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원을 넣었다

by 녹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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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년 2월 3일의 산책 -


두시 반의 햇빛이 청둥오리의 머리에서 진녹색으로 번쩍였다. 그 새는 주둥이를 물에 쭉 내밀며 얕은 물가를 걸었다. 고개를 좌우로 쉼 없이 떨며 부리를 딱딱거렸는데 먹이를 먹는 듯했다.


나뭇가지에 도착한 햇빛은 흰색의 미로처럼 빛났다. 나무의 손가락들 중 몇 개는 땅으로 당겨지듯 내려가다가 초리에서 방향을 틀어 해를 가리켰다. 하강하던 가지 끝에서 반전 같은 상승 에너지가 느껴졌다. 겨울나무는 무채색이지만 푸른 생명의 에너지를 품고 있다. 2월 초의 나무들은 온통 잿빛이지만 몇 달만 지나면 청둥오리의 머리처럼 초록으로 번쩍이겠지.


눈부신 새와 나무를 가진 우리 동네 강변 산책로는 천혜의 자연이 아니다. 자연 함유 화장품으로 단장한 도시의 끄트머리이다. 넓게 깔린 잔디와 나무 몇 그루가 방치에 가까운 관리 속에서 비죽비죽 자라던 곳이다. 그러다 한 달 전, 공무원들은 새삼 열심을 냈다. 공원에 칠했던 화장을 조금 닦아내더니 그 민낯에 중장비로 구멍을 냈다. 거기에 시멘트를 붓고 굵은 파이프를 삽입하고 철골을 세웠다. 화장보다 더 두꺼운 가면을 씌우는 중이다. 오늘은 파란색 천막도 새로 생겼다. 공사 관련 승합차가 잔디를 밟고 주차돼 있었다. 나는 눈치 보는 산책객이 됐다. 공사 트럭이 언제 산책로를 내달릴지 모르기 때문이다.


어수선한 산책로를 걷다가 한 중년 남성의 뒷모습을 보았다. 그는 바지춤을 내리고 갈대밭을 향해 오줌을 발사했다. 갈대밭 안으로 깊이 들어가 몰래 방뇨하는 게 아니었다. 사람이 많이 지나다니는 길의 바로 옆에서 일을 보고 있었다. 거기서 공원 화장실까지는 100m도 떨어져 있지 않았다. 햇빛은 그 남성을 적발했다. 오후 3시의 핀 조명이 그를 때렸다. 세상에서 가장 시력이 나쁜 사람도 저 방종의 목격자가 될 수 있도록.


오줌이 발사된 곳에서 멀지 않은 장소엔 왜가리가 있었다. 그 큰 새는 쓰레기가 시체처럼 엎어져 있는 얕은 강가를 걸으며 먹이를 탐색했다. 사람들은 왜 이곳에 뭘 자꾸 추가하는 걸까. 나무나 꽃 같은 게 아닌 시멘트, 트럭 바큇자국, 철근, 가지 각색의 쓰레기, 개똥, 소변 같은 걸 보태고 있다. 왜가리는 쓰레기와 소변이 함유된 물가에 크고 노란 부리를 자꾸만 담갔다. 새를 말려야 할지 사람을 말려야 할지 헷갈렸다.






- 2021년 2월 3일. 국민신문고에 넣은 민원 -


제목: 00동 00강 둔치 청소 문의드립니다


내용: 안녕하십니까 수고 많으십니다. 저는 00동 00강 둔치를 자주 이용하는 00동 주민입니다. 이곳엔 쓰레기가 정말 많습니다. 마스크나 자잘한 휴지부터 거대한 스티로폼, 부러진 우산 등 온갖 쓰레기로 강변 공원이 더러워진 지 오래입니다. 쓰레기들 중 몇몇은 수 주 동안 방치된 것도 있습니다. 공원을 이용하는 주민으로서 불쾌하기도 하지만 겨울 새들이 쓰레기가 떠다니는 강에서 먹이를 찾는 모습이 가장 민망하고 안타깝습니다.


요즘 00동 00강 둔치에는 야외무대와 인라인스케이트장 등을 설치하느라 분주합니다. 거기에 들어가는 비용과 시간의 일부만이라도 강의 쓰레기를 치우는데 할애한다면 훨씬 쾌적한 공원이 될 것입니다. 강의 하중도에도 비닐 쓰레기가 나무를 꽁꽁 휘감고 있습니다. 볼 때마다 미안하고 괴로운 풍경입니다. 인공적인 구조물을 더 늘리는데 힘을 쏟기보다 인공적인 찌꺼기에 숨 막혀하는 자연을 돌보아주십시오.


정리:

1. 00동 00강의 쓰레기 관리가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 알려 주십시오.

2. 이곳의 청소 횟수를 지금보다 더 늘려주시길 촉구합니다.






- 2021년 2월 9일. 민원에 대한 답변 -


처리결과.

1. 귀하의 가정에 항상 행복이 가득하시길 기원합니다.

2. 국민신문고로 접수된 "00동 00강 둔치 청소 문의"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답변드립니다.

○ 하천변 쓰레기로 인하여 불편을 드린 점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 말씀하신 00강 둔치는 현재 청소 및 주변 환경 정비를 시행 중에 있으며, 빠른 시일 내 조치하여 깨끗한 하천 환경을 조성토록 노력하겠습니다.

3. 앞으로도 시정발전에 많은 관심 부탁드리며, 답변에 대하여 문의 사항이 있으신 경우 00시 건설하천과 하천 관리팀(☎000-000-0000)로 연락하여 주시면 친절히 안내해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끝.





국민신문고는 참 좋은 서비스이다.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불합리한 일을 언제든 쉽게 하소연할 수 있는 공간이니까. 단, 구체적인 대답이나 실제적인 해결은 기대하지 않는 게 정신 건강에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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