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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솔은정 Mar 16. 2024

평온한 일상에 찾아온 태풍

남편의 발병

宁静致远

 중국 천진에서 만난 이웃 썸머의 위챗 ID이다.

무슨 뜻인지 물었을 때 그녀가 해준 답은

“평온한 마음으로 깊은 뜻을 구하는 것”이라고 알려줬다. 평온하고 안정되고 조용한 시간들이 주는 기쁨을 언제 아는가? 삶이 격랑에 휘몰리게 될 때 그제야 알아차린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조용하고 평온한 일상이 흘러감을 감사하면서 지지난 주일에 하나님께 기도했다.

이런 나날 허락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중국에서 주재원으로 3년간 지내다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남편과 함께 다시 한국으로 오면서 나와 아이들은 전주에, 그이는 광주에서 어머니와 함께 지내게 된 덕에 우리는 금요일 저녁에 만나 월요일 아침에 헤어지는 주말 부부로 지냈다.

 금요일 저녁에 그이가 집에 오면 주중에 먹고 싶었던 것을 만들어 먹고, 전주가 낯선 우리 가족은 주말마다 전주를 돌아다녔다. 일상은 여행처럼 지내야 한다는 나의 생각도 있었고, 전주에 오래 살 것 같지 않았기 때문에 주말이면 그이를 기다려 근처를 매번 여행할 계획을 세웠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넷이서 만나 금요일 저녁 늦게까지 같이 맛난 거 먹고 이야기하는 중에 그이가

“난 우리 넷이 이렇게 놀 때 진짜 좋아.”

라고 말하는데 그 작은 웃음이 얼마나 큰 행복이고 감사인지 새삼 또 느낀다.

일상의 반복이 주는 일이 지루함으로 오지 않고, 그 순간과 찰나에서 오는 작은 행복들을 깨달을 수 있을 때 삶에 의미가 부여되고 감사함이 온다.

 평소처럼 주말에 즐겁게 잘 놀고, 주일 교회도 다녀오고, 피곤해하는 그가 자고 싶다고 해서

낮잠을 자고 아이들도 각자 방에서 놀고 있는데,

그 평온한 봄날 2019년 4월 28일의 오후는 이상하게 불안했다. 거실에서 혼자 해를 받고 앉아 있는데, 마치 너무나 조용한 아기의 숨소리가 진짜 괜찮은지 확인해 보던 큰아이 육아시절의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올라왔던지라 그날의 기분을 여태껏 기억하는지도 모르겠다.

 너무 낮잠이 길어지는 그를 깨워 저녁을 먹으면서 함께 맥주 한 잔도 나눴다.

너무 피곤하다며 샤워하고 오겠다는 그가 목욕탕에서 이상한 소리를 내길래

처음에는 장난을 치나? 하다가 윤서를 보내서 아빠가 왜 그런지 보고 오라고 했더니

윤서가 놀라서

“엄마.. 아빠가 이상해요!”라고 외치는 소리에 놀라 달려갔다. 그는 목욕탕에 발가벗고 서서 말이 나오지 않아 소리를 내면서 몸이 굳은 채 서 있었다. 무섭고 두려운 마음이 드는데 일단 그를 잘 데리고 나와 눕히고 옷을 입힌 뒤 전주에 와서 알게 된 집 앞에 사는 선생님께 연락을 드려 응급실에 데려다 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뇌에 무슨 문제가 생겼나? 그이의 고혈압에 문제가 있나? ’ 손이 벌벌 떨리고 말도 잘 나오질 않았다. 그이는 차 안에서도 소리를 계속 내면서 내 손을 잡고 나를 바라보고 있다.

병원에 도착해 꺽꺽대는 소리가 멈추지 않다가 진정제가 들어가니 그이가  어려운 발음으로

“ 놀랐지?  미안해!”

라고 말하는데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뭐가 미안해! 당신이 더 놀랍고 무섭지! 치료 잘 받고 나면 괜찮을 거야.”

MRI실로 들어가는 그이는 말을 잘 못하는데도 오히려 나를 안심시키고 들어갔다.


 밤 10시가 다 되어서야 신경외과 담당교수가 와서 사진을 들여다보더니

“뇌종양입니다. 위험한 상태고 전주 아니고 서울로 가시는 게 좋겠어요.”

라고 말하는데 눈앞이 캄캄해지고, 귀에서는 윙윙거리는 소리만이 들리는 거 같았다.

 멍 하니 서있는데 담당선생님은 소견서와 CD를 가지고 서울로 가는 게 좋겠다고 하시면 안내를 해주시겠다고 한다. 되도록 빨리 가는 게 좋겠다고 하는데 그날은 일요일 저녁이었다.

  남편은 월요일 아침 출근하는 것을 걱정하고 있었고, 나는 당장 서울로 소견서를 가지고 성모병원으로 가야 하는데 남편을 혼자 두는 일이 더 걱정이었다.

  내가 울고, 화를 낼 수도 없었고, 당장 내가 해결하고 바로 해야 할 일들만이 있었다. 뭘  해야 하지? 우두커니 있는데 그이가 내 손을 잡고 토닥거리는데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여보, 뇌에 문제가 좀 생겼대. 서울로 가는 게 좋겠는데 내가 내일 소견서 가지고 아침 일찍 다녀올게. 회사도 내가 연락할게. 걱정 말고 좀 쉬어봐. 중국에서 돌아와서 하루도 못 쉬고 일했으니까 좀 쉬라는 신호인가 봐.”

“ 미안해. 여보”

 시를 읽을 때 그 시인이 삶을 대하는 태도가 무언지 찾아보라고 말하는 데 막상 내 삶에 이런 일들이 생기면 나는 어떤 태도를 보일 것인가? 생각한 적이 없었구나를 알았다.

그건 교과서를 해석할 때, 국어 문제를 풀이할 때 찾는 태도였지, 진짜 삶으로 오니 드러나는구나, 생각했다. 상황은 바꿀 수 없지만 , 삶에 대한 나의 태도는 내가 결정지을 수 있지!

 태풍이 몰아쳐도 태풍의 눈은 고요하다는 것처럼 나의 마음도 잠시 잠잠하게 머물러 볼 수 있었던 이유는 그 어려운 상황에서도 나를 걱정하던 남편의 태도 덕분이었고, 삶의 태도는 내가 결정할 수 있다는 알아차림 덕분이었다.

 삶의 평온함이 오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라, 이 격랑 속에서도 평온한 마음을 유지해 보자.

남편에게 그래도 뜻하지 않게 빨리 한국에 돌아왔고, 운전 중이 아니었고, 좋은 이웃이 계셔서 응급실로 빨리 왔고, 좋은 의료진 만나 서울로 잘 옮겨갈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고 운이 좋냐고 말하니 자기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말한다.

 태풍을 넘어 쓰나미 같이 다가온 일 덕분에 어쩌면 우리는 일상의 평온함이 더 감사하고, 바라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가장 자주 말하고 바라는 일들은 내가 가지지 못해서 결핍으로 느껴지는 일들일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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