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중학교 입학하자마자 처음 맞이한 나의 중학교 첫 반은 1학년 3반이었다. 담임선생님은 약간 긴 생머리를 뒤로 곱게 묶으신 여자 선생님이었다. 얼추 추정하기에 이십대 초중반, 결혼하신 지 얼마 안 된 듯한 여자 유부녀 아줌마 사람 선생님으로 보였다. 이 분 역시 남자중학교에서의 짬밥이 제법 되셨는지, 처음 마주한 나의 학급 학생들에게 조회시간부터 기선제압이 확실하게 들어왔다. 앞으로 이유없이 지각하거나 쌤한테 말 안하고 무단으로 조퇴해서 도망가버리거나 가출하거나 하면 가만 안 두겠다고. 짧지만 단호한 담임선생님의 선전포고에 학급 학생들은 삽시간에 고요한 침묵 속에 휩싸이고야 말 정도였다. 그리고... 담임선생님은 항상 약간은 딱딱한 어투의 경상도 사투리를 구사하고 표정도 좀처럼 밝지 않으신 편이었다. 그러니 남자중학생들이 감히 쫄지 않고 배겨낼 재간이 있었겠는가. 내성적이기로 둘째 가라면 서러울 나 역시 완전 쪼그라들만큼, 담임선생님에 대해서 벌써부터 겁을 집어먹고 있었다. 담임선생님 말 한번 안 들었다가는 시범 케이스로 아작이 날 수도 있겠다는 우려섞인 공포감과 함께...
하지만 겉으로 보여지는 그런 강인한 모습과 달리 담임 쌤은 생각보다 여린 구석이 있는 듯 했다. 이전 에피소드에서 살짝 언급하였듯이, 나는 매우 높은 경쟁률을 뚫고서... 입학과 동시에 1학년 3반 학급 서기로 당당히 선출되었었다. 학급 서기의 주 임무는, 아침에 그 누구보다도 더 일찍 등교해서 담임 쌤 대신 칠판에다가 자습 문제 전체를 판서하는 것이었다. 물론 자습 문제는 사전에 담임 쌤이 나에게 별도로 챙겨주신 "교사용 문제집" 내용 그대로 적기만 하는 것이라서 그다지 어려운 과업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그 자습 문제에 대한 정답 풀이마저도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정식 수업이 시작되기 전인 0교시에 자습 문제를 풀고 그에 대한 정답 풀이까지 모두 마친 뒤에야 정식 수업인 1교시를 시작하는 시스템이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담임 쌤의 기선 제압에 온전히 짓눌려서 담임 쌤 얼굴을 감히 쳐다보지도 못하였던 나였지만... 하루하루 담임 쌤이 나에게 부여한 이러한 과제들을 성실히 수행해 나가게 되면서, 담임 쌤도 나에 대한 신뢰를 가지기 시작한 것 같았다. 그리고 학급 서기의 또다른 중요한 임무 중 하나는, 1교시 수업시간 전에 교무실로 가서 "우리반 출석부" 를 수령해 가는 것 & 정규 수업이 모두 마치고나면 그 "우리반 출석부" 를 교무실의 제자리에다가 안전하게 반납하는 것. 아무래도 오전 오후 두 차례나 매일매일 교무실을 들락거리다 보니, 담임 쌤을 비롯해서 다른 선생님들과 마주칠 기회가 많아지면서 자연스레 학교 선생님들의 얼굴들을 익히게 되었다. 물론 교무실 안에서 지나다니면서 내 교복 명찰을 흘끗흘끗 쳐다보시는 선생님들에게도 내 이름을 자연스럽게 인식이 되기 시작하기도 하였다. 잘 쫄아버리는 내 성격상 교무실 안팎에서 마주한 선생님들에게 워낙 깍듯이 인사를 하다보니, 선생님들 사이에서도 내가 인사 잘 하는 조용한 학생으로 제법 유명해진 거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