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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녹차 May 06. 2021

쉼 없이 맹렬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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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5월, 내가 사는 작은 도시에 코로나 확진자가 꾸준히 발생 중이다. 집단 발생의 경우를 제외하면 하루에 평균 열명 안팎


아이들은 일주일에 두세 번 등교한다. 학교 안 가는 날엔 온라인 수업을 한다. 매일 출근하는 남편은 마스크 끈에 작고 폭신한 귀 보호대를 감는다. 그래야 귀의 뒷부분이 하루 종일 견딜만하단다. 식구들은 거의 모든 끼니를 집에서 해결한다. 나는 손이 거칠어졌다. 책상에 앉아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릴 땐 나도 모르게 존다.  피곤하긴 하구나.


지난주 금요일엔 큰애가 다니던 피아노 학원이 문을 닫았다. 코로나 때문에 학원 운영이 어려워져서였다. 아이는 선생님께 카드를 썼고 나는 작은 선물을 준비했다. 마지막 수업 날 선생님께 찾아가 인사를 드렸다.


"선생님, 마음이 얼마나 어려우셨어요. 너무 안타까우시지요. 저희도 너무 아쉽습니다. 그동안 저희 아이에게 좋은 가르침 주시고, 소중한 추억 만들어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오며 가며 우연히라도 뵐 수 있으면 좋겠네요. 혹시라도 다시 학원을 열게 되면 꼭 연락해 주셔요. 전화번호 바꾸지 않고 있을게요." 


피아노 선생님의 눈에 눈물이 가득했다. 나도 목이 멨다. 두 시간 뒤 큰애는 선생님께서 주신 예쁜 과자 선물을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는 학원에서 참았던 눈물을 펑 터트렸다.


큰애는 지난주부터 입안이 성할 날이 없다. 작은 충치를 레진으로 때웠는데, 치료하고 나서도 계속 아파했다. 치통은 밤에도 아이를 흔들어 깨웠다. 새벽마다 진통제를 먹였다. 2시간 간격으로 부루펜과 타이레놀 진통제가 아이 몸에 들어갔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치료가 잘못된 건가 싶어 다른 치과로 가봤다. 레진 치료가 잘못된 건 아니었고 바로 옆의 이가 문제라고 했다. 


문제의 이엔 뿔처럼 뾰족하게 돋은 '치외치'라는 게 있었는데 그게 부러지면서 치아와 잇몸에 상당한 염증이 생긴 것이었다. 큰애는 마스크를 벗고 코와 입을 드러낸 채 염증 치료를 받았다. 의사 선생님이 잇몸을 눌러 염증을 짜냈다. 마취 주사를 여러 번 맞았는데도 잇몸을 누를 때마다 큰애는 아파서 덜덜 떨었다. 아이는 불룩하게 부은 볼을 얻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큰애는 통증 때문에 겨울잠 자는 다람쥐처럼 몸을 웅크렸다. 냉찜질을 하며 한 시간을 울었다. 나는 아이 울음소리를 들으며 야채죽을 만들었다. 큰애의 몸에 약이 되어줄 마늘, 양파, 감자, 당근, 애호박, 표고버섯, 부추를 비장하게 다졌다. 냄비 속을 나무 주걱으로 휘저으며 아이의 치통이 사라지길 기도했다. 아이가 며칠째 진통제를 먹으며 무서운 통증에 눌려 있는 모습도, 사람 많은 곳에서 보호막 없이 호흡기를 드러내야 하는 상황도 다 안쓰러웠다. 


부모님은 며칠 전, 멀리 사는 사촌의 결혼식에 다녀오셨다. 결혼식장에선 마스크를 착용하셨지만 피로연에서는 마스크를 벗고 식사를 하셨다. 오빠와 새언니, 조카와 한 테이블에서 밥을 먹었다고 한다. 아빠는 오랜만에 보는 친손주를 안고 볼에 뽀뽀를 해주었단다. 집에 돌아오는 기차 안에선 마스크를 내리고 물을 드셨단다. 아빠와 엄마는 물병을 공유했다. 집에 돌아온 후 엄마는 보건소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확진자와 밀접 접촉했으니 코로나 검사를 받으라는 이야기였다. 엄마는 결혼식에 참여하기 전, 동네 미용실에 들렀다. 평소보다 두꺼운 마스크를 착용하셨고 머리 하는 내내 그것을 빼지 않았다. 엄마의 머리카락은 미용실 원장님의 손과 접촉했다. 그 원장이 확진자인 줄 어떻게 알았겠냐,라고 엄마는 말했다.


