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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녹차 May 11. 2021

쉼표를 훔치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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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에 혼자 사는 꿈을 꿨다. 내 집은 원룸이었다. 집에 들어가려면 두 개의 문을 지나야 했다. 첫 번째 문에 도어록이 있었는데 비밀번호는 나만 알았다. 다른 이가 함부로 열 수 없는 문이 달린 집에서 나는 홀가분했다.


5월이지만 학기 중 같지가 않다. 아이들의 방학은 2개월 뒤인데 2년째 방학 같은 날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주엔 아이들 치과 치료 때문에 더 바빠서 나만의 시간이 터무니없이 모자랐다. 내 일상엔 도어록이 없다. 아이들과 가족들을 위해 나를 끊임없이 열어놔야 한다.


잠깐이라도 혼자 있고 싶었다. 며칠 동안 거른 산책도 하고 싶었다. 멍하게 걸으며 햇살을 쬐어야만 했다. 많은 것이 요구되는 공간에서 나를 해방시켜야 했다. 그래야 숨이 쉬어질 것 같았다. 그러나 오늘은 미세먼지 경보 문자가 두 번이나 왔다. 집에 있으란다. 오늘도 탈출에 실패했다.


치과 의사 선생님이 말했다. 아이들이 양치질을 전혀 하지 않는 것 같다고. 우리 아이들은 하루에 두세 번 이를 닦는다. 의사선생님은 '애들이 초콜릿이나 사탕을 자주 먹는 것 같다'고도 말했다. 우리 아이들은 그런 걸 전혀 먹지 않는다. 이 초딩들이 얼마나 열과 성을 다하여 양치질을 얼렁뚱땅 해왔는지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나는 아이들을 붙잡고 아침저녁으로 양치질을 대신해주는 엄마가 못된다. 아이들의 신체를 위한 나의 봉사는 건강한 음식을 제공하고, 집을 청결하게 유지하고, 옷을 빨아 주고, 아플 때 죽이나 약을 주거나 병원에 데려가고, 머리가 길어지면 미용실에 데려가고, 꾸준히 산책에 동참시키는 것, 딱 이 정도이다.


치과에서 혼이 난 아이들에게 나는 말했다. 앞으론 빵에 달달한 잼을 발라 먹지 말라고. 그 말을 들은 큰애는 세상의 종말을 맞은 듯 엉엉 울고 막내는 칭얼거렸다. 죽을 고생을 하며 이를 치료해놓고 몇 시간도 못 되어 다 잊었나 보다. 나에겐 설득할 힘도, 잔소리할 힘도, 저 울음소리를 더 들어줄 힘도 없었다. 이어폰을 꺼내 시끄럽고 밝은 음악으로 귀를 틀어막았다.


막내는 하루에 두 장 푸는 수학 문제집을 하루 종일 미뤘다. 잘 시간이 다 되어 한다는 소리가 "내일 하면 안 돼요?".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고 했더니 비련의 주인공처럼 이불에 엎어져 꺽꺽 울었다. 저 울음소리를 견딜 힘이 요만큼도 남아있지 않은 나는 1초 만에 일관성 없는 엄마가 되어 내일 하라고 말해버렸다. 다음날 막내는 수학 문제의 덧셈을 뺄셈으로, 뺄셈을 덧셈으로 바꾸어 계산해왔다. 4319에서 5980을 어떻게 뺀 거지?


최근에 꽃을 키우기 시작했다. 새로 장만한 송엽국 포트를 큰 화분으로 옮겨 심었다. 아이들도 새로 생긴 식물에 관심이 많아서 분갈이를 함께 하고 싶어 했다. 나는 큰 소리로 "지금 분갈이할 거야."라고 알린 뒤 베란다로 갔다. 막내가 쪼르르 달려와 분갈이를 구경했다. 분갈이를 마치고 물도 주고 한 시간쯤 흘렀을까, 큰애가 와서 말했다. "엄마, 이제 송엽국 분갈이해요." 무슨 봉창 두드리는 소리? 왜 아까 오지 않았냐고 하니 자기는 내 말을 들은 적이 없다며 대성통곡했다.


가족을 사랑한다. 그 무엇과도 아이들을 바꿀 수 없다. 그러나 나는 때로 혼자 있고 싶다. 울음소리도 없고, 채점할 문제집도 없고, 끝없는 단순노동도 없는 곳에 나를 세워 놓고 싶다. 몹쓸 말이지만, 괘씸한 소리이지만, 나를 자가격리 시키고 싶다. 쉽게 지쳐버리는 나 자신이 구제불능 같기도 하다. 지저분한 아이들의 이보다, 빨간 비가 내리는 아이의 수학 문제집 보다 내가 더 딱하고 한심해 보인다. 그러나 이게 나인걸 어떡하나. 내 인내심은 우물처럼 깊지 못하고 새싹의 뿌리처럼 얕은 것을.


인간이 망친 환경이 코로나와 미세먼지를 배설했다. 자연의 보복이 나의 발을 묶고 숨을 못 쉬게 한다. 남 탓할 수 없다. 코로나와 미세먼지의 벌을 받으며 고단함을 겪는 건 지구인인 나에게 할당된 몫이겠지.


한편 강신주는 "나를 잃어가며 남을 돌보는 것은 자신에게도 남에게도 어리석은 짓"[1]이라고 말했다. 지구적으로 보나 엄마 역량으로 보나 나의 고단함은 내 탓이 크지만 나는 못난 나 자신을 포기할 수 없다. 내가 더 못나지지 않도록 나를 돌봐야 겠다. 내가 설정한 '이상적인 나'와 '현실의 나'는 딴판이지만 내가 날 혐오하지 않도록 나를 추스려야 겠다. 그러기 위해서 시간과 마음을 써야 한다. 더러운 가스레인지, 반납기한 다 되어가는 책, 등받이에 먼지가 콕콕 박힌 메시 의자, 지저분한 아이들의 치아에 대한 나의 의무감을 무책임하게 외면할 한 토막의 시간이 필요하다. 강신주 작가의 말처럼 "시간을 훔쳐"[1]서라도 나의 쉼표를 찾아야 한다. 나만의 도어록부터 사러 가야겠다.







1. 강신주, 『우리의 저물어가는 생을 축복합니다』, 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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