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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민 Feb 26. 2022

라떼는 말이야

07 | 아빠가 되고

01. 라떼는 말이야


  집돌이 아이와 외출을 하려면 얼마나 애를 써야 하는지 모른다. 주말 아침, 외출 준비를 마치고 현관문을 열려고 하는데 아이가 갑자기 나가기 싫다고 의자에 앉아버렸다. 그 모습을 보던 짝꿍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 야! 아빠는 어렸을 때 할아버지가 나가자 그러면 그냥 나갔어.

  - 나가기 싫어도?

  - 당연하지. 나가기 싫은 게 어디 있어! 아빠가 가자면 가는 거지!

  - 아빠, 할아버지한테 나가기 싫을 때는 말하지 그랬어. 말해야 할아버지가 알지.


  그러게. 말을 해야 알게 되는 것들이 있고, 말을 통해 전해지는 마음들이 있다. 아이도 아는 그 단순한 용기를 우리는 왜 그렇게 어려워하는지 모르겠다.



02. 질투쟁이


   저녁을 먹으며 시작한 이야기가 길어졌다. 가급적이면 식탁에서는 우리 셋이 같이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데 잘 안될 때가 많다. 아이는 이날도 입이 삐죽 나왔다.


  -  아빠는 엄마랑만 너무 친해. 가끔 나를 까맣게 잊는 것 같아. 


  아이의 귀여운 질투에 우리는 미안하다고 말하며 웃음이 새어나왔다. 그리고 아이의 이야기 하나하나에 얼마나 과한 반응을 보여야 했는지 모른다. 


  항상 너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줄게. 오랫동안 이렇게 너의 일상을, 너의 마음을 고주알 미주알 이야기해 주었으면 좋겠어. 네가 문을 쾅 닫고 들어가는 날이 오면 이 귀여운 질투쟁이가 몹시도 보고 싶어지겠지.



03. 아빠한테 보여줘요


  베르사유로 이사하고 나서 제일 놀란 건 어린아이들이 엄마 아빠와 함께 자전거 도로를 달리고 있는 풍경이었다. 마치 오리 가족처럼 엄마 아빠와 함께 안전모를 쓴 아이들이 각자의 자전거를 멋지게 타고 있었다. 아빠 자전거 뒷자리에 앉아 이 모습을 지켜보던 아이는 자기도 얼른 혼자 자전거를 타고 싶다며 의욕을 보였다. 마침 아이 친구 중에 얼마 전에 보조 바퀴를 뗀 친구가 있어 그 친구에게 보조바퀴가 달린 자전거를 빌렸다. 처음으로 아이와 둘이 자전거를 타고 연습 삼아 학교까지 갔다 집으로 돌아온 날.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발을 구르던 아이는 익숙한 길에 자신감이 붙었는지 금세 속도를 냈다. 그러다 아빠처럼 엉덩이를 들고 오르막 오르기 묘기를 선보였다. 그러면서 외쳤다.


  -  엄마, 이거 찍어서 아빠한테 보여줘요!


  아빠처럼 자신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자랑하고 싶은 아이의 마음이 귀여웠다. 아직은 서늘한 바람이 부는 날인데 땀을 뻘뻘 흘리며 타는 아이를 보니 우리도 곧 자전거 오리 가족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04. 이제야 알겠어


  자전거 타기에 재미를 붙인 아이는 외출할 때마다 자전거를 타고 집을 나섰다. 오늘은 동네 뒷산으로 향했다. 오르막이 너무 많고 산에서는 타기 힘드니 놓고 가자는 제안에도 아빠처럼 할 수 있다며 당당히 길을 나섰다. 한참 오르막을 오르던 아이가 아빠를 불렀다.


  -  자전거를 타보니 이제야 아빠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겠어.


  아빠 등에 안겨 탈 때는 만만해 보이던 길을 스스로 가려니 많이 힘들었나 보다. 그 이후 아이는 아빠가 자전거 뒤에 자기를 태우고 가다 힘들어하면 힘내! 하며 힘껏 응원하기 시작했다. 아빠와 아들은 서로에 대한 마음을 자전거 위에서 따릉 따릉 채워가고 있다.



#엄마나랑친구할래 #오늘의이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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