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위한다는 착각』이라는 책이 화제다. 책의 저자 마이클 셸런버거는 이렇게 주장한다.
"기후 변화, 삼림 파괴, 플라스틱 쓰레기, 멸종 등은 근본적으로 우리의 탐욕과 오만이 초래한 결과가 아니다. 우리 인류가 더 나은 삶을 추구하기 위해 경제를 발전시키는 가운데 발생하는 부작용일 따름이다."[1]
그는 극단적인 환경주의자들을 비판하기 위해 저 책을 썼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에도 극단적인 뉘앙스가 적지 않다. 셸런버거는 플라스틱이 기적의 물질이며 공장은 숲을 지키는 원동력이라고 말한다. 특히 원자력 사랑이 지대하다. 그는 핵에너지만이 인류의 환경 발자국을 줄여주고 인류 문명의 동력을 공급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핵 폐기물이 가장 안전한 종류의 폐기물이라고까지 말한다.
그는 "사실과 과학을 올바로 전달하는 것 또한 나의 관심사 중 하나다"라고 고백했다. 그러나 자신의 관심과는 달리 사실과 과학을 성공적으로 다루진 못하는 것 같다.
책에서 셸런버거는 "핵은 오랫동안 세계에서 가장 저렴한 전기 제조 방법"이라고 이야기한다. 사실 원자력은 가장 비싼 제품 중 하나이다. 전기 제조의 발전 단가만 단순하게 따질 순 없다. 광의의 비용을 셈해봐야 한다. 우리나라 고리 1호기만 보아도 해체 비용만으로 약 8500억 원이 추산됐다. 이 외에도 폐기물 처리 비용, 인건비, 그리고 영구 관리되어야 하는 폐기물에 들어갈 끝없는 지출까지 모두 비용에 반영해야 한다.[2]
셸런버거는 그의 책에서, 세계적으로 알려진 원자력의 총 사망자 수는 100명을 약간 넘는다고 주장한다.
한편 그는 2017년에 베를린에서 했던 강의에서 '체르노빌 사고 때 방사선에 노출되어 죽은 사람이 200명 미만'이라고도 말했다. 그러나 공식적으로 체르노빌 암 사망자 수의 추정치 중 가장 낮은 수치는 세계보건기구가 추정한 9,000명이다. 더 나아가 셸런버거는 후쿠시마 재해로 인한 방사선 노출로 "정확히 아무도 죽거나 죽지 않을 것"이며 "후쿠시마 대피는 불필요했다"라고도 말했다.[3] 그러나 방사선 생물학자 이안 페어리 박사는 후쿠시마 낙진으로 인한 방사선 노출의 결과로 약 5,000명이 암으로 사망할 것이라 추정했다.[4]
그는 어떤 연구를 통해 원자력과 핵에 한없이 관대한 태도를 가지게 된 걸까. 놀랍게도 그는 공식적인 과학자가 아니다. 그는 전리 방사선의 건강 영향에 관한 전문 자격은 말할 것도 없고 그 어떤 과학적 자격증도 갖고 있지 않다. (참고로 그의 학위는 문화 인류학이다.)[5] 또한 그는 '환경 진보'라는 친핵 로비 단체의 설립자 겸 대표이다. 2018년엔 캘리포니아 주지사에 출마했다가 패배하기도 하는데 이때 그의 선거 캠페인에 가장 큰 기부를 한 사람은 프랭크 배튼 주니어였다. 배튼은 "핵연료 재활용을 지원"하는 랜드 마크 재단의 회장이다.[6] 원자력에 대한 셸런버거의 찬탄이 순수하게 들리지 않는 지점이다.
