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일생 8
무슨 날만 되면 비가 내리는 국민학교...
국민학교 운동회날마다 비가 왔다. 가을운동회날뿐만 아니라 봄소풍, 가을소풍, 수학여행 심지어 교내 육상대회날만 되어도 비가 왔다. 하도 비가 오니깐 급기야 2500여명의 전교생들에게조차 운동회 개최날짜를 속였던 적도 있다. 어떤 식이었냐 하면... 오늘 아침에 운동회를 한다고 해서 책가방도 안 싸고 위아래 체육복 깔맞춰 입고 운동화 바람에 학교로 신나게 뛰어갔는데 학교 정문에 "오늘 운동회는 우천 취소" 라고 하더라. 그리하여 운동회 안 하나보다 하고 다시 집에 가려는데, 갑자기 운동회를 시작한다는 것이었다. 당황한 친구들은 부랴부랴 아버지 어머니한테 연락을 하려 하였지만 그 때는 공중전화도 그냥 전화도 귀하고 귀한 옛날인지라... 맨 처음에 밝혔다시피 1907년에 개교한 국민학교라서 그런지, 대한민국 학교들마다 각각 하나쯤은 간직하고 있다는 가히 "학교 전설의 총집합체" 라 할 만했다. 옛날 옛적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학교를 처음으로 짓고 있는 공사장에 여우가 한 마리 나타났다고 한다. 이 여우를 해괴하게 여긴 어느 공사판 인부가 재수 옴 붙었다면서 여우를 당장 잡아죽였단다. 그것도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날 밤에. 그러고는 학교가 드디어 완공되었고... 또 누군가는 시멘트를 바를 때 그 여우의 죽은 시체를 함께 넣어 양생하였다 하기도 하고... 심지어 완공일 행사 그 날에도 비가 왔단다. 암튼 공사 완공된 그 해부터 국민학교의 크고 작은 행사나 이벤트가 있는 날이면 어김없이 먹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짱짱 화창하던 하늘이 급작스레 검은 구름으로 덮히거나 아예 대놓고 햇볕은 쨍쨍한데 한켠에서는 비가 우루루 쏟아지는 이른바 여우비가 오기도 했다. 어찌나 무슨 날만 되면 비가 오는지, 학교 앞 문방구 아저씨 아줌마만 신이 났다. 이번에도 혹시나 싶어서 맑은 날씨에도 싸구려 비닐우산을 여러 개 비치해 놓으면, 역시나 예상도 못한 비 소식에 불티나게 팔려나가는 꼴이라니... 죽었다는 그 여우에게 큰절이라도 해야될 판이었다. 하긴 학교에서 매년 그 여우의 억울한 한을 잠재우기 위해 몰래 비공식적으로 제사를 지낸다는 말이 있을만큼 국민학교 행사와 비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그런 관계였다.
그것 말고도 다른 전설과 뒷이야기, 떠도는 풍문과 야화들은 차고도 넘쳤다. 너른 학교 운동장에는 여러 채의 교실 건물들이 있었고 그 주변에는 김유신 장군, 이순신 장군, 세종대왕, 강감찬 장군, 을지문덕 장군 웬만한 왕들과 장군들의 동상이 여기저기 세워져 있었다. 화랑 오계에다가 다른 학교에서는 흔하지 않은 "이승복 어린이" 동상까지 있었으니 말이다. 그 동상들은 청동으로 만들어진 늠름한 형상에다가 이목구비도 뚜렷하고 워낙 강렬한 인상이다 보니 꿈에서도 나올 지경이었다. 그 중에서도 압권은 학교 운동장 한켠에 크게 자리잡은 동상 분수대였다. 분수대 중앙에는 정확히는 그 정체와 신분을 알 수 없는 국군 용사들의 동상이 완전군장에 기관총과 권총을 손에 쥔 전장 그대로의 모습으로 여러 명 서 있었던 걸로 기억된다. 문제는 그 분수대인데, 어느새부터인가 물이 완전 다 말라버려 동상들만 덩그러니 남아있는 그 분수대가 상당히 중요한 분수대였던 것이다. 듣자 하니, 학교 부지가 워낙에 크고 경주시 거의 한복판에 위치하고 있다 보니 625 전쟁 당시 이 국민학교 건물을 육군병원으로 임시 사용한 적이 있다는 것이다. 그 유명한 낙동강 벨트에서도 제법 인지도가 있는 주요 요충지였나 보다. 그렇게 육군병원으로 사용되다 보니 당시 총상을 입고 치료를 받던 국군 아저씨들 중에서 안타깝게 돌아가신 분들의 유해가 그 분수대 아래 묻혀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서... 당시 온통 나무바닥이었던 낡고 오래된 교실 바닥 밑에는 수십 수백구의 국군 유해들이 고스란히 묻혀 있다고. 그래서 한 학기에 한번씩 전교생이 일제히 걸레 한쪽씩을 가지고 와서(돈 많은 집 애들은 학교 앞 문방구에서 50원엔가 간단히 구입했고, 돈 없는 나 같은 아이들은 집에서 쓰다버린 수건이나 행주를 밤새 꿰매서 걸레를 제작하곤 했다) 걸레보다도 더 비싼 고급 왁스를 묻혀서 나무바닥에 윤을 내고 광을 내는 작업을 하다보면... 구멍난 나무바닥 사이로 죽은 시체와 눈이 마주칠 때도 있다는 섬뜩한 얘기도 떠돌기도 하였다. 생뚱맞게 요코하마 귀신 이야기가 유행하기도 하였다. 요코하마에서 다리가 잘린 사람이 "내 다리 내놔라" 라며 따라온다는 얘기부터, 콩콩 드르륵 없네 귀신 이야기까지... 비 사이로 막가... 깐데 또까... 텔레비전 달랑 4채널 KXS1, KXS2, MXC, EXS 새벽 05시 30분~오전 09시 30분, 16시~17시 화면조정시간, 17시 30분~23시 30분까지 였던가 그 몇 안 되는 선택지를 가지고 5천만 남한 인구 전체가 하루 웬종일 1년 365일 내내 매달려 있었던 그 때에는 나 같은 국민학교 학생들에게 있어 TV화면 편성표 외우기는 식은 죽 먹기보다도 더 쉬운 껌 중의 껌이었다. 그러니 얼마나 심심했으면 있던 얘기도 모자라서 없던 얘기까지 지어냈을까. 그래서 그래서 길가다가 신문지 한 장이라도 줍는다 치면, 10원짜리 딱성냥 하나 사서 신나게 불장난해 보는 게 소원이었다. 누가 요행히 그 귀한 일회용 라이타라도 하나 구해오는 날이면, 길거리에 보이는 족족 불 붙여보고 싶어 안달이 날 지경이었으니. 이것도 태우고 저것도 태우고 산 것도 태우고 죽은 것도 태우고 움직이는 것도 태우고 안 움직이는 것도 태우고. 태우다 태우다 한번은 작은 시냇가의 갈대밭에 불을 무심코 붙였다가 큰불을 내서 진짜 큰일날 뻔한 적도 있다. 나를 포함한 동네 아이 셋이서 그 많은 불을 끄느라 얼마 전에 새로 산 운동화 밑창이 다 그을린 것도 모를 정도였다. 어머니한테 밑창 탄게 결국 걸려서, 그 날은 내가 끈 그 큰불보다도 더 따끔하게 야단을 맞았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한참 동안을 오줌을 쌌다. 국민학교 5학년 때까지였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