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누군가의마음 Apr 26. 2020

어레스트

침착함을 가장한 난장판

 어떠한 요인으로 환자의 심장이 제 기능을 못하게 돼버렸을 때 우리는 어레스트라고 표현한다.

정확한 표현은 Cardiac arrest가 맞겠지만, 거의 모든 의료진들은 어레스트라고 표현한다. 병원에서 어레스트가 체포의 의미로 쓰일 일은 드물 테니 혼동될 가능성도 거의 없다.


 어레스트 상황에서 CPR은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필수적인 처치로 모든 행위들이 다 프로토콜화 돼 있다. 의료진들은 각자 자신이 속한 의료기관에서 관련 교육을 정해진 기간마다 수료해야 한다. 그만큼 의료진에게는 필수 중에 필수인 항목이다.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어레스트 상황은 극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기에 매우 용이하기 때문에 의학 드라마에서는 CPR은 필수다. 드라마에서 어레스트가 나면 모두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그렇게 해서 환자가 돌아오거나 (심장의 리듬 회복) 혹은 돌아가시거나 두 가지 기로만이 있다. 어레스트가 난 환자의 상태는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깨끗하다. 피 한 톨 떨어진 데가 없다.


 오늘 오후 근무를 하면서 또 한 분을 보냈다. 한 시간 동안의 CPR에도 심장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 한 시간 동안 환자의 침대는 오만가지 물건들로 채워진다. 사과박스의 두배는 되는 쓰레기통이 눈 깜짝할 사이에 채워지고 입에서는 피가 나오기 시작한다. 환자의 근육이 느슨해지며 잔변이 나오는 경우도 있다. 삽입한 인공 기도를 통해 가래가 들끓으며 나온다. 코드블루 방송을 들은 코드블루팀이 도착하고 사람들이 우글거린다. 코드블루 이전의 플랜들은 몽땅 재고된다. 새로운 약이 달리기 시작한다. 보호자에게 연락이 닿는다. 피검사를 하겠다고 혹은 라인을 잡겠다고 여기저기 찌른 결과 여기저기 피의 흔적들이 생겨난다. ACLS라는 프로토콜은 이런 생난리의 현장에서 최소한의 침착함으로만 존재한다.


 누구는 컴프레션을 하고 누구는 앰부를 짜고 누구는 약을 주고 누구는 차팅을 한다. 이론으로서는 이렇게나 코드블루 상황이 깔끔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우아한 어레스트 상황은 존재할 수가 없다.

아무렇지 않게 지나가는 1분 1초 자체가 환자의 생명이기 때문에.


 컴프레션은 힘들다. 최초 발견자로서 시작한 컴프레션이었지만 금방 체력의 한계를 맛봐야 했다. 그만하고 싶음에도 끝까지 누르고 또 누른 건 방금까지만 해도 물을 마시고 싶다 했던 환자분을 얼른 깨우고 싶어서였다.


또 어느 한 가족이 슬퍼하는 밤이다.

어느 날이 안 특별한 하루가 없다.

작가의 이전글 하는 것도 없으면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