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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솔은정 May 12. 2024

절망이 있는 자에게  희망이 오지.

테모달이라는 항암제를 일주일 복용한 뒤에 그이 뇌파 검사를 하기로 했다. 결과를 보고 나서 약을 조금씩 바꾸고 양도 줄여보자는 의사 선생님이 약의 부작용을 하나하나 이야기해 주는데  두드러기, 불면증, 졸음, 그리고 우울과 짜증 난폭한 기질 등등이 나타날 수 있다고 하신다. 다행히 그다지 심하지 않아서  감사했다. 그이 말로는 자기가 좀 둔한 편이라 잘 모르겠다고 그런다. 

 그이는 그래도 먹는 항암제라 생각보다 잘 견딜 수 있다고 해주셨지만,

항암제 먹고 나면 가끔 얼굴의 경련이 멈추질 않아서 응급실을 몇 번 다녀오기도 하고,

쇼핑 중에 갑자기 경련이 와서 둘이서 울었던 적도 있다. 언제 멈출지 모르는 그 경련의 시간도 힘들지만,

그 시간을 기다리는  그이의 마음을 생각하면 참담하고 슬펐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시간이 지나가길 함께 기다리는 수밖에 없을 때 그 난감함과 두려움...

이게 치료의 과정이라 생각하고, 나아가는 과정이라 생각하고 싶다.

  원래 성격이 밝은 편은 아니고 조용한 사람이니 그러려니 하지만 지난 며칠은 말이 더 줄고 웃지도 않아 속이 상했다. 항암 세 번째인 그는 말수도 줄고, 식욕도 줄고. 웃음도 줄어들었다.

 의사 선생님이  괜찮아질 거라고, 좋아질 거라고 응원하는 말이라도 좀 해주면 좋으련만, 부작용 증상만 나열하니 앞 날이 좀 암담하게 느껴졌으리라.   

환자가 듣고 싶은 말은 "괜찮습니다. 아마 더 좋아지실 겁니다. 지금 상황은 부작용 때문이고, 점점 더 좋아질 일만 남았습니다."이런 말이지만, 의사 선생님은 있는 사실만 나열하시는 거니 이해한다.

 "여보. 당신이 우울하게 보이니까 나도 신경이 쓰이고 애들도 우리 눈치를 많이 봐. 세상에서 당신이 제일 사랑하는 윤서를 위해서라도 좀 웃고, 밥도 먹고, 감사하면서 지내보자."

  집 안 분위기는 구성원 중 한 사람이라도 우울해 있으면 분위기가 가라앉고 안 좋은데, 가장이 그러면 더더 그렇고, 그 기운이 아이들에게까지 미치니 힘들더라도 웃고, 감사하면서 지내자 하니 그이도 고개를 끄덕인다.   

그이에게 바람 쐬러 가자니 사진 찍으러 가고 싶다 그런다.

“가면 되지~.”

"모델이 없어!”

"헐!! 왜? 나는?? 딸들만 찍어주고? 나는?”

“,,,,,,,,,” 

"나 모델 잘할 수 있는데!"

대꾸도 없는 그이와 카메라를 든 재경이와 셋이서 나섰다. 가발 쓴 내 모습도 괜찮구먼!

카메라를 설치하고 준비하는 시간은 길지만 포즈 잡는 시간은 금방이라 기다리다 지치는 재경과 나는

핸드폰에 있는 앱으로 변신하는 중이다. 비록 가발도 쓰고 눈썹도 하나 없지만, 사진 보정 앱은 그래도 볼 만하게 바꿔준다. 그이의 카메라는 정직하게도 나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다 찍어준다.  

"이게 나라고? 너무해!"  외쳐보지만 그이는 말없이 다시 카메라를 들여다보고 다시 서라고 그런다.

"좀 이쁘게 찍어줘! 찍는 사람이 대상에 대한 애정이 넘쳐야 잘 나오지!"

그이를 웃게 하려고 나도 애쓴다. 진짜! 




 네 번째 항암이 끝나고 났을 때 다 끝난 줄 알았는데,

 선생님 말씀이

" 생각보다 괜찮죠? 8번까지 더 해봅시다. 재발도 막고, 어차피 시작한 항암이니 금방 시간 가요."

 그리고 생각보다 잘 견디니까. 8번 정도는 더 해야 한다고 그러시길래 정말 그런 줄 알고 8번 항암을 마친 날,정말 홀가분한 마음으로 유방외과 선생님들께 감사편지와 쿠키까지 구워서 인사를 드렸다. 

편지를 받아 든 주치의 선생님이 웃으시면서

"사실 아직 항암이 더 남았어요."

"네에? 저 8번 아닌가요?"

 담당 의사 선생님 말씀이 허셉틴 표적치료는 18번이라고 그러신다. 이런 날벼락같은 소리가 있나!

