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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특급썰렁이 Sep 14. 2024

나의 이생 17

남자중학교 선생님들 (7)

담임 쌤 김OO 과학 선생님은 그런 소심하고 조용하기 짝이 없던 나에게 살갑게 대해 주셨다. 담임 쌤이 상당히 퉁명스러울 정도로 툭툭 말을 던지는 스타일이기는 하였지만, 장담하건대 속마음은 절대 그런 분이 아니었음을 확신한다. 공부도 곧잘 하는 편이었고 생각보다는 성격도 그리 어둡지 않고 활달하였지만 유달리 담임 쌤 앞에서는 바짝 긴장을 해서 어버버어버버 버벅거리는 나의 순진무구한 모습이 아마도 귀여워보였나 보다. 아니 조금은 안쓰럽고 애처로워 보였는지도... 맨날 아침 저녁으로 교무실을 드나들면서도 여전히 혼자 쪼그라든 모습으로 쭈뻣쭈뻣 어색하게 인사를 하는 나를 보시고는, 한날은... OO야, 너 이리 와봐. 사내 녀석이 왜 이렇게 용기가 없냐. 여자 애들마냥 곱상하게 생겨가지고. 너 누나들 밑에 커서 그런거야? 암튼 너무 그렇게 쫄아있지 마. 사나이답게 어깨 쭉 펴고 긴장 풀어. 여기 쌤들이 너 안 잡아먹으니까. 다른 애들은 잘못한 게 있어서 교무실 불려와도 당당하기만 하던데... 너는 잘못한 거 하나 없이 왜 그리 기죽어 있어. 안 그래도 되니깐, 걱정말고 앞으로는 당당하게 다녀. 다른 사람이 생각하기에는 뭐 그다지 임팩트 없는 흔한 말이라고 생각할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는 나 같이 자존감도 떨어지고 내향적이고 잘 상처받는 유리멘탈 같은 성격의 소유자에게는 담임 쌤의 이 한 마디가 나에게 적잖은 위로와 힐링이 되었다. 그 날부터 나는 조금씩 조금씩 자신감을 갖기 시작했고, 놀랍게도 교실 뒷편의 거울에다가 내 모습을 비춰볼 수 있는 용기까지 생기게 되었다. 그럴수록 담임 쌤에 대한 충성도는 점점 더 높아져가게 되고, 담임 쌤 말씀이라면 죽는 시늉도 할 수 있을만치 담임 쌤을 존경하고 따랐던 거 같다. 어느 책에서 읽은 누군가의 말처럼, 어느 누구에게 대한 격려와 응원의 말 한 마디가 그 사람의 인생을 바꿔놓을 수도 있다는 것이 진정 사실이리라. 나는 중학교 입학 당시보다 훨씬 더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전교생을 대상으로 교내 통일 웅변대회인가 뭐시긴가가 열렸다. 각 반마다 한명씩 대표를 뽑아서 이 대회에 응해야만 하는 환경이었다. 무엇보다도 먼저 웅변을 하려면 좋은 원고가 필요하였기에, 소싯적 글 꽤나 썼다는 소문을 안고 있던 나에게 자연 원고 작성의 의무가 주어졌다. 이윽고 나는 몇 일 만에 담임 쌤이 부여한 원고 작성의 사명을 성실히 수행하여 제출하였다. 문제는 이 때부터였다. 내가 쓴 원고를 가지고 웅변대회 대표로 참여하기로 한 학생이 갑자기 이의를 제기하는 게 아닌가. 남이 써 준 원고를 읽기만 하면, 중간에 그 내용을 까먹을 수도 있고 제대로 숙지가 잘 안 된 탓에 실수할 우려가 크다는 식이었다. 한 마디로 자기는 웅변대회 안 나가겠다는 것... 그런 그 학생의 대응에 난감해 하시던 담임 쌤은 나에게 이런 제안을 건네시는 게 아닌가. OO 네가 이 원고를 손수 작성했으니 그 누구보다도 더 확실하게 내용을 알고 있겠지. 그러니 OO 네가 쓴 원고를 가지고 직접 웅변대회 참석하면 되겠네. 아뿔싸, 이게 웬 날벼락이란 말인가. 약속이 다르지 않은가. 내 성격에 절대 남들 앞에 나가서 웅변할 일일랑 없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원고를 썼던 것인데... 이제는 그 원고로 웅변까지 하라고 ㅜㅜ 대략 난감한 상황에 몇 번이나 손사래 치며 사양하였지만, 담임 쌤의 카리스마 가득한 눈흘김 한 방에 나는 금새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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