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2
시아버님은 2005년 여름에 전립선암으로 2007년 1월에 돌아가셨다.
치료를 위해 두 분은 서울에서 광주로 2005년에 이사를 가셨고,
혼자 간병하기 너무나 힘들다는 어머니의 연락,
그리고 큰아들과 큰며느리라는 책임감에 맞물려 우리도 2006년 더운 8월 1일에 광주로 이사를 했다
1년 정도 아버님을 간병하며 쓴 일기를 보니 그이 상태를 좀 이해하게 된다.
지난 일들이라 다 잊고 있었는데,,... 일기를 뒤적여보다 다시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기록이 있다는 건 도움이 된다.
마약성 진통제로 버티고 있는 그이가 땀을 뻘뻘 흘리면 엄청 힘들다는 거다.
어제는 전주병원에 가서 진통제를 더 처방받았고,
신경외과 선생님과 만나 입원절차에 대한 도움을 요청드렸는데 흔쾌히 허락해 주셨다.
이제 집에서 그이의 통증을 다스리는 것에 나도 너무나 힘이 들고, 이게 과연 옳은 일인지도
잘 모르겠기에 선생님의 이야기를 좀 들어보고 싶었다.
호스피스 병원으로 옮기고 싶어도, 담당 의사의 진료소견서가 있어야만 하고, 분당서울대병원에서는
환자 본인이 없으면 줄 수 없다고 해서 난감했다.
오늘 서울대병원 가는 날인데
그가 못 가니 가는 의미가 없어서 취소했다.
전주병원에 이삼일 정도 입원하면 그곳에서 진료 소견서를 받아 호스피스 병동이 있는 엠마오병원으로 옮길 수도 있지만 마음먹기가 쉽지가 않다.
이제 병원에 가게 되면 가족들과는 이별이기 때문이다. 코로나로 간병인이 쉽게 드나들 수도 없거니와,
집에서 떠나고 싶지 않은 그이 마음도 이해하고, 일도 해야 하는 내 형편도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
조금 더 진통제를 집에서 복용하고 버텨보려는 중이다.
오늘 낮에는 그가 눈을 뜨더니 나를 보고 씩 웃는다.
아픈 중에도 가끔 이렇게 웃을 때 난 눈물이 난다.
저녁에 그가 통증으로 몸부림을 칠 때, 내가 뒤에서 안고 버티는 중인데 앞에 계신 어머니께 우는 얼굴로
"엄마. 여보가 안 보여요."라면서 말한다.
어머니 말로는 내가 조금만 안 보여도 불안해한다고 하신다.
수업하느라 방에 들어가 두 시간 넘게 들어가 있으면, 방문을 열고 꼭 확인하러 온다.
이런 그이를 병원에 어찌 혼자 놔두고 나올 수 있을지.
그에게 몸이 아픈 건지, 마음이 괴로운 건지 물어보면
늘 마음이라고 한다.
그래서 자꾸 병원에 가는 시간을 늦추게 된다.
내가 한 선택이 옳은지 그른지 나도 잘 모르겠지만
그이가 원하는 걸 해주고 싶은 그 마음을 따라가 보는 중이다.
그이와 이별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내 마음도 있다.
끼니때가 돌아오는 건 자주도 오지만 그래도 같이 밥 먹는 딸들과 어머니 덕에
나도 세끼 잘 먹고 그이 돌보는 중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지 않은 한 가지
'내일 일을 미리 아는 것.'
삶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더더욱 오늘에 감사하고 충실하기.
매일 집을 더 깨끗이 하고
냉장고도 더 잘 정리하고
주변도 더 챙기는 중이다.
마음을 정리하기 힘들 때는
주위를 깨끗이 하는 게 가장 좋다는 걸 더 깨닫게 된다
이것저것 고민하고 걱정할 시간에
차라리 몸을 움직이는 게 낫다.
오늘은 재경이가 정갈하게 차려준 짜장밥 덕에
저녁도 편안히 잘 받아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