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 가족이 되다
01. 가족생활
일요일 점심에 친구 가족이 집으로 놀러 왔다. 같이 밥을 먹고 친구가 만들어 온 케이크를 디저트로 나눠 먹었다.
- 윤아, 이모가 만들어 온 케이크 진짜 맛있다. 그렇지?
- 아니, 나는 엄마가 만들어 준 케이크가 더 맛있어.
민망한 마음에 한 접시 싹싹 다 먹고 내려가는 아이에게 다시 물어보았다. 아이는 그래도 엄마가 만들어 준 케이크가 제일 맛있다며 흔들림 없이 이야기하곤 방으로 사라졌다. 옆에서 짝꿍은 사회생활 진짜 못한다며 속삭였다. 음… 사회생활은 잘 못해도 가족생활은 잘하는 거로.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하다 신랑과 아이에 대해 일부러 흠을 끄집어내어 이야기할 때가 있는데 아이의 태도를 보며 앞으로는 그러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애써 높일 필요도 없지만 낮출 필요도 없지. 내 가족은 내가 제일 사랑하기. 나도 아이처럼 앞으로 가족생활을 더 잘해야지. 물론 우리끼리 있을 때면 여전히 투닥투닥하겠지만 말이다.
02. 사랑의 힘
늦은 오후, 아이가 소파에 누워서 이리 뒤척 저리 뒤척인다.
- 윤아, 무슨 일 있어?
- 엄마, 오늘은 내가 힘이 없어. 힘 좀 줘.
- 어떻게 하면 힘이 날까?
- 사랑 안에는 힘이 있거든? 사랑을 주면 힘이 생겨.
- 엄마가 사랑 줘야겠다.
- 응. 꼭 안아줘. 엄마가 안아주면 사랑의 힘이 생겨.
다음날 아빠에게 이 이야기를 전했더니 아빠도 내심 기대에 가득 찬 목소리로 물어보았다.
- 윤아 또 어떨 때 사랑의 힘이 생겨?
- 예쁜 음식을 먹었을 때. 그리고 특별한 거 해줄 때. 아빠, 나 레고 경찰 사고 싶은데!
사랑의 힘이 생기려면 눈에 보이지 않는 것과 보이는 것 둘 다 중요하다.
03. 해피 바이러스 뿅뿅
한국에서 들려오는 바이러스 소식에 얼떨떨해하는 사이에 프랑스에도 확진자가 나오기 시작했다. 상황은 점점 안 좋아졌고 봉쇄령이 시작되었다. 집에서 1km 이상 이동할 수 없고 식료품 가게를 제외하고는 모두 문을 닫았다. 면 마스크밖에 없던 우리는 산책하는 것도 조심스러워 장을 봐야 할 때만 나 혼자 얼른 다녀왔다. 한번 장을 볼 때 일주일에서 십일 정도는 먹을 수 있게 장을 봐왔다. 그리고 일주일을 집에만 입었다. 아침을 준비하고 있는데 아이가 갑자기 갑자기 산책을 가자고 한다. 아침 먹고 가자는 내 이야기에 아이는 지금 꼭 봐야 한다며 내 손을 잡고 데려간다.
- 짠! 여기 무지개가 떴어요.
무지개 모형을 바닥에 세워놓고는 그걸 보여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아침부터 집안을 산책했다. 이동 제한이 한 달 더 연장되었다. 한 달을 이미 보내봐서 덤덤했지만 마음 한구석이 답답해졌다. 아이는 우리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방 안으로 들어오는 봄 햇살에 햇살 샤워를 하자며 손을 끌어당겼고 매시간을 알리는 시청의 종소리에 뽀뽀하자고 달려왔다. 놀고 있는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아이가 씩 웃더니 외친다.
- 해피 바이러스 뿅뿅!
우리는 아이의 해피 바이러스 덕분에 건강한 집콕 생활 중이다. 그래 걱정하면 뭐하나 서로 얼굴 보며 웃고 햇살 아래에서 뽀뽀나 하자.
04. 집은 어떻게 써?
이사를 위해 집을 보러 다니는 일상이 다시 시작되었다. 또 새로운 동네로 집을 보러 갔다 오는 길에 전화를 받았다. 열흘 전에 봤던 아이가 마음에 들어 했던 집이 다른 사람과 계약하게 되었다는 연락이었다. 고민하다가 기대하고 있던 아이에게 말해주었다. 집에 돌아온 아이가 종이와 볼펜을 꺼내더니 물어본다.
