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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미모미 MomiMomi Apr 14. 2020

경계에 대한 경개심을...

구정아 작가의 증강현실 얼음 조각

경계에 대한 경계심...

<구정아 작가의 증강현실 얼음 조각>

위 작품은 작년 가을 삼청동의 한 갤러리의 전시공간에서 구정아 작가가 선보인 공중에 둥둥 뜬 얼음조각이다.


조각 작품이지만 물리적인 공간을 손톱만큼도 차지하지 않았다. 맨눈으로는 볼 수 없고, 앱을 깔고 사진을 찍으면 전시장 곳곳에공중 부양한 얼음 덩어리를 관찰할 수 있는 증강현실 작품이다.

현실세계에는 없지만 가상현실(비현실)에는 존재하는 것이다. 맨눈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핸드폰의 눈으로는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작품은 갤러리 전시 이전 2019년 9월 영국 프리즈 아트페어가 열렸던 야외 공원에 먼저 설치가 되어 소개되 진풍경을 야기했다.


관람자들 핸드폰을 들고 공원에서

보물찾기 하듯

얼음조각을 찾아

이곳저곳 핸드폰 버튼을 눌러댔다.


설치라는 단어가 무색하게

운반비도 설치비도 들지 않은

그야말로 경제성을 갖춘 동시에

‘현실과 비 현실 사이의 경계,

존재와 비 존재 사이의 경계에 대한 질문을 던져주고 있었다.


저 거대한 얼음 조각은 존재하는 것일까? 아니면 가상에 있기 때문에 존재한다고 볼 수 없는 것일까? 만약 현실과 비현실 사이에 경계선이 있다면 그것은 대략 위치가 어디쯤일까? 나의 눈에 보이는 것만이 현실일까? 나의 눈에 보이지 않고 지나쳐 가는 수많은 것들이 과연 존재했다고 볼 수 있을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으로 내가 갖고 있었던 경계의 선들이 점점 흐릿해져 가고 있었다.  




경계에 대한 질문은 현실 세계와 비현실 세계를 넘어 내가 예전부터 가지고 있었던 질문 한 가지에 도했다.


그것은 바로

 ‘효율성과 비효율성 사이의 경계’에 관한 것이다.

효율성이라 하면 들어가는 시간, 비용, 노력 대비 나오는 결과물의 극대화 정도라고 스스로 정의하고 있었다.


결과물의 정도를 양으로 따질 것인지 질로 따질 것인지 복잡한 개념이 들어있긴 하지만, 어찌 되었건 나는 꽤나 효율을 따지는 사람이었다.

일을 할 때는 순서의 효율을 예측해보고, 물건을 살 때도 소위 가성비나 가심비를 가늠해보고 스스로 설득이 되어야 구입을 할 수 있었다. 단순한 효율을 넘어 개인적인 기호에 따른 가중치도 함께 고려했다.

효율성을 따진다는 것은 선택에 대한 자기 확신을 위해 에너지든 시간이든 집약적인 무엇인가를 투입하게 되어있다.

이런 나를 남편은 못마땅해했다.

“효율을 따지는 피곤한 행동 자체가 참말로 비효율적이야.”

남편 말을 빌리자면, 우리의 최종 목적은 행복하게 살자고 하는 건데, 간혹 효율만 따지느라 스트레스받고 시간을 소모하는 것이 오히려 비효율적이란다. 효율과 비효율이 관점에 따라 뒤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하니 재미있었다.  

나도 남편 말에 일부 동의한다. 나이가 드니 남편 말처럼 효율적인 생각이나 행동을 위한 선행작업이 슬슬 귀찮다. 살다 보니 선행작업을 했다고 해서 결과가 꼭 좋은 것도 아니었다.

뭔가 필요하면 이것저것 검색 없이 그냥 적당해 보이는 걸로 선택하는 것이 시간도 절약되고 에너지도 덜 쓰게 된다. 다행인 것은 이것저것 따지는 비교 지능 이외에 직관과 경험이라는 것을 선물로 받았기에 그것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선택에 사용할 에너지를 비축했다가 다른 곳에 사용할 수도 있다. 아이들을 향한 미소를 띠는데 쓰기도 하고, 이렇게 일상을 돌아보는 글을 쓰며 사용하기도 한다. 미소와 글쓰기는 사실상 에너지 소비가 아니라 새로운 에너지를 만들어 낸다.

어찌 보면 이것도 또 다른 효율을 따지는 행위일 수도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에너지 고갈보다는 새로운 에너지를 얻는 일로 연결되기에 더욱 긍정적이다.
 
이렇듯 효율을 뒤집어 생각해보면 은근 비효율적이기도 하고, 때론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의외로 효율적이다. 누군가 그랬다.

‘지구 상의 반대말을 먼 우주에서 바라보면 동의어라고’

내 말이 맞다고 목소리 높이고 파고들었던 일들이 한 발치 뒤에서 봤더니 ‘아뿔싸!’ 아닌 경우도 많았다.  


맞다 틀리다 도 결국은 나의 관점인 것이지

관점을 조금만 비틀면 경계가 모호해다.


절대 진리라는 것은 세상에 희박한 것인지도 모른다.

기준점을 어디에 두느냐가 경계선이 될 텐데, 기준점도 시간과 상황에 따라 조금씩 위치를 달리하게 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살면서 나만의 기준점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쩌면 그 기준점이 절대적이다라고 말하기엔 늘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다.

구정아 작가는 가상현실에 커다란 얼음조각을 띄우고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당신이 구분해 놓은 경계선에

경계심을 늦추지 마시길요.’


라고 말이다.

구정아, 세븐 스타. 밝은 곳에서는 백지로 보이는 작품 ^^



배경 사진.

Newsis 2019.11.20일자 기사 사진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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