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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녹차 Apr 21. 2021

멜로디가 끊이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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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저녁 9시 14분, 전화가 왔다. 그 시간에 내 휴대폰이 울리는 법은 거의 없다. 휴대폰 액정 상단으로 8개의 글자가 흘러갔다. "피아노 학원 선생님"


큰애가 다니는 피아노 학원의 원장님이셨다. 선생님은 늦은 시간에 전화해서 죄송하다며 말문을 여셨다. 무슨 일로 전화하셨는지 얼른 감이 잡히지 않았다. 마음이 살짝 불안했다. 내가 혹시 학원비를 깜빡했나? 큰애가 학원에서 무슨 문제가 있나?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이번 달을 끝으로 학원 문을 닫아야 할 것 같다고.


"20년 동안 운영한 학원이라 애착이 많았어요. 코로나 때문에 어려웠지만 지금까지는 견뎌봤는데…… 사실은 진즉에 접었어야 했지만 이젠 정말 4월까지만 하고 문을 닫아야 할 것 같아요. 더 일찍 알려드렸어야 했는데…… 제가 '학원'이란 말을 꺼내기만 해도 마음이 북받쳐서……. 늦게 말씀드려서 죄송해요. 그동안 정말 감사했어요 어머님. 00이는 잊지 못할 제자였어요. 오래오래 기억날 거 같아요." 선생님은 울고 계셨다. 


코로나 이후 피아노 학원 사정은 급격히 나빠졌다. 지역에서 집단 감염이 일어날 때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격상될 때마다 학원 문을 임시로 닫을 수밖에 없었다. 문을 닫고 열기를 반복하면서 아이들은 술술 빠져나갔다. 결국 학생 수가 반으로 줄었다. 


예체능 학원은 국영수 학원에 비해 타격이 더 크다. 음악, 미술 같은 예술 과목은 전공자가 아닌 이상 버리는 카드로 취급되기 일쑤다. 예술은, 생산하는 입장에서는 돈 벌기 힘든 일이고 소비하는 입장에서는 생필품이 아닌 사치품이다. 예술은 생존의 영역에서 찬밥 신세를 못 면한다. '국영수사과'와 '예체능'이 붙으면 예체능의 백전백패이다. 


나도 예술 언저리를 기웃거리는 사람이라 피아노 선생님의 폐업 고지가 내 일처럼 속 쓰렸다. 피아노 학원 옆을 지날 때마다 들었던 낭랑한 멜로디들이 사라질 걸 생각하니 서글펐다. 내가 이러한데 선생님 본인은 얼마나 아쉬우실까. 


그동안 피아노 선생님과 정이 들기도 많이 들었다. 소중한 인연과 헤어질 생각을 하니 마음이 아팠다. 선생님과 통화하면서 자꾸 눈물이 고였지만 어리둥절한 표정의 큰애가 바로 옆에 있었기에 울음을 참았다. 목에 걸린 묵직한 통증을 꿀꺽 삼킨 뒤 선생님께 말씀드렸다. "선생님, 이번 달이 열흘 정도 남았으니 마지막 인사는 아직 하지 말기로 해요. 너무너무 아쉽습니다. 선생님을 붙잡고 싶은데 그럴 수 없으니 어떡하면 좋죠? 그동안 저희 아이를 잘 가르쳐주시느라 정말 고생 많으셨고 감사했어요"


전화를 끊자 큰애가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아이의 얼굴은 이미 무거웠다. 나는 사실대로 말했다. 큰애는 30분 동안 엉엉 울었다. 휴지로 큰애의 눈물을 부지런히 훔쳐주었다. 아이의 눈이 빨갛게 부어올랐다. 


피아노 수업은 큰애의 유일한 사교육이었다. 본인이 원해서 간 학원이다. 큰애는 피아노 치는 걸 재밌어했다. 학원 선생님과 그곳의 동생, 친구, 선배, 모두를 좋아했다. 학원에서 돌아온 아이는 오늘은 어떤 곡을 쳤고, 누구랑 놀았고, 음악 퀴즈에서 무엇을 배웠고, 심지어 학원 수도관의 상태까지 조잘조잘 쏟아냈다. 큰애는 이제 그 모든 이야기들과 한 번에 작별해야 한다.


어른인 나도 이별은 적응이 안 된다. 정든 이들과 갑자기 헤어진 경험이 많은데도 겪을 때마다 새롭게 가슴 아프다. 큰애는 이별 경력이 적어서 마음의 굳은살이 없다. 나보다 충격을 더 크게 감각할 것이다. 아이가 안쓰럽고 안쓰럽다.


큰애는 어렵게 진정한 후 겨우 잠들었다. 집이 고요해지자 이젠 내 마음이 탁 풀어졌다. 참았던 눈물이 나왔다. 눈을 휴지로 꾹 꾹 누르면서 피아노 선생님께 드릴 감사 선물을 골랐다. 향긋한 꽃차 세트를 주문했다. 따뜻한 차 한 잔이 선생님께 작은 위로가 되길 바랐다.


주사를 맞고 싶다. 화이자 백신이나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주사도 필요하겠지만 나는 다른 주사를 원한다. 애써 일군 꿈이 사그라져도 좌절하지 않을 수 있는 주사, 실용적인 구석이라곤 없는 예술을 오래오래 추구할 수 있게 해 주는 주사, 팍팍한 삶을 씩씩하게 살아갈 용기를 주는 주사, 이별 앞에서 너무 오래 울지 않도록 눈물을 말려주는 주사, 내 능력 밖의 상황이 나를 끌고 가도 상처 받지 않을 수 있는 주사. 이런 주사는 어디에도 없다. 용한 주사에 찔리지 못한 세 사람은 코로나 시국에 찔려 그냥 함께 울어야 했다. 


만병통치를 약속해 주는 주사는 없지만 내게는 주님이 있다. 그 주님도 나에게 만사형통을 약속해 준 적은 없다. 그러나 나는 그분에게 기댄다. 내가 믿는 하나님은 전능자이다. 전능한 뒷배가 있으면서도 나는 다른 이들과 똑같이 눈물 흘리며 산다. 주님은 당신의 전능함으로 내 인생의 장애물을 산뜻하게 철거해 주지 않는다. 그 대신 전능한 사랑으로 함께 울어 주신다. 어려움을 겪는 동안 지혜를 깨닫게 하시며, 터널을 통과할 영적인 체력도 주신다. 피할 길을 열어주시기도 한다. 


인간의 탐욕은 기고만장하다. 전능한 신이 창조한 세상을 망가뜨릴 만큼 무지막지한 욕심이다. 필요 이상으로 소유하고 넘치게 먹으려다 보니 이 지경이 됐다. 인간이 건설한 코로나 터널의 끝은 아직도 보이지 않는다. 깜깜한 상황에 적응한 것 같다가도 불쑥 눈물이 나온다. 그렇다고 자책과 절망에 빠져 있는 건 아니다. 곤란한 길을 걷는 나에겐 지혜와 체력과 돌림길이 약속되어 있다. 그러니 힘을 내서 아이의 눈을, 피아노 선생님을 눈을, 그리고 나의 눈을 토닥토닥 닦아야겠다. 막막한 현실의 방에 격리된 사람들 속에 예쁜 멜로디가 끝없이 흐르길 기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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