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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솔은정 May 19. 2024

시적 화자의 정서와 삶의 태도

 내 삶을 대하는 나의 태도는 어떠하지?


  돌아가신 아버지는 내게 긴 편지보다도 짧은 시 한 편을 편지로 보내오곤 하셨다.

 그 짧은 시 한 편에, 긴 글보다 더 많은 아버지 마음이 담겨 있어 나는 읽고 또 읽어보곤 했다.

읽을 때는 몰랐던 시를 다시 읽어보면, 아버지의 마음과 삶을 대하는 태도를 그 안에서 만날 수 있었다.


  2020.02.1


  10차 표적 주사 맞느라 병원에 입원 중인데 , 어제 오후에 재경에게 전화가 왔다.

할머니와 윤서랑  시장 보고 돌아오는 중에 신호대기 중 서 있는데 뒤차가 와서 박았다고.

괜찮은지 물어보니 놀라서 브레이크 밟느라 그런지 다리가 아프고 놀라서 다리가 후들거린다고 그런다.

 앞자리에 타셨던 어머니도, 뒷좌석 윤서도 작은 차라 크게 다쳤을까 걱정도 되고 갑자기 생각이 멍해져 있었다. 보험회사도 오고 경찰도 와서 뒤차 책임이 백 퍼센트니 걱정 말라 그런다.

 두 딸들은 우리 차가 뭔 잘못을 했나 걱정을 하고, 윤서는 걱정쟁이라 더 걱정 중이었다.

 다행히 일처리를 잘하고 셋이서 나란히 동네 정형외과로 가서 입원했다고 한다.

어제저녁에는 어머니까지 다섯 명이 모두 입원한 날이 돼버렸다.

그이는 테모달 복용 중에 경련과 발작이 와서 대자인 병원에 있고,

나는 항암 중이라 은평성모에 있고,

아이들과 어머니는 교통사고로 정형외과에 입원이다.

 전주에 도착하면 그이가 입원한 대자인 병원으로, 딸들과 어머니 계신 병원으로 다녀야겠네.  

 집으로 돌아왔는데 간병인은 나 한 사람이 되고, 간호해야 할 대상이  더 늘었다.

나 항암 중인 거 맞나?  

암에 맞서 싸우는 중이 아니고 삶에 저항 중인 건가?

간병인 역할을 잘해야만 하는데. 쉬기 위해서는 항암 받으러 가야 쉬는 건가?


  차 뽑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재경에게 운전을 맡겨야만 해서 그이와 결정을 내려 재경에게 사준 '아침'차다.  

차가  망가지는 거 보고 속상한 건 둘째 치고, 작은 차에 아이들만 태워서 멀리 보내기는 힘들겠구나 생각했다. 그래도, 많이 다치지 않아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침착하게 일처리 잘한 재경이도 기특하고 감사하다.

아이들에게 달려가서 지켜봐 주신 사모님과  이웃에 계신 인숙 선생님께도 감사했다.


오늘 친정부모님 기일인데.

가보지도 못해서 아쉽고 죄송하다.-사실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보다도 살아있는 내 자식들 안위와 남편의 병세가 더 걱정인 날이라 기일을 챙길 여유도 없었다.

 어떤 일들이 벌어질 때,

'내게 찾아오는 모든 일들이 대체 왜 이렇게 한꺼번에 정신도 못 차리게 오나?'

생각이 들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내게 벌어진  그 일들을 하나하나 적어 보곤 한다.

 1. 남편과 내가 항암 중이다

 2. 아이들과 어머니가 사고가 나서 병원에 입원 중이다.

두 가지 일은 사실이고 내가 바꿀 수는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걸 어떻게 바라보고 해석할 것인가다.

하지만 주님께 부탁은 드리고 싶다,

" 주님!! 저 좀 불쌍히 여겨주세요. 한 번에 한 가지만 하고 싶어요.

지금 이 상황을 지혜롭게 바라보고 해석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주님!! 저 좀 불쌍히 여겨 주시고, 제게 지혜와 용기 좀 주세요."

부탁을 넘어서 협박까지 해드리고 싶은 지경이다.

 이제  어떤 일이 또 발생돼도, 놀랍지도 않을 거 같은데,

안정되어 괜찮을만하면 일이 생겨 나의 놀라움과 두려움은 참 잦아들기 어렵다.

 이 모든 일들을 나도 단 한 줄의 시로 아버지 기일에 표현하고 싶지만

나의 정서와 삶의 태도는 글 한 줄로 표현하기 힘들다. 그런 내공이 아직 없다.

 그나마 병원에 똑같이 옷 입고 누워있는 딸들이랑 영상통화하면서 웃을 수 있는 마음의 여유에 감사했다.

생각해 보니, 내가 밥 안 차리고 그들도 병원에서 주는 밥 먹으니 그나마 감사네!

난 밥 챙기는 일이 제일 머리가 무거운데 말이다.

일단 내 몸이나 잘 챙기고 보자!




테모달 항암제를 먹어서인지, 그냥 교모세포종 때문인 건지, 알 수가 없지만 그이는 예측할 수 없게 갑자기

경련이 온다. 얼굴에 경련이 일어나면 언제 멈출지도 모르고 다른 부작용이 따라올까 봐 두려워서

그냥 병원으로 향한다.