아빠와 엄마는 생각이 복잡해졌다. 두 분은 결혼식 피로연과 기차에서 사람들과 숨을 공유했다. 그 사람들은 괜찮을까. 한편 아빠는 부정맥을 앓고 있는 데다 오래전부터 기관지가 약했다. 기저질환이 있고 나이도 많은 상태에서 확진자가 된다는 건 두려운 일이다. 아빠 엄마는 코로나 검사를 받은 뒤 집에서 밥도 따로 먹고 대화는 휴대폰으로 나누셨다. 나와 아이들은 두 분께 영상통화를 따로 걸어야 했다. 


다음날 엄마는 아침 일찍 일어났다. 확진자가 되면 어디론가 잡혀갈(?) 수 있으니 깨끗이 목욕을 하셨다. 꽃에 물도 듬뿍 주었다. 아침 식사와 설거지도 미리미리 끝냈다. 얼마 후 엄마는 보건소로부터 문자를 받았다. 엄마는 내게 결과를 공유했다. "음성이다." 가족들 모두 가슴을 쓸어내렸다. 어쨌든 엄마는 밀접 접촉자이므로 2주간 자가격리에 들어갔다. 


그날 오전 10시 55분, 애들 학교로부터 카톡 알림장이 도착했다. "학부모님, 안녕하십니까? 오늘 본교에서 코로나19 확진자(학생 1명)가 발생하여 현재 등교한 학생들 중에 선별 검사 대상이 아닌 학생들은 전부 귀가 조치합니다.(중략)" 이날 큰애는 치과 치료 때문에 학교에 안 갔지만 막내는 학교에 있었다. 


40분이 흘러 오전 11시 34분, 막내의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학부모님 안녕하십니까?(중략) 긴급하게 학생들이 하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중략) 문자 보시는 대로 자녀의 하교 여부에 대해 '가능' 또는 '불가능'이라고 꼭 회신 부탁드립니다." 나는 선생님께 "가능"이라고 답장을 보냈다. 막내는 10분 후 집으로 돌아왔다. 


정신없는 오전이었다. 한시름 덜은 부모님과 통화하고, 큰애랑 치과 다녀오고, 여기저기서 식재료를 사 오고, 막내의 이른 하교 소식을 듣고, 장 본 것 정리하고, 식구들 점심을 차려 냈다. 몸은 피곤했지만 가족들이 한 공간에서 모여 밥을 먹을 수 있어서 감사했다. 같은 울타리 안에서 함께 숨 쉴 수 있는 걸로 충분했다.


그로부터 며칠 뒤인 오늘은 어린이날이다. 코로나 때문에 놀러 나갈 상황은 아니다. 더구나 큰애는 마스크 쓰기 힘들어할 만큼 잇몸이 부었다. 집콕이 가장 적당한 선택이었다. 최근에 들인 칼랑코에와 송엽국과 바질을 애들과 함께 돌봤다. 점심 먹고 나서 아이들과 넷플릭스로 「미첼 가족과 기계 전쟁」을 미친 듯이 웃으며 시청했다. 나는 냉장고를 박박 긁어 삼시 세끼를 차렸다. 식구들은 맛있게 먹었다. 나는 뿌듯했고 또 피곤했다.


확진자가 하루에 열 명 내외로 나오는 도시의 일상은 요런 정도로 고단하다. 만약 도시 인구 모두가 확진된다면 어떨까. 그땐 일상이 멸종되겠지. 


최근 인도에선 하루 확진자가 40만 명에 달했다. 내가 사는 도시의 인구수보다 큰 숫자이다. 전문가들은 통계에 잡히지 않는 사람도 적지 않을 거라고 추정했다. 그 나라의 소식이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안타깝다는 말이 너무 빈약해서 꺼낼 수가 없다. 그들의 일상이 부활되기를, 특히 가난한 이들의 삶에 소망이 깃들기를 하나님께 빌었다. 


코로나 시국은 맹렬한 현재 진행형이다. 세계가 다 같이 쩔쩔매고 있다. 뉴스 제목엔 '백신' '변이 바이러스' '집단 감염' 같은 문구가 빠지지 않는다. 조금 피곤하지만 나의 '기도'와 '버티기'도 쉼 없이 맹렬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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