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3.03
동백꽃/김경미
그대, 무엇인가를 견디느라 너무 힘들다면,
눈물이 난다면
부디 동백꽃 보러 가시라.
눈물 흘려서
어떻게 한겨울에 가장 싱싱한 초록빛이 되었는지.
어떻게 폭설 속에 가장 붉은 불꽃이 되었는지.
피는 것도 지는 것도 한 송이 전체로
단숨에 치열하게 피고 지는
일체 변명하거나 하소연하지 않는 꽃!
그대, 무엇인가를 견디느라 눈물 난다면
부디 동백꽃 피는 마을에 가 보시라.
작년 한 해 내게 위로를 주었던 시다.
그래서 병원에 있는 동안, 좀 좋아지면 동백꽃을 보러 가자고 생각했다.
다음 주부터 이제 그이는 드디어 출근을 한다.
신혼여행 이후 한 번도 둘이서 여행을 해 본 적이 없어서 복귀하기 전에 제주도에 다녀오기로 약속했었다.
하지만 코로나로 여행 가기도 겁이 나고, 그이가 비행기 타는 일은 아직 엄두가 나지 않아서
제주도는 못 가고 그냥 여수 오동도로 향했다.
동백 절정은 지났지만, 그래도 동백이 남아 있어서 실컷 보고, 오동도에 아무도 없어서 둘이만 있는 기분도 만끽했다오동도와 포차거리에 왜 이렇게 사람이 없는지 물어보니, 며칠 전에 여수에 코로나 확진자 1명이 나와서 비상이 걸려 아무도 없다고 그런다.
여수에서 배를 타고 금오도 비렁길까지 둘이 걷는데 반짝거리는 바다도 실컷 보고, 길이 험해서 둘이 걷기가 쉽지 않다.
벼랑을 전라도 사투리로 비렁이라 하는데, 금오도에 만들어진 비렁길 3코스를 걸었다.
고개 돌리는 곳마다 경치가 엄청 아름다웠다.
코로나 덕분에 가는 곳마다 아무도 없어서 무인도에 있는 기분이다.
그이나 나나 빨리 걷지도 못하고, 언덕길은 발을 잘 딛지도 못하는데 뭔 용기로 금오도를 왔는지 모르겠지만, 비렁길의 풍경은 그 모든 두려움을 다 없앨만하다고 둘이서 이야기했다.
금오도는 방풍나물로 유명하대서 먹을라 그랬는데 가는 곳마다 식당이 다 문을 닫아서, 한 시 넘어서야 겨우 한 곳을 발견해 부탁하고 사정해서 밥을 먹었다. 방풍짜장면도 먹고 싶었는데....
집으로 가는 중에,
유방외과 담당 교수님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 어머나! 교수님, 무슨 일이세요?"
"잘 지내시죠? 혹시 여행중은 아니신가요?"
"어떻게 아셨어요?"
"아이고, 걱정돼서 전화했어요, 코로나 걸리면 항암 받지도 못하고, 병원도 못 오십니다, 은정님은 어쩐지 꼭 돌아다니고 계실 거 같아서 걱정되어 전화했어요, "
" 하하하하. 교수님은 저를 너무나 잘 아시네요. 여수인데 아무도 없어요. 자동차로 운전하고 마스크도 잘 쓰고, 집에서 얌전히 있다가 올라갈게요."
금오도 돌고, 저녁에 숙소에 와서
그이에게 여행 중 뭐가 좋으냐 물었다.
“그냥 같이 있는 거”
"응. 나도!"
2020.03.20
그이는 드디어 11개월 만에 출근을 했다. 1년 안에 꼭 복귀해야한다는 그의 바람이 이루어져 더 기뻤다.
1년이 넘어가면 퇴직을 해야할까봐 그는 정말 걱정을 많이 했다.
얼마나 기쁜 일인지...
일상으로 조금씩 돌아가고 있음에 감사하는 중이다.
혼자 걸을 수 있다니.
말을 할 수 있다니.
회사에 갈 수 있다니.
그이가 돈을 벌어 가족을 부양해줄 능력이 있다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난 12차 표적치료 하러 병원으로 차를 몰고 왔다.
쉬엄쉬엄 네 시간이 넘게 운전을 하면서 오는데 휴게소에 내리는 것도 좀 겁이 난다.
아마 내 인생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역사적 사건 두 가지를 꼽으라고 한다면
IMF 사태와 코로나 19 사태일 거다.
나의 일상이 완전히 바뀌어 버린 역사적 사건이니까 말이다.
90세 고모할머니가
“6.25 때 난리는 난리도 아니어야~이 코로나 때문에 우울증 걸릴 거 같다.” 라 그러신다.