 내가 꼼꼼하지 못한 데다 남편 항암 정보만 엄청 찾아다니느라 막상 내 항암 정보는 의사 선생님만 믿고 따라가면 된다 생각하고 오로지 8번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 은정님이 처음 시작할 때 워낙 거부반응이  심하셔서 18번이라고 하면 더 상심하실까 봐 횟수 이야기를 안 했어요. 원래 허셉틴 과정은 18번, 1년인데. 처음에 거부하시느라 두 달이 더 늦춰져서 1년 안에 18번 마치기도 힘들 거 같네요."

  예정에 없던 일 또는 예측하지 못했던 일이 나에게 닥쳐오면 당황스러움과 황당함과 난처함이 다 몰려든다. 생각해 보면 내 삶은 내 예정대로 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내 생각대로 된 일은 오로지 하나다.

 '이거 먹으면 살찔 거야!' 

그 외는 다 예측불허다.


 내 항암이 다 끝나고 나면, 그이 항암 하러 함께 분당에 오가는 일이 좀 편하고, 시간 여유가 있을 거 같아서 빨리 끝나기만을 기다렸는데......

내가 간병인으로만 살지 말고 환자노릇이라도 해야 나를 좀 돌볼 거라는 하나님의 돌보심인가보다 싶다.

"8번 금방 끝났죠? 나머지도 금방 마치실 거예요."

유방외과 선생님은 자기가 경험도 해보지도 않고, 참 쉽게도 말하신다.

그래도 믿어야지. 금방 마칠거고, 쉬울 거라는 말에 매달려서 믿어야지.

  정성스레 구워간 쿠키와 편지는 전해드리고 터덜터덜 병실로 돌아와서 그이에게 전화로 소식을 전했다.

"나 연장이야~ 8번 아니고 18번이래!"

"속상하지?"

"응. 속상해. 끝난 줄 알았는데 연장전 돌입한 느낌이고, 연장전이 아니고 본 게임인 거잖아."

" 자알 하고 와~"

그이는 원래도 말이 빠른 편이 아닌데 수술 이후로  느릿느릿 말을 차분하게 하니 그이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성급했던 마음도 좀 누그러지는 듯 하다.

 발음을 정확하게 하려고 애쓰는 그이 말속에 내 마음을 가라앉혀주는 기운이 들어있네.



 우울해하고 집에만 있으려 하는 그를 달래서 천변에 걸어볼까 나갔다가 , 오늘은 오전예배 후 자전거를 타고 전주천 끝 한벽관까지 가보기로 했다.

수술 후 평형감각이 떨어진 그가 잘 탈 수 있을지  자전거 타는 내내 불안했다.

한 시간 뒤에 뒤따라온 재경이랑 집으로 향하는데  그이가 내리막길에 거의 다 와서 자전거와 함께 넘어진 바람에 너무 놀란 바람에 소리를 꽥 질렀다. 손과 무릎은 다 까지고, 머리를 다쳤을까 봐 정말 무서웠다.

헬멧도 안 쓴 데다 장갑도 안 끼고 탄 우리의 무식함을 어찌할꼬!

 “여보. 이제 자전거는 타지 말고 그냥 걷자. “

그 말에 고맙게도 그이는

“아니야. 자꾸 안 하면 점점 더 못하니 그래도 조금씩 해보자. “

라고 답해줘서 고마웠다. 

 당분간 자전거는 안 타겠지만, 운동도 안 하려 하고, 산에도 가기 싫어하던 그이 반응을 생각하면 엄청난 발전이라 감사다.

 내일 아침 일찍 산에 가자고 하니 그러자고 한다.

그이의 바람은 내년 봄에 회사 복귀를 잘하는 거다.

그래서 더 걷고, 자꾸 가라앉아지는 몸과 마음을 추스르려고 노력 중인 거 같다.

자기가 어딘가에 꼭 필요하고, 자기 일터가 존재해서 세상에 쓸모가 있기를 바라는 사람이니

자신의 존재 증명을 위해서라도 아마 건강 회복에 더 힘쓰고 싶나 보다.


미래에 희망을 두는 이유는 지금 내 옆에 절망이 함께 있어서다.

행복한 사람은 희망을 꿈꾸지도 않지. 

건강한 사람은 회복을 생각지도 않지.

배부른 자는 음식을 떠올리도 않지.

그러하니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건, 내 옆에 온 절망에 감사하다.

왜냐하면 희망을 꿈꿀 수 있으니까 말이다.

여보, 꿈꿔보자. 회사에 복귀하고, 나도 남편이 벌어오는 돈으로 살림 잘하는 아내가 되어보고 싶다오.

회사에 출근하는 당신을  아침마다 배웅하는 나를 꿈꾸는 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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