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에게는 경외하는 마음이 있다. 우리는 경외를 원할 뿐 아니라 경외가 꼭 필요한 존재이다. 인간은 경탄하도록 지어졌기 때문이다(주).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코가 있어도 냄새 맡지 못하며 손이 있어도 만지지 못하며 발이 있어도 걷지 못하며 목구멍이 있어도 작은 소리조차 내지 못하느니라. 우상들을 만드는 자들과 그것을 의지하는 자들이 다 그와 같으리로다. -시편 115편 5~8절-
그러니까 인간은 특별히 '신'이라는 존재를 믿지 않더라도 혹은 믿더라도 누구나 마음속에 우상이라는 경외 대상을 만든다는 말이다. (정말 제대로 믿는 분들께는 먼저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나는 교회를 무려 22년 동안 다니고 있는 '기독교인'이라고 말하는 사람이었지만 나의 경외대상은 매 주일 예배 때 찬양하는 '우리 주님'이 우선순위가 아니었다. 부끄럽지만 사실이기 때문에 용기 내서 고백한다.
나는 최근에 겪었던 실패 혹은 대단한 실수를 통해 나의 우상이 '명예 혹은 성공욕구'와 '앎에 대한 강렬한 욕구'였음을 깨달았다. 많이 아팠다. 나도 몰랐던 나의 결핍이 드러났던 일을 통해 내가 얼마나 아팠는지도 알게 되었다.
게다가 나는 많은 사람들이 쉽게 넘어가는 물질욕구에는 자유로운 것이 아니냐며 대단히 착각하는 교만과 무지와 자기기만도 발견하게 되었다. 물질욕구에 넘어가 다단계에 빠진 지인을 속으로 비난했고 애정결핍으로 사이비종교에 빠진 동네 친구 엄마를 욕하기도 했다.
나는 그들과 욕구 종류만 다를 뿐 똑같은 우상이라는 경외 대상을 만들었다는 사실에 처참했다.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고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한다는 말이 얼마나 비극적인지 몸소 경험하게 되었다.
차라리 존재하지 않는 것이 나으리라.
게다가 굉장히 무시무시한 사실은 겉으로 보이는 선한 가치이든 악한 가치이든 예배하는 대상이 자신이 만들어 놓은 우상이라면 그것을 숭배하면 숭배할수록 점점 더 자아와는 거리가 먼 그림자가 된다는 사실도 말이다.
학교 다닐 때 미술시간에 한 번쯤 보았을 그림, 뭉크의 '절규'가 생각나지 않는가?
자신이 만들어 놓은 우상 속에 빠져 절규하는 모습이 바로 내 모습이었다면 얼마나 불쌍한 것인가?
그 우상에 집착하면 집착할수록 얼마나 더 공허 해질 것인가?
다행히 감사한 것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했던 것을 조금은 쓴 경험을 통해 나의 눈이 한 거플 벗겨져 나의 눈이 떠진 것이며 나의 귀가 한 거플 벗겨져 나의 귀가 열린 것이라는 사실이다.
보이지 않던 것을 보게 된 것도, 들리지 않게 된 것이 들리게 된 것 모두 많이 소중하고 감사하다. 인생의 모든 경험은 나를 기쁘게 하는 것이든, 슬프게 하는 것이든, 감격스러운 것이든, 아프게 하는 것이든 모든 것이 하나도 버릴 것이 없다는 말을 믿게 되었으니까.
지금 누군가 인생의 실패나 혹은 큰 실수를 경험해서 아파하고 있다면 감히 말해주고 싶다. 금전적인 손해를 입었던지, 아까운 시간을 낭비한 것 같은 일이든, 관계가 끊어진 상실을 겪었든 간에 그 모든 것들이 삶에서 가장 완벽한 타이밍에 필요했기 때문에 온 것이라고. 당신도 나도 괜찮다고 말이다.
그리고 지금 나에게는 이러한 '삶의 의미'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시간이 꼭 필요한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내면을 건강하고 단단하게 만들어야 할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은 참 축복된 일이 아닌가? 그렇게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많으니까. 이 귀한 시간을 더욱 아끼며 소중하게 다루어야 한다는 의무도 책임도 강하게 다가온다.
더불어 자신의 아픔을 당당하게 고백할 수 있는 것도 대단한 용기라는 것이다. 건강한 사람만이 가능한 것이니까 ^^ 아프다면 혼자 끙끙대지 말고 신뢰할 수 있는 주변 사람에게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일기라도 끄적이면서 스스로 용기를 내었으면 좋겠다. 그냥 덮고 지나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용기를 내었을 때 비로소 나에게 혹은 누군가에게 그 시간이 진실로 의미 있는 시간이 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주) 마음을 따르지 않을 용기, 사디어스 윌리엄스, 2024, 두란노
Dana Choi, 최다은의 브런치북을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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