코로나 검사해서 음성판정을 받아야 다음 날 입원이 가능하다고 하니, 오늘 병원에 가서 코로나 검사받고 다시 내려가기도 힘들어 차라리 호텔에서 하루 자고, 결과 듣고 병원에는 다음 날 가기로 결정했다. 대중교통으로 짐 들고 오가는 일로 가족들 걱정하니 차라리 내가 운전해서 오는 게 낫겠다 싶어,차를 가지고 올라오기는 했는데 항암 마치고 내려가는 건 괜찮으려나? 모든 휴게소마다 들러 쉬엄쉬엄 내려 가보자.
오랜만에 회사에 간 그이는 코로나 때문에 허그는커녕 악수도 못하고 마스크 쓴 채로 인사 나눴을 테지.
휴게소에서 사람 만나면 서로 흠칫해야 하는 이런 상황이 서글프다.
커피도 드라이브스루로 주문도 해보질 못했는데
코로나 검사를 차에 타고 드라이브스루로 검사를 했다. 검사비도 만만치가 않게 비싸다.
병원에 들러서 주치의 선생님, 간호사 선생님이랑 삼십 분가량 이야기하고 왔다.
평소라면 오 분 이내로 진료 끝인데. 이렇게 오래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다니.
환자가 없어서, 의사 선생님하고 이야기할 시간이 많을 수도 있네.
2020.03.21
병동이 너무나 조용하다
병동 바깥을 나갈 수가 없어 복도만 뱅글뱅글 도는데 병실 수가 11개, 침대는 모두 37개.
입원한 환자는 열 명이다.
항암을 하다 보면 주기가 비슷하니 항암동기가 생긴다.
그래서 내가 항암을 받을 때 다시 만나게 되면, 어찌 항암을 받고 있는지 정보도 주고받고,
서로 위로도 하면서 지내기도 하니 만나면 반갑고 좋다.
하지만 보이지 않을 때는 가끔 겁이 덜컥 나기도 한다.
상태가 좋지 않아 항암을 못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경우도 있고,
정말 좋지 않았던 분들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게 되기도 해서 우울하기도 했다.
항암 주기를 놓치지 않고 정해진 시기에 잘 받는 것도 엄청 감사한 일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내가 머무는 병실은 4인실이지만 서울시에서 두 명만 입원해서 거리 두기를 했다고 한다.
다행히 창 밖 햇살은 따사로워서 밥 먹고 나면 잠만 쏟아진다.
작년에 남편이 입원했던 뇌병동 간호사 선생님을 12동 유방병동에서 만나 인사했더니 엄청 반가워한다.
항상 마음에 남아있고 늘 생각나던 분들이었는데 왜 나보고 여기 있느냐고 놀라신다.
입에서 군내 날 지경인데 간호사 선생님하고 그래도 수다 오래 떨었네.
마스크에 안경에 모자에 다 쓰고 있으려니 얼굴에 열이 많이 오른다.
그래도 난 돌아다니니 괜찮은데, 보호자 없이 들어오는 중증 환자들은 진짜 힘들어 보인다.
몸이 아픈 것도 있지만, 외롭고 쓸쓸한 마음이 드는 게 더 큰데 말이다.
코로나로 인해 일상이 갇힌 기분이라고들 한다.
사실 우리 가족은 작년에 우리에게 온 일들 덕에 일상이 무너졌었다. 하지만, 다시 그 안에서 새로운 일상을 찾아서 우리 것으로 만들어갔다.
함께 밥 먹고, 함께 자고, 24시간을 같이 보내면서
어쩌면 우리에게 온 일들이 좋은 기회였구나를 생각하면서 감사하게 하루하루 보냈다.
언제나 생각하지만
하나님이 주신 공평하면서도 최고로 좋은 약은
시간이다.
우리 가족에게 갑자기 닥친 일들은 어쩌면 우리 넷이서 오순도순 더 같이 지내보라고
선물처럼 온 시간들일지도 모르겠다.
갑자기 주어진 많은 시간들을 더 소중하게 다뤄야지.
어쩌면 지금 겪는 일들이 우리 삶에 전환점이 되고 새로운 출발이 될 거다.
그이가 회사에 다시 갈 수 있게 된 것,
집에 돌아가면 나를 기다리고 있는 두 딸들이 있는 것,
내가 선택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있는 것,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는 일들이 당연하지 않음을 알게 된 것,
언제나 삶을 대하는 태도는 나의 선택이라는 것,
견디는 시간들 속에
새삼스레 알게 된 것들이 많다.
한겨울에 가장 싱싱한 초록빛으로,
일체의 변명과 하소연 없이
아름답게 피고 지는 붉은 동백꽃의 아름다움이 새삼 고맙다.
견디기 힘들다면
가끔은 동백꽃을 생각해 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