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데없는 다운그레이드

by 녹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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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년 1월 29일의 산책 -




오늘은 추운 날씨였다. 패딩 주머니에 손을 푹 꽂아야 했다. 물닭들은 이런 날씨에도 물속으로 몸을 푹 담갔다. 물을 파고 들어갔다가 한참만에 수면 위로 나왔다. 길게는 20초까지도 숨을 참는 것 같았다. 얼음장 같은 물속을 밥그릇 삼은 잠수성 새들은 척박한 환경에 사는 존재답지 않았다. 하나같이 강 위를 천천히 누볐다. 품위있게.


차가운 하늘에 떠 있는 독수리들도 유유하긴 마찬가지였다. 나는 까만 열쇠구멍 같은 그 새들을 눈으로 좇았다. 두웅-그을-게에- 큰 원을 그리며 날던 독수리들은 일식日蝕을 하듯 태양과 겹쳐졌다. 직사광선이 눈을 찔러서 나는 추적을 그만뒀다.


갈대밭 한쪽엔 또 다른 물닭 무리가 와글와글 모여 있었다. 뽀얗게 건조된 수풀과 동그랗고 통통한 까만 새들이 기분 좋은 대조를 이루었다. 저렇게 많은 물닭들이 뭍에 나와 있는 건 처음 보았다. 나는 그들과 6~7미터 떨어진 곳에 서 있었는데 사진을 찍고 싶어서 휴대폰을 꺼냈다. 내가 팔을 쭉 뻗는 동시에 물닭들은 우르르 풍덩풍덩 물속으로 도망쳤다. 내가 너무 조심성 없이 팔을 뻗었나보다. 남색 물 위에 V자를 그리며 새의 꽁지는 허둥지둥 멀어졌다. 달아나는 물닭들이 고개를 돌려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무안하고 미안했다. 놀래려던 게 아닌데……. 청둥오리 한 마리가 모래톱과 강의 경계선에서 우두커니 이 일을 지켜보았다. 그는 내 만행의 목격자였다.


공원 공사 때문에 뒤집어진 흙바닥을 새의 부리가 콕콕 찌르고 있었다. 늘 보던 새 두 종류였다. 하나는 후투티였고 다른 하나는 이름 모를 새였다. 후투티는 몸길이가 대략 30cm나 되며 신체 특징도 뚜렷하다. 처음 보자마자 어렵잖게 이름을 알아낼 수 있는 새였다. 하지만 저 이름 모를 작은 새의 정체는 몇 달째 밝혀내지 못했다.


미스터리 새의 크기는 참새보다 살짝 크다. 걸음이 아주 빠른데 멈출 때마다 긴 꼬리를 까딱거린다. 날 때는 직박구리처럼 파상 비행을 해서 파도 타는 서퍼처럼 넘실넘실 난다. 날면서 째재잭-! 하고 빠르게 울기도 한다. 목소리는 얇고 높다. 겁이 엄청 많아서 사람과는 최소 10미터를 유지한다. 당최 자세히 볼 수가 없다. 휴대폰 카메라의 줌을 끝까지 당겨 찍어도 흐리멍덩하게 나온다. 몸색은 전체적으로 밝은 회색이다. 검은색과 흰색도 묻어 있는 것 같은데 너무 멀어서 또렷한 식별이 불가능하다. 아~ 망원경 사고 싶어. 아~ 가까이에서 보고 싶어.


오늘은 기필코 저 새의 이름을 알아내야겠다. 사진은 초점이 뭉개진 것들 뿐이라 사진 검색은 물 건너 갔고 검색창에 온갖 단어를 쑤셔 넣었다. '우리나라 겨울 철새, 겨울 철새, 겨울 새, 강에 사는 새, 작은 새…….' 몇 시간 동안 수십 장의 새 사진을 뒤지고 새소리와 새 영상들을 참고했다. 내가 관찰했던 몇 가지 특징들과 검색 결과들을 조합하여 마침내 미스터리를 풀었다. '백할미새'였다.


