 때가 많다) 

 

"여보, 다리도 너무 아프고, 너무 더웠고, 준비 과정이 힘들지?"

물으니

"아니! 나 요리사 기질이 넘치는 거 같아. 처음인데 진짜  잘하지?"

내 입 속으로 아직 한 숟가락 들어가기도 전인데,

"맛있지? 맛나지?"

칭찬과 인정에 굶주린 남자는

눈을 총총거리며 내 대답을 기다린다.

"응, 진짜 맛나!!"

"거봐! 그래서 내가 요리를 안 한 거야. 내가 요리 시작하면 부엌까지 다 내 담당이 돼버리니까!"

 

그래서 이제

매주 주말 점심은 최쉐프다.

"여보, 우리 메뉴 고를 수 있어?"

"안돼!"

다음 주 우리는 짜장과 김치찌개라고 한다. 공부해서 오겠다고. 

기대되는구려!


2021.07.04

예전 재경 어렸을 때 책 중 무인도에서 살아남기처럼 어디에서 살아남기 시리즈가 많았다. 

울 집에서 살아남으려면 각자 맡은 일들을 좀 해야 한다

남편은 장남으로 태어나

부엌에 들어오면 중요부위가 떨어져 나간다는 신념의 부모님 아래서 살아서 요리라고는 해 본 적이 없다. 

은퇴 이후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보고

한 끼 정도는 차릴 수 있도록 해달라고 했는데

남편이 수긍을 하고 하나씩 배워가는 중이다.

그중 처음이 카레였고(쉬웠다고 함 ㅎㅎㅎ)

오늘은 된장찌개다 

사실 어제 점심에 끓이기로 했는데 , 보조요리사가 아무도 없어서

장보고 오니 이미 점심시간 끝나 할 수가 없었다고 그런다.

보조 요리사가 없으면 할 수가 없는 셰프님이니 이해한다.

(요리도 과학이고 수학임을 이제야 알았다고 한다)

유튜브에서 된장찌개 끓이는 법 검색해서

공부를 한 듯(하필 어려운 것도 봤나 보다. 백 선생처럼 쉬운 건 안 보고)


멸치 똥 따는데 점심시간 다 지나가버렸다, 프라이팬에 볶고. 다시마도 볶고. (수라간 숙수님인 듯)

육수 내는 중에 야채를 다 썰어야 한다고 알려줬다 


칼질하는 걸 보니 ㅜ ㅜ

막내딸 대신 시집간다는 속담이 절로 떠오른다. 


레시피대로 하려고 하니

모자란 게 너무 많다고 투덜댄다. 

대체할 수 있다고 했는데도. (성격 나온다)

있는 그대로 규칙맨인 그와

대충 융통성이 있어야 한다고 넘기는 나다.

육수 잘 우러났고,

옆에 된장 풀고, 소고기도 넣고 

무도 얇게 썰어서 넣었다. 

(사실 우리 집 냄비는 모든 재료 다 때려 넣고 끓여도 되는 냄비라 요리 절차 그다지 복잡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는데. 이 남자가 선택한 요리는 하필 '정통 된장찌개 끓이는 법'이었다)

완성!

내가 끓인 것보다 백 배는 맛나다. 솔직히! 진짜 맛나다!

(왜냐.  나보다 재료를 더 많이 쓰니까 ㅎㅎㅎ)

초보자에게 필요한 건 뭐?

과한 리액션과 칭찬!

그래야 다음 요리를 또 도전하니까 

단점은

내가 가르치다 지친다. 

자녀교육에 필요한 마음가짐은

'기다리기와 멀리 보기'인데

남편교육에 필요한 건

두 배의 인내심과 함께 과한 칭찬과 리액션이다.

어쨌든 

내년 내 생일에 미역국은 얻어먹을 수 있을까?

남편이 끓인 미역국을  내 생에 먹는 게 가능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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