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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장 Jan 12. 2024

Ep.3-3 회사에 시간을 갈아 넣어보자

두 번째 회사 이야기


첫 이직의 연봉 상승률 10%였다.


환승 이직의 기분은 꽤나 짜릿했다.

당장 이 곳을 떠나도 계속 돈을 벌 수 있다는 안정감에 흐뭇했다.


그렇게 일주일 정도 휴식 후 두 번째 회사에 출근했다.

집과 가까운 서울역에 위치한 회사는 출퇴근 시간을 한시간 이상 줄여줬다.


두 번째 회사는 인사팀도 아직 없는 뷰티 스타트업이 었다.

내가 입사한 날 다섯 명 정도의 신규 입사자가 있었고 그 중 인사 팀장님도 있었다.


첫 날 신규 입사자를 회의실에 모아두고 회사가 성장한 과정을 대표님이 설명했다.

CS를 직접 했던 초창기부터 인재들을 데려와 규모를 늘린 과정까지. 꽤나 뿌듯해보였다.


하… 인재라 쓰고 지인이라 읽는…  친밀감 넘치는 회사였다.


사진: Unsplash의Dim Hou


이 회사에서 나는 일과 브랜드에 말 그대로 시간을 갈아 넣었다.

추가 근무 시간만 40시간이 넘었을 정도이니 말 다했다.


누군가는 미련한 짓이라고 욕하겠지만 당시에는 그렇게 할 수 있는 동기가 있었다.

바로 또래로 구성된 팀원들이 함께 성장 서사를 만들어 간다는 분위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다같이 시간을 갈아 넣는 만큼 브랜드는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눈에 보이게 성장하는 매출에 중독되어 매일 하는 야근도 재밌었다.


그렇게 역대급 00 매출을 달성했을  앞으로 우리 브랜드에는 미친 성장만이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모든 이야기에는 변수도 발생하기 마련이다.


모종의 트러블로 인해 중요한 비즈니스 모델이 바뀌며 변화가 강제적으로 찾아왔다.

브랜드는 10개월 간 빠르게 성장한만큼 가파르게 하락하기 시작했다.


이 혼란 속에서 나의 역할은 ABM(Assist Brand Manager)

BM 결정한 브랜드 방향성을 토대로 유관 부서와 실무를 진행하는 것이었다.


업무 시간 대부분은 유관 부서와 커뮤니케이션 하는 것에 할애했다.

모두가 퇴근하고 나서야 남은 기획과 문서 작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사진: Unsplash의Nikita Kachanovsky



원하지 않은 변화를 준비 없이 맞이해서 일까? 

처음에는   없을 거라고 서로 위로했지만결국에는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것을 다들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비즈니스 환경에서 위기를 극복해 본 경험이 없는 20대로 구성된 회사.

우리는 지금 우리가 뭘 해야 하는지 몰랐다.


방법을 모르는 상태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노력은 시간 투자였다.

그래서 나는 더욱 많은 시간을 회사에서 보내기 시작했다.

명절 공휴일에도, 주말에도 출근했다.


회사는 미팅이 많아졌다. 끝 없는 하락 속에서 일단 모여 뭐라도 얘기했다.

하지만 여전히 이 추락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이미 결정된 내용들이 쉽게 바뀌는 일이 잦아졌다.

미팅을 할 때마다 프로젝트의 방향성이 달라졌다.


난 ABM으로서 미팅 때마다 달라지는 방향성을 유관 부서에 전달해야 했다.

처음에는 위기 상황에 대한 공감을 바탕으로 서로 다독이며 이해하던 팀원들의 눈빛이 점차 차가워졌다.


'  뭐가 바뀐 거에요?' 


내가 그들에게 다가가면 하던 일을 다 엎고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시그널이었기 때문이다.

자연히 모두가 새벽에 퇴근하는 날이 많아졌다. 하지만 그 새벽에도 변경은 반복됐다.


사진: Unsplash의Dameli Zhantas



시간은 흘러 연봉 협상 시즌이 왔다.

인사팀장님은 내가 정말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말씀하시며 20%가 넘는 인상률을 제시하셨다.


'역시 시간을 갈아 넣는  최고의 노력이었어'


나는 회사에 할 수 있는 최고의 노력을 쏟았다고 스스로를 대견해 했다.

'힘든 상황이지만 최선을 다해 엄청난 보상까지 얻은 '


브랜드는 여전히 파훼법을 찾지 못 했지만, 스스로에 대한 환상에 빠진 나는 모든 것이 다 괜찮을 거라며 날 위로했다. 몽롱했다. 


그러던 중 수출팀의 요청으로 브랜드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됐다.

일본에서 반응이 좋은 제품을 성장시키기 위해 캐릭터 콜라보 제품을 출시하는 것이었다.


적절한 캐틱터를 선정해 제안서를 작성하고 IP계약까지 마무리했다.

처음 해보는 성격의 업무에 걱정도 됐지만 이걸로 브랜드의 침체기가 해소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낭만적이진 않았다.

유관 부서를 모아 진행된 킥오프 미팅에서 상사는 엄청난 속도로 말하기 시작했다.


도저히 실천하기 버거운 일정에 비해 빈약한 프로젝트의 목적에 대한 설명.

하지만 팀원들의 시간을 갈아 넣는다면 충분히 수행할  있어 보였다.


아직도 그 미팅에 함께한 팀원들이 날 보던 눈빛이 잊혀지지 않는다.

'너는  이런 괴물이 탄생하는  막지 않았어?'라고 말하는  같았다. 


난 그들에게 너도 나처럼 시간을 갈아 넣으라고 말하  같았다.

그런 내가 무서웠고 빨리 그 자리를 도망치고 싶었다.


그 날 바로 가장 친했던 동료들에게 퇴사 선언을 했다.

 인생 두번째 퇴사였다.


Question) 인생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쏟은 대상은 무엇이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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