셸런버거는 2020년에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을 셀프 홍보하는 기사를 포브스에 개제하기도 했다. "기후 변화가 자연재해를 악화시키는 것은 아닙니다"라는 내용이 주요 골자였다. 그 기사에 대해 6명의 과학자는 '신뢰성이 낮은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과학자들은 셸런버거의 기사가 "기후 변화에 대한 오해의 소지가 있고 지나치게 단순한 주장을 뒷받침하는 정확하고 부정확한 주장을 혼합"했다고 평했다. 특히 기후 과학자인 다니엘 스웨인은 셸런버거의 기사에 대해 "맥락을 벗어난 사실과 명백한 거짓을 혼합하여 근본적으로 오도하는 결론에 도달" 하며 "권위 있는 기관에 의해 광범위하게 지지되지 않"는다고 못 박았다. 포브스는 셸런버거가 편집 지침을 위반했기 때문에 해당 기사를 삭제했다.[7]
셸런버거는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에서 여러 수치와 근거를 끌어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그러나 예일대와 버클리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환경 과학자 피터 글릭은 "마이클 셸런버거의 논증엔 근거의 부적절한 사용과 이제는 유효기간이 지난 연구 결과, 자신에게 유리한 연구 결과만의 선택적 사용, 오해, 명백한 실수 등이 가득"[8]하다고 분석했다.
또한 셸런버거는 기술발전과 경제발전이 자연을 '지키는' 일이라고 썼다. 그런데 경제발전은 화석연료에 의존하여 이룬 것이며 화석연료는 자연이 수백만 년에 걸쳐 식물의 광합성으로 형성한 것이다. 마크 라이너스는 "우리가 지금 1년마다 사용하는 화석연료의 양은 그것이 만들어진 시간으로 따질 때 100만 년에 해당하는 것일 수 있다."[9]고 말한다. 게다가 1년 동안 지구가 줄 수 있는 자원의 양이 1이라고 상정했을 때 우리는 매년 1.75를 사용하는 중이다.[10] 부족한 양은 어제의 지구가 부은 적금에서 빼 쓰거나 내일의 지구로부터 대출받는 형편인 것이다. 셸런버거 같은 기술 만능주의자들에게 묻고 싶다. 기술과 경제 발전으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다고 가정한다 해도(물론 불가능하지만) 치러야 할 값이 너무 비싼 거 아니냐고. 가불해서까지 자연을 소비하는 게 '지키는'거냐고.
또한 그는 인간이 여섯 번째 대멸종을 일으키지 않을뿐더러 (동식물) 멸종 자체도 문제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과학자들도 여섯 번째 대량 멸종이 일어나는지에 대해선 회의적이지만 생물 다양성의 손실에는 분명 놀라고 있다.[11] 빌 브라이슨의 『거의 모든 것의 역사』엔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시카고 대학의 화석 학자 데이비드 라우프에 따르면, 생물학 역사 전체를 통틀어서 지구의 멸종 속도는 평균 4년마다 한 종이 사라지는 정도라고 한다. 최근의 추정에 의하면, 오늘날 인간에 의한 멸종은 그보다 최대 12만 배나 된다고 한다."[12]
2003년에 수의학자 윌리엄 카레쉬는 '원 헬스One Health'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원 헬스'는 인간과 동물을 비롯해 이들이 살아가는 환경까지 건강해야 한다는 삼각 체계다.[13] 동물이 아프면 인간도 아프고, 동물이 죽으면 인간도 죽는다. 지구 생명들은 모두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이 쉬운 상식을 지구인들은 굳이 코로나 바이러스를 겪으면서까지 체득했다. 생태계와 야생동물을 함부로 대하다가 코로나 팬데믹까지 온 상황에서, 셀 수 없이 많은 동물이 멸절하는 현실에 대해 저토록 무감각하게 말할 수 있는 셸렌버거가 참으로 경탄스럽다.