 지난 1월 23일  분당서울대 병원에서 약을 타고, 수원 왕갈비를 사주겠다는 정자언니의 고마운 초대에 갈비를 먹다가  갑자기 경련이 찾아와  식사도 못하고, 내려가는 길에 보이는 수원 쪽 병원 응급실로 갔는데 난감한 얼굴로 받아주지 않으면서, 그냥 분당서울대 병원으로 가는 게 좋겠다고 그런다.

 이제 몇 번 겪고 나니 어수선한 마음보다는  '또 왔냐?' 이런 마음이다.

좀 안정될만해서 잊어버릴 만하면 경련이 찾아오고 발작이 찾아온다.

그이를 다독이고 다시 분당서울대병원으로 차를 돌려 응급실로 들어갔다.

그이의 경련이 나타나면 안정화시키기 위해 병원에서는 스테로이드제와 내가 알 수 없는 진정제를 투여한다.

그리고 나면 경련이 멈추지만 그이는 갑자기 난폭해지기도 하고, 나를 잘 못 알아보고,

침대에서 일어나 선 채로 소변을 누기도 한다.

내 힘으로는 감당도 안된다. 어디서 이런 힘이 나오는 것인지 모르겠다.

응급실 침대는 혼자 누워있기도 너무나 좁은 침상이고, 보호자가 옆에 앉아 있기도 힘든 공간이다.

하루만 더 있으면 내가 응급실에 누울 판이다. 울고 있을 여력도 없고, 투정 부릴 여유도 없는 현실이다.

 겨우 안정화되어 병실이 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하루 입원하고 조금 호전이 되면 바로 퇴원이다.

별 치료방법이 없으니 그냥 집으로 가란다.

 집에만 가고 싶어 하는 그이를 데리고 응급실에서 병실로 온 지 하루 만에 다시 집으로 돌아와 좀 지내다

다시 경련이 시작되면 전주 대자인 병원 응급실로 오가면서 시간이 흘러갔다.

 조금씩 좋아지는 것 같은 생각이 들려고 하면 꼭 경련도 한 번씩 찾아오지만, 그 주기가 많이 줄어들어

우리는 희망을 붙들고 봄이 되면 회사에 복귀할 거 같다고 둘이서 좋아했다.

 4월에 휴직신청을 한지라 1년이 되면 그이는 복귀를 꼭 해야만 한다고 했다.

 "해가 뜨기 직전이 제일 어둡잖아. 여보도 좋은 날 오려고 이런 경험하는 걸 거야."

 "응. 점점 좋아질 거야!"

"맞아!"

의사도 우리에게 해주지 않는 희망의 위로를 우리 둘이서 한다.

 "나 복귀하기 전에 우리 넷이서 여행 가자. 난 동남아 한 번도 안 가봐서 베트남에 가보고 싶어."

그이의 소원을 핑계로 우리도 신나는 마음으로 베트남 냐짱 여행 계획을 잡았다.

 나는 11번째 항암으로 병원에 입원 중이라 전화로 재경과 그이와  2월에 여행 계획을 잡고 있었다.

  은평성모병원의 이송 요원 중 한 명이 코로나 확진이라고 병원이 격리가 되면서 나는 병원에서 나갈 수가 없게 돼버렸다.

병원 전체에 감도는 무서운 분위기는 예전 '눈먼 자의 도시'에 나오는  모두가 눈이 멀어버리는 알 수 없는 전염병이 떠오르게 했다.  퇴원은 할 수 있는 건지, 집에는 갈 수 있는 건지. 병원 꼭대기층에 가서 코로나 검사를 하는데 점막이 다 상해 있는 나는 검사만 마치면 피가 났다.  내 감각이 살아 있는 걸 꼭 이런 식으로 느끼고 싶지 않은데 말이다.

마스크는 다 동이 나서 가격은 천정부지 솟았고, 그이는 인터넷으로 마스크만 눈에 띄면 사는 중이라고 했다.

 다행히 나는 3일 뒤에  음성반응으로 집에 돌아왔고, 우리의 베트남 여행은 모두 취소가 되었다.

 비행기와 숙소 값은 날아갔다.  

그리고 아이들과 어머니의 교통사고로 보상비가 들어왔다.

 (두려움과 분노는 통장의 잔고로 가끔 잦아들기도 한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이는 비행기를 아예 탈 수조차 없었던 상태였다. 병원에서 허락도 할 수 없다고, 기압이 높아진 상태에서 위험하기도 하고 언제 발작과 경련이 날지 모르는데 무슨 비행기냐고 의사 선생님께 한 소리 들었다.

 "코로나 아니었으면 우리 떠났을지도 모르는데 그렇지?"

코로나 덕분에 우리는 어쩌면 비행기에서의 발작과, 경련의 공포와 낯선 곳에서의 응급 상황을 피해 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지나고 보면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없다.  

그냥 그 일이 생겼고, 우리는 그 일에 내 나름대로의 해석을  하고, 의미를 부여할 뿐이다.



 시를 해석할 때  세 가지에 대해 보라고 아이들에게 알려준다.

"시적 화자가 누구지?"

"시적 화자의 정서는 어떤 상태지?"

"그리고 시적 화자가 삶을 대하는 태도는 어떠하지?"


 내 삶을 시로 바라본다면,

 내 시의 시적화자는 관찰자이기를

시적 화자의 정서는  유머러스하기를

시적 화자의 삶의 태도는 감사이기를.


내가 아버지의 시에서 아버지의 삶의 태도를 느끼듯

나의 글로 우리 아이들이 내 삶의 태도를 느낄 수 있기를


~~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그럴지라도,

 삶을 유머와 감사로 대하려 노력했던 엄마의 마음과 태도를 느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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