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질서 교통질서~ 말로만 하지말고~ 교통질서! 여러분, 우리 모두는~ 반드시~ 교통질서를~ 잘 지켜야 한다고~ 이 연사~ 자신있게 주장~합니다! 언제나 유사한 목소리톤과 특유의 음색, 그리고 매번 비슷한 레퍼토리로 마무리하는 이른바 "웅변 톤" 을 배워나가기 시작했었다. 비록 시작이 너무 늦어서 국민학교 저학년 꼬맹이들에게 한참이나 뒤쳐져 있던 나였지만, 생각보다 착한 그 꼬맹이들의 응원과 격려 속에서 나는 한발짝 한발짝 발표력을 키워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면 온 식구가 둘러앉아 나의 웅변하는 모습을 보는 게 하루의 일상이었고, 아버지도 어머니도 간만에 투자한 나에 대한 반대급부가 금새 드러나는 것을 보고는 제법 흐뭇해 하시는 듯 보였다. 학원을 다니기 시작한지 한 석 달쯤 되었을까, 예상했던대로 어머니는 이제 그만 다녀도 되겠다고 일방적인 통보를 하셨다. 그 정도면 우리 막내아들 어디 가서 욕 먹을 정도까지는 아니겠구나 하는 결심이 들었으리라.
앞서 약 3개월 간의 웅변학원 교습에도 불구하고, 나의 발표력은 일부 개선되었을런지 몰라도 연단에 올라 많은 사람들 앞에서 웅변을 할 수준에는 턱없이 부족하였다고 장담한다. 왜냐하면 결정적으로, 나는 무대 공포증이 있어서 친한 학급 친구들 앞에서도 벌벌 떨면서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할만큼 심각한 중증 환자였기 때문이었다. 그런 나에게 웅변대회 참석은 한 마디로 피가 마를 정도의 스트레스이자 고문에 가까웠다. 아무튼 담임 쌤의 특명을 하달 받았기에 나는 "올림픽 정신"에 입각하여, 웅변대회에 참가에만 오로지 의의를 두고자 정말 크게 마음먹었었다. 국민학교 6학년 때 웅변학원에서 배웠던 것처럼 그렇게 힘있게 해낼 자신일랑은 전혀 없었다. 웅변대회 준비라기보다는 그저 내가 직접 작성한 원고를 외우는 정도로만 만족할 생각이었다.
드디어 웅변대회의 날. 적어도 1,200명은 족히 넘는 수많은 전교생들이 거의 모두 운동장에 모였다. 각 반의 대표들이 한 사람씩 운동장 맨 앞에 마련된 연단에 올라 각자가 준비한대로 맘껏 열띤 연설들을 토해내고 있었다. 내 순서가 올 때까지 기다리고 아니 어거지로 견뎌내고 있었던 나는, 연설을 토해내기는커녕 점심 때 먹은 음식을 토해내고 싶은 심정이었을 뿐이었다. 결국 내 차례가 되었다. 얼마나 떨었던지 연단에 오르는 그 몇 안 되는 계단조차 버거울 수밖에 없었다. 후들후들거리는 두 다리를 하나하나 억지로 끌어당긴 뒤에야 연단에 올라설 수 있었다. 생각보다 많이 높은 위치였던 연단에 올라 운동장 전체를 바라본 순간, 학교의 모든 선생님들과 전교생들이 일제히 나 하나만을 바라보고 있음이 순간 인식되었다. 당장에라도 연단에서 뛰어내려 도망가고 싶었다는... 최대한 시선을 저 멀리 먼 산을 바라보고자 다짐 또 다짐을 하며 내 원고가 적힌 원고지를 펼쳐 들었다. 눈앞이 깜깜하다는 말이 진짜 현실화된 듯, 내가 직접 쓴 원고였지만 뭔 내용인지 도통 모르겠다는 느낌 속에 힘차게 외쳐 아니 힘없이 더듬더듬 읽어내려갔다. 나의 웅변 아니 "원고 읽어내려가기" 는 시간이 한참이나 지나서 겨겨우 끝이 났고, 전교생들은 너무나도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는 것은 물론 박수소리도 아예 들리지 않았다.
웅변대회가 모두 마무리되고 나서, 나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학급 서기로서의 책무를 다하기 위해서 출석부를 들고 교무실로 향했다. 교무실 문을 열고 막 들어서는 순간, 저기 멀리서 들려오는 어느 선생님의 목소리... "OO야, 웅변대회 참가하느라 오늘 정말 수고 많았다." 그러고서는 이곳저곳에서 이런 응원의 목소리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야, 너 생각보다 잘하더라." "인물만 잘생긴 줄 알았는데, 너 웅변도 잘하네." 그리고 선생님들께서 약속이나 한 듯 박수를 치시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여린 나의 마음에 가슴 속까지 감동먹어서 왈칵 눈물을 터트릴 뻔했다. 여기서 울면 약간 찌질해 보이겠지. 그런 생각에 잠시 잠길 그 때에 담임 쌤이 내게 다가오셨다. "OO야, 너무 고생 많았다. 너한테는 무척 힘든 일이었을텐데. 오늘 너 참 멋지더라." 나에게는 담임 쌤의 그 한 마디로 충분하였다. 그렇게 나는 그 날 한 뼘 더 성장하였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