마이클 셸런버거 말고도 꽤 많은 이들이 인간 활동을 기후 변화의 주된 원인으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해왔다. 첫째는 더 많은 돈을 쥐고자 하는 사람들이 지난 20년 동안 성실하게 진실을 날조했기 때문이며, 둘째는 그 거짓에 많은 사람들이 넘어갔기 때문이다.[14]
가짜 뉴스가 뭐라고 떠들든 거기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미혹되든, 인간이 환경을 망치고 있다는 의견은 압도적 다수의 과학자들이 합의한 사실이다. 리 매킨타이어는 『포스트 트루스』에서 인간과 기후변화의 관계를 바라보는 과학자들의 보편적인 시선을 소개한다.
"2004년에 연구자들은 당시 기준으로 928편에 이르던 기후변화 논문을 검토한 뒤 리뷰 서적을 발간했다. 이 책에 따르면 당시 논문들 가운데 인간이 기후변화를 초래했다는 사실을 반박하는 논문을 단 한 편도 없었다. 2012년에 다른 연구자들이 진행한 후속 연구에서도 총 1만 3,950편의 논문 중 0.17퍼센트만이 기후변화를 반박하는 논문으로 드러났다. 2013년에는 논문 심사를 거친 논문 중 기후변화에 대한 입장을 확실히 드러내고 있는 논문 4,000편이 조사 대상에 올랐으며 그중 97퍼센트는 인간의 활동이 지구온난화를 유발했다는 입장을 지지하고 있었다."[14]
인간이 기후변화를 촉발했다는 의견은 '소수의 극단적인 주장'이나 '공포 마케팅'이 아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과 국가안보국(NSA) 정보원이었던 에드워드 스노든은 미국의 최고 정보망에 접근한 후 이렇게 증언했다. 지구와 접촉한 외계인은 없으며, 달 착륙은 실제 일어난 일이며, '기후변화는 사실'이라고. [18] 기후변화는 '보편적이고 전문적인 사실'이다.
물론 '인간이 할 수 있는 최고의 환경보호는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주장이나 인간의 발전적인 진보를 무조건 폄훼하는 태도, 환경 종말론, 겉으론 환경 운운하면서 뒤로는 다른 오염원(기업)의 후원을 챙기는 사례, 과격한 환경보호 시위 등엔 나도 반대다. 그러나 오늘날은 극단주의 환경운동가에 대한 비판을 구실 삼아 환경에 대한 책임에서 느슨해져도 될 만큼 안일한 시기가 아니다. 극단적 환경주의자로 인한 피해는 인간의 자연을 향한 착취로 유발된 피해에 댈 것이 못된다. 어떤 구실을 둘러대든 파괴된 환경에 대한 책임에서 누구도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다.
기후변화는 의심의 여지 없이 지구인에게 닥친 큰 위험이다. 너무 큰 문제라 사회정치적 차원으로 접근하는 것이 먼저이다. 동시에 개인의 역할도 중요하다. 개인의 노력으론 세상을 바꿀 수 없으니 난 그냥 편하게 살겠다는 태도는 패배주의나 책임회피, 현실도피에 불과하다.
조너선 사프란 포어는 『우리가 날씨다』에서 '나 한 사람의 실천'의 위력에 대해 말했다. "개인행동의 헛수고는 바로 우리 모두가 노력해야 하는 이유다… 큰 행동이든 작은 행동이든 다 나름대로 힘이 있다… 커다란 성취를 할 수 없으니까 아예 시도하지 말자고 주장한다면 비윤리적인 것이다… 물론 한두 사람이 채식 위주의 식사를 하기로 했다고 해서 세상을 구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런 결정이 누적되어 참여자가 수백만 명이 되면 가능한 것도 사실이다."[15]
그렇기에 '나'는 노력해야 한다. 채식 위주로 먹고, 비행기와 자동차 이용을 줄이고, 자연을 가꾸고, 소비주의 대신 의식적 소비를 하며, 재활용도 좋지만 그전에 쓰레기를 덜 만들고, 물건을 오래 사용하며, 환경을 생각하는 정치인에게 표를 던지고, 환경 개선에 관심 없는 기업에게 분노해야 한다.
