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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녹차 Jun 10. 2021

들불이 모든 것을 태우진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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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6월. 아이들이 매일 학교에 가기 시작했다. 1년 6개월 만의 정상 등교이다. 낮 기온이 30도에 가까워서 집에 돌아온 아이들은 땀 범벅이 되지만 애들은 온라인 수업을 하느니 학교에 가는 게 낫단다.


첫째 아이는 불규칙한 등교 탓에 친구를 제대로 사귀지 못했다. 작년에 친했던 친구와는 오해가 생겨서 한바탕 울기도 했다. 친구 관계가 중요한 시기에 친구를 알아갈 시간을 빼앗겨 버렸다. 김현수는 『코로나로 아이들이 잃은 것들』이라는 책에서 "코로나 여파로 인해서 아이들에게 일어난 가장 큰 사건은 학교를 못 가는 것이지만, 그 안의 핵심은 친구를 만나지 못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라도 모든 아이들에게 간헐적 우정 대신 연속적 사귐이 허락되길 간곡히 기도한다.


둘째 아이의 교실엔 부화기가 등장했다. 계란 여섯 개에서 여섯 마리의 병아리가 태어났다. 둘째의 등교 이유가 급식에서 병아리로 바뀌었다. 새 생명을 만난 둘째의 눈은 반짝였다.


중국 우한이 코로나로 봉쇄되던 초기, 그 도시엔 사망자 소식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슬픈 사정 틈으로 탄생의 기별도 있었다. 팡팡은 『우한일기』에서 "새로운 생명의 탄생은 하늘이 주신 최고의 희망이다"라고 고백했다. 봉쇄되었던 우한의 처지와 코로나가 물러나고 있는 우리 동네의 상황은 꽤 다르지만 생명이 주는 힘은 같다. 갓 태어난 생명을 바라보면 마음속에 아침노을 같은 새 빛이 들어온다. (병아리들은 조만간 담임 선생님의 본가로 이사한단다.)


아이들의 정상 등교가 시작되면서 나만의 시간도 회복되었다. 딱히 여유로워진 건 아니지만 조용히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겨서 기쁘다. 며칠 전 오전엔 도서관에 가서 한 시간 동안 책을 읽었다. 난 원래 도서관에서 책 읽는 사람이 아니다. 도서관은 책을 빌려오는 장소일 뿐이다. 집에서 편한 옷을 입고 자유로운 자세로 안락한 독서대에 책을 고정시킨 채 읽는 걸 최고로 친다. 하지만 한 번쯤은 되찾은 자유를 물리적으로 체험하고 싶었다. 나는 집에서 풀려나 딱딱한 도서관 의자에 도착했다. 엉덩이가 불편했다. 하지만 마음은 묘하게 달콤했다. 


도서관에서 본 책은 『우한일기』이다. 우한 주민이자 소설가인 팡팡이 코로나19로 봉쇄된 우한의 60일을 기록했다. 초기 대응에 실패한 전문가들을 향한 분노, 수많은 죽음들, 검열 속에서 계속 삭제되는 일기, 그러나 서서히 나아지는 우한의 상황 등이 하이퍼리얼리즘으로 묘사돼 있다. 


그녀의 일기는 현실 판 『페스트』였다. 알베르 카뮈의 소설에 등장하는 오랑시와 팡팡이 살던 우한시는 '안락한 집'에서 '형무소'로 바뀌었다. 나도 지난 1년 6개월간 발이 투명 차꼬에 묶인 기분이 들었다. 아이들 수업이 전면 온라인 수업으로 바뀌었을 때, 개학이 무한정 미뤄졌을 때, 확진자 집단 발생으로 도서관과 교회가 문 닫았을 때,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내는 가족들을 위해 끊임없이 밥을 차려야 했을 때, 바쁜 일상 속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들일 시간이 사라졌을 때 숨이 막혔다. '봉쇄' 근처에도 가지 않은 동네에 살았지만 나는 애매한 포로가 된 것 같았다.


『코로나로 아이들이 잃은 것들』에는 이런 말이 적혀있다. "여러 상황과 정체성을 가로지르면서 일한다는 것은 번아웃으로 쉽게 접어들 수 있는 길입니다." 나를 포함한 많은 부모들, 수많은 시민들이 그러했을거다.  


『우한일기』를 읽으며 또 하나 알게 된 것은 중국이 (북한보단 덜한 것 같지만) 표현의 자유를 보장받지 못하는 나라라는 점이었다. 팡팡은 정부의 방역지침에 충실히 따르는 협조적인 인민으로 사는 동시에 전염병 대처를 제대로 하지 못한 정부를 날카롭게 비판했다. 정당한 비판이었지만 일기는 삭제되고 또 삭제됐다. 팡팡은 "글이 삭제되는 게 두렵다."라면서도 "비록 하나를 쓰면 하나가 삭제될지라도, 나는 쓸 테다."라고 적었다. 이 시대의 생생한 표본을 남기겠다는 자신의 소명 때문이었다.


팡팡은 위의 책에서 "개인의 기록은 보잘것없고 전체적인 상황을 다 담기에는 부족하지만, 무수한 개인의 기록이 모이면 아마 전체적인 진실을 기록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썼다. 코로나 일상에 대한 나의 보잘것없는 기록들도 지구적 재난을 묘사하는 한 알의 원자가 되겠지.


내 작은 도시의 코로나 확진자 수는 매우 안정되었다. 하루 한두 명이 전부다. 서울 경기 쪽엔 100~200명 사이로 발생하고 있지만 그곳도 예전보단 나아졌다. 


이번 주 초엔 시에서 지급하는 재난지원금을 받았다. 그걸로 과일도 사고 아이들이 필요하다는 보드마카도 샀다. 5월은 가정의 달이어서 이래저래 지출이 많았는데 6월엔 재난지원금 덕분에 여유가 생겼다. 고마운 일이다.


그저께는 잔여 백신 알림 신청을 했다. 질병관리청과 네이버가 구축한 시스템인데 참 편리했다. 자본과 기술은 이렇게 써야 빛나는구나 싶었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내과에 알림을 신청을 넣었는데 그날 오후 5시 반쯤 잔여 백신이 하나 남았다는 알림이 왔다. 당일 예약-당일 접종밖에 안 되는지라 포기했다. 식구들 밥을 차리던 중이어서.


오늘로 전국 백신 1차 접종률은 19%이고 2차 접종률은 4.5%라고 한다. 얼마 뒤엔 나도 저 수치를 불리는 영점 몇이 되겠구나. 


백신 접종을 완료한 사람에 한해 7월부터 단체여행을 허용한다는 소식도 들린다. 우려되는 지점도 있지만 마음이 들뜨기도 한다. 추상화로 변했던 일상이 구체적인 몸을 입고 성큼성큼 걸어오는 게 보인다. 『우한일기』의 끝자락에 인용된 백거의 시구가 생각나는 요즘이다. "들불이 모든 것을 태우진 못하며 봄바람에 생명은 다시 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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