다른 사람이 찍어 올린 백할미새의 선명한 사진을 감상했다. 콕 박힌 작은 눈이 검은 비취 같았다. 이 새는 봄이 되면 북쪽으로 돌아가는 겨울 철새라고 한다. 저 작은 몸으로 그 먼 거리를 도대체 어떻게 날아가는 걸까. 우리 동네의 강을 찾았던 겨울 철새들은 벌써 하나 둘 떠나는 중이다. 강은 한겨울일 때보다 인구 밀도, 아니 조구 밀도가 헐렁해졌다.


철새들은 목숨을 걸고 이동한다. 한 번에 최장 1만 2천 km까지도 쉬지 않고 비행하기 때문에 신체적 스트레스가 엄청나다. 내가 저 정도의 거리를 쉼 없이 걷는다면 다리가 떨어져 나가겠지. 철새들의 이주엔 탈진뿐 아니라 먹이 부족과 악천후, 천적들도 위험요소이다.[1] 게다가 고층 빌딩은 철새들에게 무엇보다 높은 장애물이다. 2014년 미국 환경단체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에서만 최다 10억 마리의 철새들이 이주 중 빌딩에 충돌하여 죽었다고 한다.[2] 안 그래도 척박한 야생 환경을 인간이 쓸데없이 다운그레이드 해 놓았다. 초침 한 칸이 움직일 때 몇 마리의 동물이 죽어나가는 것일까. 인간 때문에 파괴되는 생명들의 머릿수를 생각하면 머리가 어지럽다.


얼마 전에 유튜브 '새덕후' 채널에서 야생동물구조센터의 모습을 본 적이 있다. 다친 동물들을 치료하고 재활시킨 뒤 가능한 한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시설이었다. 보호 중인 새들의 상태를 점검하고 먹이를 주기 위해 계류장의 문을 열면 새들은 몇 초와 몇 센티미터의 틈을 타서 계류장 복도로 날쌔게 탈출했다. 그들은 자유를 갈망했다. 탁 트인 고향을 갈구했다. 그들을 오래 본 김봉균 재활관리사님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


"제가 생각하기에도 야생(자연, 외부 환경)은 이 친구들에게 너무 척박하거든요. 근데 저는 야생동물구조센터에서 일하는 사람이고 사람이 만들어 놓은 공간에서 머무는 야생 동물들을 굉장히 많이 지켜봐온 사람이잖아요. (구조센터에서 생활하는 동물들은) 행복하지 않을 거 같아요. 안전하게 먹이를 얻어먹을 수 있는 환경에 놓여 있는 그 평생이 저는 행복하지 않을 것 같아요. 차라리 위험하더라도, 언제 어떻게 위험이 닥칠지 모르고 항상 긴장하며 살아야 된다 할지라도, 나가서 사랑을 했으면 좋겠고요, 나가서 다양한 먹이를 먹을 수 있는 기회를 자기가 만들어 낼 수 있었으면 좋겠고, 햇빛을 받고 싶을 때 언제든지 햇빛을 받았으면 좋겠고, 목욕을 하고 싶을 때 언제든 목욕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근데 사람이 만들어놓은 공간에서는 야생에서 누릴 수 있는 수많은 권리를 충족해 주기가 어려워요. 저는 그래서 야생동물은 야생에 있을 때 훨씬 더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3]


야생동물구조센터는 중상을 입은 동물들의 두 번째 심장 같은 장소이다. 이런 곳이 더 많아져야 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야생동물구조센터를 더 많이 짓는 것보다 자연환경을 덜 건드리는 게 훨씬 적극적인 구조일 것이다.










[1]. https://www.allaboutbirds.org/news/the-basics-how-why-and-where-of-bird-migration/

[2]. https://www.ytn.co.kr/_ln/0104_202104121017019369

[3]. https://youtu.be/C82lbHwbh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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