이런 실천은 고행이 아니다. 환경보호는 인간의 풍요로운 삶과 자유를 옭아매려는 '반'인간주의가 아니다. 마크 라이너스는 『6도의 멸종』에서 이렇게 말했다. "탄소를 적게 배출하는 생활방식을 유지하자면 개인적으로 감수해야 할 고통과 희생이 엄청나다는 낡은 견해가 아직도 만연해 있다. 내가 보기에 그보다 더 진실에서 벗어난 생각도 없다."[9] 우리가 환경을 돌볼 때 그것은 놀라운 회복력으로 반응할 것이다. 되살아나는 식물과 되돌아오는 동물로 우리는 풍요로울 것이며 전염병이 끝나고 공기가 맑아진 세상에서 마스크를 벗고 자유로울 것이다. 환경보호야말로 '참'인간주의이다.
요즘 낮 기온이 30도에 가깝다. 6월 초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그렇다. 그제 오전 11시쯤 산책을 했는데 쨍한 햇빛에 팔이 홀랑 타버렸다. 지글거리는 정수리를 손등으로 가린 채 서둘러 집에 돌아와야 했다. 어제는 따가운 햇살을 피하려고 일찍이 산책로에 도착했다. 막내도 산책에 동행했다. 더울랑 말랑하는 햇살과 시원한 강바람이 버무려진 오전 9시의 흙길에서 막내가 물었다. "엄마 코로나는 누가 가져온 거예요?"
과학자들은 코로나의 숙주로 박쥐나 뱀, 천산갑을 의심하기도 했지만 확실히 밝혀진 것은 없다. 분명한 것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우리를 찾아온 것이 아니라 욕심 많은 인간이 숨어있던 바이러스를 찾아간 것이다. 코로나에게만 그랬던 건 아니다. 세계보건기구는 최근 30년 동안 발생한 신종 전염병의 70%가량이 야생동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발표했다.[16] 코로나를 비롯한 조류 독감, 사스, 에볼라, 에이즈, 메르스, 소위 '햄버거병'이라고 하는 용혈 요독 증후군 등의 잘 알려진 인수 공통 감염병들은 인간이 자연을 침략하고 얻은 대가이다.[17] 막내의 질문에 나는 답했다. "사람의 욕심이 코로나를 가져왔어."
어제는 6월 5일이었다. '유엔인간환경회의'에서 국제사회가 지구환경보전을 위해 '공동'의 노력을 다짐하며 제정한 '환경의 날'이다. '공동'은 '다수의 개인'이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바이러스가 지구 전체를 흔들었으니 눈에 보일 만큼 커다란 '개인'과 '공동'은 더한 일을 해낼 수 있지 않을까. 제2의 코로나를 막는다든지, 기후 변화의 흐름을 역전시킨다든지, 그래서 다시 시원해진 6월을 만끽한다든지 하는 일 말이다.
1. 마이클 셸런버거,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 부키
2. https://m.blog.naver.com/haezoom/221115687971
6. https://www.desmog.com/michael-shellenberger/
8.https://newspeppermint.com/2021/05/10/m-apocalypse2/
9. 마크 라이너스 『6도의 멸종』, 세종서적
10. 타일러 라쉬, 『두 번째 지구는 없다』, 알에이치코리아.
11. https://lareviewofbooks.org/article/the-stories-michael-shellenberger-tells/
12. 빌 브라이슨, 『거의 모든 것의 역사』, 까치글방
13. http://economychosun.com/client/news/view.php?boardName=C00&t_num=13608547
14. 리 매킨타이어, 『포스트 트루스』, 두리반
15. 조너선 사프란 포어, 『우리가 날씨다』, 민음사
17. 데이비드 콰먼, 『인수공통 모든 전염병의 열쇠』, 꿈꿀자유.
18. 에드워드 스노든, 『스노든 파일』, 푸른숲주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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