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토록 이름이 알고 싶은 건지

by 녹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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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2월 2일의 산책-


나는 1동과 2동으로 이루어진 작은 아파트에 산다. 나란히 서 있는 낮은 아파트 두 채는 땅에 붙여 세운 두 손이다. 땅이 하늘을 들여다보느라 눈 옆에 양손을 갖다 댔다. 넙데데한 손바닥으로 괄호 친 한 줌 하늘에 오늘은 독수리 한 마리가 박혀 있었다. 정지비행하던 그 새는 조금 뒤 괄호 밖으로 스르르 퇴장했다. 푸른 무대에 혼자 떠 있는 건 꽤 수줍은 일이었겠지.


나흘 만에 산책하려고 나왔다. 어제는 비가 왔고 그저께는 흐렸는데 오늘은 무균실처럼 청명했다. 하늘은 구름을 싹 청소했고 대기는 먼지를 훅 불어버렸다. 무척 춥긴 했지만 이런 날에 나를 온종일 집에 구금하는 건 날씨에 대한 모독이다.


산책로에는 주머니에 소형 라디오를 넣은 산책객이 있었다. 그는 나보다 1~2 미터 앞섰는데 걷는 속도는 나와 비슷했다. 라디오는 요란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나는 멈춰 서서 소음으로부터 한 걸음씩 탈출했다. 라디오 소리가 흐려질 때까지 기다렸다. 산책할 때 내 귀에 들어오는 건 새와 바람, 물의 목소리면 족하다.


강가에서 "삐이-요" 하는 새소리가 들렸다. 얼마 전부터 이따금 들리는 소리였다. 도대체 누구의 목소린지 알 수가 없다. 우거진 갈대 속이나, 바글바글 모여있는 물새들 틈에서 매우 드물게 새어 나오는 소리였다. 오늘은 저 소리를 듣자마자 재빨리 휴대폰의 녹음 앱을 켰다. 오예! 드디어 녹음한다! 이 소리를 인터넷에 올려서 어떤 새인지 물어보면 되겠지? 집에 돌아가 녹음 파일을 확인했을 땐 태풍 같은 바람 소리만 기록되어 있었다.


오늘 바람은 무지막지했다. 귀도리 모자를 썼는데도 바람이 모자 안으로 들어가 정수리와 귀가 너무너무 추웠다. 턱이 불편할 만큼 최대한 끈을 조였다. 모자를 얼굴에 밀착시켰지만 뒤통수는 계속 시렸다. 패딩 잠바에 달린 모자까지 뒤집어 쓰니 그나마 살만했다.


갈대들은 너그러워서 저런 칼바람을 맞으면서도 사아아- 하고 부드럽게 노래했다. 하아얗고 큰 백로는 슬로모션처럼 퍼얼-러억-퍼얼-러억- 날았다. 갈대밭 쪽에서는 오목눈이의 삐이- 삐이- 소리가 가냘프게 이어졌다. 굴착기가 파헤친 땅 위에서 후투티는 한결같이 벌레 사냥에 몰두했다. 내 눈은 후투티를 지나 까치에게로 향했다. 까치는 허연 잔디밭에 서서 '오늘은 누구를 드잡이해볼까'하며 머리를 굴리는 중이었다. 까치가 조류계의 일진이긴 해도 저 새 역시 시선을 받아 마땅한 소중한 자연이다.


차가운 강 위에는 오리 한 마리가 있었다. 잠수하는 대신 고개만 숙여 물을 뒤지는 걸 보니 수면성 오리인가 보다. 휴대폰을 꺼내 한껏 줌을 당겨 찍었다. 화면에 1cm 짜리 오리가 흐릿하게 담겼다. 희미해도 특징은 대강 보였다. 머리는 꽤 어두운색이며 꼬리 쪽도 검정에 가깝고 등은 희고 앞 가슴은 회색이었다. 얘가 누군지 너무 궁금했다.


집에 돌아가 검색창에 온갖 단어를 쳐 가며 오리 정보를 뒤졌다. 1cm의 몽타주와 월드와이드웹을 가지고 '청머리오리'라는 정답을 찾아내기까지는 세 시간이 걸렸다. 모니터를 쳐다보며 혼잣말을 했다. "청머리오리… 청머리오리." 웃음이 나왔다. 오늘도 이렇게 쓸모없는 일에 금쪽같은 시간을 소비했구나. 그러나 허무하지 않았다. 부끄럽지도 않았다. 작은 이웃의 이름을 알아내는 일에 나는 진심이었으니까.


왜 그토록 이름이 알고 싶은 건지 잘는 모르겠다. 동물의 이름을 짓던 아담의 마음을 물려받았으려나.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은 아담에게 "땅을 정복하고… 모든 생물을 다스려라"라고 명령하셨다. 아담은 그 명령에 순종한답시고 중장비로 땅을 밀어 빌딩을 짓거나 동물을 총으로 쏴 죽이며 밀렵을 하지 않았다. 아담은 "모든 가축과 공중의 새들과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지어 주"[1]는 것으로 그 명령을 수행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연을 선물로 주셨고 그것을 즐거이 누리며 소중히 관리하기를 원하셨다. 아담은 그것을 제대로 이해한 사람이었다. 자연을 착취하고 파괴하는 근거를 기독교적 세계관 때문이라고 떠드는 서구 문명은 이해력이 모자라도 너무 모자라다.


사람들은 아이를 임신했을 때 태명을 짓곤 한다. 그 아이가 태어나면 본명을 지어준다. 반려동물에게도 이름을 선물한다. 어떤 사람들은 자가용에도 이름을 붙인다. 이름을 지어주고 불러주는 건 그 대상을 향한 사랑이나 애틋함 때문일 거다.


번쩍이는 짙은 초록 머리를 가진 청머리오리.

이름을 불러줄 수 있는 대상이 하나 더 늘었다. 웃음이 또 나왔다.







1. 쉬운 성경. 창세기 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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