- 집은 어떻게 써?
- 집??
- 응. 아무래도 내가 편지를 안 써서 그런 것 같아. 집이 정말 마음에 들어요. 꼭 살고 싶어요. 이렇게 써서 다시 보내보자.
아이는 그림까지 그려 놓고 씻으러 갔다. 종이를 보고 있자니 이걸 웃어야 하나 울어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윤아, 너 때문이 아니야. 엄마 아빠가 열심히 알아볼게. 미안해.
05. 콜라 선물
토요일 아침, 짝꿍이 오랜만에 빵을 한가득 사 왔다. 이사 온 후 짝꿍의 바게트 권태기 때문에 한동안 빵을 못했기에 반가웠다. 아이도 아빠가 사 온 빵들이 마음에 들었는지 할 이야기가 있다고 귓가로 가까이 다가온다.
- (귀에 속삭이며) 엄마, 나 아빠한테 선물해 주고 싶은데 어때?
- 그래! 어떤 선물이 좋을까?
- 음.. 콜라를 선물해 주자!
아이는 자기가 좋아하는 빵들을 고민해서 골라온 아빠에게 아빠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을 선물해주고 싶었나 보다. 아이의 마음이 예뻐 원래는 집에 콜라 반입 금지인데 이번에는 특별히 허락했다. 짝꿍! 김 빠지기 전에 맛있게 마셔!
06. 병원 이야기
아이가 열이 나기 시작했다. 해열제를 먹어도 열이 떨어지지 않았다. 열이 나도 잘 놀던 아이가 걸을 때마다 다리가 아프다고 했다. 그런 아이에게 그럴 수 있다며 해열제만 먹이다 혹시 하는 마음에 아침 일찍 동네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서는 급히 큰 병원으로 가야 한다며 소견서를 써줬다. 우리는 그 길로 택시를 타고 소개받은 종합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코로나로 응급실에는 보호자 한 명만 들어갈 수 있었다. 병원 밖 화단에는 근심 어린 얼굴의 엄마, 아빠들이 앉아 있었다. 나도 그 옆에 앉아 아이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아이들은 종종 엄마, 아빠를 찾으며 밖으로 나와 그리웠던 품에 안겼다가 다시 검사를 받으러 들어가기를 반복했다. 늦은 밤 아이는 입원을 하게 되었고 며칠 후 수술을 받게 되었다. 혼자 수술실에 아이를 들여보내고 얼마나 미안하던지 자책의 마음과 수술을 무사히 잘 받기를 바라는 마음들이 뒤섞인 시간들을 보냈다. 아이가 회복실에서 드디어 병실로 올라왔다.
- 윤아, 아프지는 않아? 괜찮아? 윤이 참 씩씩하다.
그때, 간호사 선생님이 아이에게 물을 권했다. 그러자 아이는 마른입으로 나를 불렀다. 수술실에서 나와 처음으로 입을 뗐다.
- 엄마는 물 마셨어? 엄마 먼저 얼른 마셔.
그 순간 수술을 받기 전까지 머릿속을 헤집어가며 우리의 어떤 행동과 선택이 아이를 아프게 했을까 자책하고 있던 모습이 떠올라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혼자 수술실에 들어가야 하는 아이에게 더 많이 웃고 더 많이 안아주고 더 힘내라고 응원해 줄걸. 아프다 힘들었다 말 한마디 없이 엄마부터 챙기는 아이를 보며 또 반성했다. 잠든 아이를 살펴보고 아침 일찍 집으로 가서 아이가 좋아하는 김밥을 싸서 다시 병원으로 갔다. 이번에는 걱정은 내려놓고 더 많이 웃고 더 많이 안아주고 와야지.
07. 아빠 배꼽만큼
아이는 아침부터 줄자를 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집 안 곳곳의 사이즈를 재느라 바쁘다. 그러다 갑자기 아빠 멈춰봐! 외치더니 아빠 앞에 서서 손으로 자기 키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 아빠 배꼽만큼 키가 컸어.
- 우와, 진짜?
- 응. 얼른 커서 엄마 아빠 꼭 안아줘야지.
아이의 불쑥 고백 타임에 엄마와 아빠는 오늘도 헤벌쭉 웃어본다. 윤아, 지금도 충분히 꼭 안아주고 있어. 너는 이미 키보다 마음이 훨씬 더 큰걸.
#엄마나랑친구할래 #오늘의이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