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은... 지난 "나의 일생 시리즈" 에서 미처 언급하지 못했던 나의 "웅변학원 경력" 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국민학교 6학년 때에 약 3개월 정도 웅변학원에 다녔었던 걸로 기억이 된다. 담임선생님에게서 집에 상담전화가 올 정도로 극내성적이었던 나의 학교 생활을 걱정하시던 아버지와 어머니가 오랜 고심 끝에 끝끝내 웅변학원에 보내는 용단을 내린 것이었다. 공부 관련 학원에는 일절 단 한 푼의 투자조차 하지 않으셨던 어머니가 유일하게 삼남매 모두 보냈던 곳은 진짜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피아노 학원" 이었다. 솔직히 큰누나가 탁구를 관둔 이후로 예체능 자체에 정말 진저리칠만큼 싫어하셨는데, 하필 집 근처에 누가 피아노학원을 개원하면서 고객 확보 아니 소상공인들 간의 품앗이 개념이랄까... 아무튼 피아노를 느닷없이 배우게 되었다. 예상대로 피아노도 젬병이라서, 어린이 바이엘 상권 떼고나서 피아노 쌤과의 즉각적인 협의 끝에... 고작 한 달 만에 즉시 그만두게 된 것이 전부였다. 천재적인 피아니스트가 될 것이 아니라면 애저녁에 그런 좋은 싹수가 보이지 않는다면, 굳이 시간과 돈을 들여서 가르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어머니의 지론이었으니. 나는 글솜씨 외에는 딱히 잘하는 게 없었고, 그나마 꽤 그림을 그리는 편이었으나 역시 "화가로 돈벌어먹고 살기 힘들다" 라는 어머니의 편견에 막혀 애초부터 시작조차 하지 못했었다. 소싯적에 내가 그림 배우게 미술학원 보내달라고 졸랐다가, "남들보다 훨씬 나은 그림을 진짜로 잘 그리는 재능이 있는 사람이라면 애써 미술학원 안 다녀도, 남들이 그 재능을 알아줘서 얼마든지 그림으로 성공한다. 네가 그 정도가 아니라면, 돈 아깝게 괜히 미술학원 다닐 필요없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 맞는 얘기이긴 한데, 어린 내가 듣기에는 전부 속상하고 맘 아픈 이야기로밖에는 생각되지 않았다.
그런 어머니가 애써서 보낸 웅변학원이었다. 오죽 했으면... 집에서도 자폐증마냥 방구석에 처박혀서 말없이 책만 읽어대는 내 모습이 그렇게도 싫었나 보다. 나는 그저 가만 앉아서 읽고 싶은 책을 읽는 것이 좋았을 뿐이었다. 어떠한 정신적 육체적 질병도 없었고... 지금 생각해 보면 상당히 심각할 정도로 문자중독이었던지라 단지 글방 선비마냥 책 속에 파묻혀 있는 시간이 많았을 뿐이었다. 심지어 언젠가는 나중에 커서 조그마한 서점을 운영했으면 좋겠다고 희망한 적도 있었다. 아니면 도서관 사서라도. 그러면 내가 좋아하는 책을 하루종일 실컷 읽으면서 평생 살아갈 수 있을테니... 어쨌든 어머니가 어찌 비용을 마련하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집에서 약간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어느 웅변학원에 국민학교 6학년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다니게 되었다. 거리가 멀어서인지 웅변학원에서는 봉고차량을 운영했는데, 학원 가는 첫날 그 봉고차를 탔더니만 온통 쬐그만 국민학교 1, 2학년 수준의 아이들이 하나 가득 타고 있는 게 아닌가. 그 아이들은 이미 170센치에 가까울 정도로 키가 큰 내가 봉고차에 탄 것을 매우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기 시작했다. 설마 요런 꼬맹이들만 있는 건 아니겠지. 아니 그건 현실이었다. 웅변학원에는 모조리 국민학교 1~3학년 아이들로 꽉 차 있었다. 그나마 고학년인 3학년도 몇 안 될 정도. 첫 날이라 학원 강사님이 나더러 일어나서 왜 여기 다니게 되었는지와 자기 소개를 모두들에게 해 보라고 하셨다. 나는 당연히 그 많은 동생들 앞에서도 주눅이 들고 긴장한 나머지 버벅거리며 말 끝도 제대로 맺지 못하고 대충 얼버무리고 말았다. 그 순간 그 어린 녀석들은 내가 왜 저 많은 나이에 가리늦까 자기들과 함께 웅변을 배우게 되었는지 담박에 알아채리는 눈치였다. 나는 키만 제일 큰, 웅변학원 제일 꼴찌 신입생이 되어버렸던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