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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민 Feb 17. 2022

시선을 공유하는 사이

06 | 엄마가 되고

  기나긴 겨울의 차가운 바람이 사르르 따뜻해진 어느 늦은 오후, 셋이 함께 동네 산책을 나섰다. 이사 오고 나서 제대로 동네 산책을 할 시간이 없었던 우리는 평소에 잘 지나가지 않았던 곳으로 크게 한 바퀴 돌기로 했다. 골목마다 아기자기한 풍경들이 많아 우리의 눈길이 바쁘게 머물렀다. 어느 담벼락에 누군가 퍼즐을 붙여 글을 써놓았다. “어머, 이것 봐. 귀엽다.” 하는데 옆에서 아이가 “우와. 여기 봐봐요.” 하며 벽에 찰싹 붙어 무언가를 보고 있었다. 아이처럼 몸을 숙여 틈 사이를 보니 기차역이 보였다. 어머 여기서 기차역이 보이다니!


  서울에서 살던 집은 경사가 가파른 언덕 위에 있었다. 장을 많이 봐야 하는 날을 제외하고는 유모차보다는 아기띠를 하고 아이와 자주 외출을 하였다. 아기띠를 하고 나설 때면 품에 안겨 나를 바라보는 아이의 눈빛에 왠지 모르게 뭐라도 말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처음에는 주변을 둘러보며 벽돌, 나무, 꽃, 자동차 등을 찾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 몇 년을 오가던 길이었는데 덕분에 새롭게 보이는 것들이 많아져 산책길이 점점 즐거웠다. 아이가 아장아장 걷기 시작하면서는 아이 손을 잡고 산책하며 아이가 이끄는 대로 가서 구경하였다. 남의 집 대문 앞에도 앉아 보고, 떨어진 꽃잎도 가득 주워 보고, 비가 지나간 자리에 남은 물웅덩이도 밟아보며 계절의 변화도 온몸으로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아이가 말을 조금씩 하게 되었을 때는 마주치는 사람마다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는 통에 동네 사람들의 얼굴을 많이 알게 되었다. 덕분에 처음 마주친 동네 할머니의 마당에 들어가 토마토와 블루베리를 따서 먹기도 하고, 자주 가던 생협 매장의 활동가분들과도 소소한 일상 이야기를 편하게 나눌 수 있게 되었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오랫동안 살아왔던 곳인데 아이가 옆에 있으니 꼭 새로운 곳처럼 느껴졌다. 유모차를 밀면서는 휠체어를 탄 사람들의 불편함을 알게 되었고, 바닥에 떨어진 작은 유리 조각, 담배꽁초는 사소해 보이지만 길에서 돌을 줍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들에게는 위험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아이는 나에게 여러 시선을 전해줬다. 예전에는  눈앞에 것들만 다면 아이는 나에게 몸을 숙여 아래를 바라보는 시선, 고개를 들어 위를 바라보는 시선 그리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보게 하는 시선을 선물했다. 오늘도 이것  보라는 손짓이 난무한다. 나는 네가 보지 못한  보고, 아이는 내가 보지 못하는  보며 서로의 시선을 공유한다.



#엄마나랑친구할래 #정민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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