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 아이의 정원
01. 꼬마 정원사
아이는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삽과 호미를 챙겨서 정원으로 향했다.
- 팬지야, 내가 집 만들어줄게.
- (고마워, 이윤아)
- 어! 어디서 고맙다는 소리가 들렸는데!
- 아! 팬지가 고맙다고 인사했나 보다!
- 정말? 그럼 내가 더 열심히 땅을 파야겠군. 팬지야, 기다려.
이사하고 우리에게 작은 정원이 생겼다. 동네 꽃 시장에서 아이가 고른 꽃들로 정원이 하나씩 채워지고 있다. 정원을 가꾸는 작은 손이 참 예쁘다.
02. 어른 참새
일요일 아침, 아이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공원으로 향했다. 새벽이슬들이 넓은 잔디밭에서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아이는 물을 잔뜩 머금은 잔디밭을 향해 거침없이 내달렸다. 하늘 위로는 새들이 군무를 하며 날아다니고 연못에는 오리들이 아침 단장을 하고 있었다.
연못가에 매트를 펼치고 비스킷과 주스를 마셨다. 과자를 작게 부수어 연못의 오리들과 주위를 서성이는 새들에게도 나눠줬다.
인적 드문 공원에서 자유롭게 달리며 아침의 햇살을 듬뿍 받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밤, 불을 끄고 잠이 들기 전에 아이가 나지막이 부른다.
- 엄마, 아까 본 참새 작지만 사실 어른 참새야. 그런데 어른 참새가 아이 참새처럼 행동한 거야.
- 왜?
- 그래야 더 많이 클 수 있으니깐.
그러고는 스르륵 잠든 아이. 그 옆에서 나는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겨 잠들지 못했다.
03. 마음의 방문
아침에 잘 놀던 아이가 뭔가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갑자기 투정을 부리기 시작했다.
- 윤아, 갑자기 왜 짜증이 났어?
- 엄마, 내 마음에는 방이 여러 개야.
- 아까는 마음은 착한데 나쁘게 말하는 방문이 열렸어.
아이는 종종 자기 마음에 여러 개의 방이 있다고 한다. 사람들이 사는 방, 자동차가 사는 방, 공룡이 사는 방, 경찰이 사는 방 등등. 그 여러 마음의 방 중 이제 비밀의 방도 생기겠지. 엄마는 왜 자꾸 너의 마음속 비밀들이 궁금해지는 건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쿨한 엄마는 안될 것 같다.
04. 크리스마스트리
11월 중순이 되면 거리에 크리스마스트리들로 가득해진다. 가족들은 열심히 골라서 아빠 어깨에 하나씩 들러 메고 집으로 간다. 아이도 크리스마스트리를 보더니 트리다 외치며 다다다 달려간다. 아직 마음의 준비도 없이 짝꿍 어깨에도 한 그루가 척 올라갔다. 아이는 집에 오자마자 트리 재료들을 모두 꺼내 신나게 장식을 시작한다. 아이의 빠른 행동력 덕분에 집 안에 나무 냄새가 솔솔 나고 불빛이 반짝인다. 트리를 보며 아이가 질문을 한다.
- 크리스마스트리는 왜 꾸미는 거야?
- 글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 내 생각에는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을 어디다 둬야 하나 걱정할 수 있잖아.
그때 선물 놓고 갈 수 있게 만드는 것 같아.
아이의 크리스마스트리처럼 우리 만의 약속의 장소를 만들어 놓으면 좋겠다. 서로의 마음을 전하고 싶을 때 편하게 전할 수 있는 그런 장소 말이다. 어디가 좋을까?
05. 날개 달린 집
지난여름 엑상프로방스에 있는 세잔 아틀리에에 갔다. 세잔 할아버지를 직접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한 아이는 방을 둘러보며 물어본다.
- 할아버지는 어디 계셔?
- 하늘나라에 갔지.
- 하늘나라에는 왜 갔는데?
- 사람은 누구나 나중에 죽어서 하늘나라에 가야 해. 할아버지는 지금 하늘나라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을 것 같아.
- 할머니 할아버지도 나중에 하늘나라에 가?
- 응. 엄마랑 아빠도.
- 그럼. 나는 날개 달린 집을 만들 거야. 그래서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보러 하늘나라에 꼭 갈 거야.
그러게 보고 싶을 때 언제든지 찾아갈 수 있는 그런 집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움에 마음의 위로가 필요할 때는 잠시 눈을 감고 기도를 한다. 그 순간 잠시나마 얼굴을 마주 보고 있는 기분이 든다. 볼 수 있을 때 자주 눈에 담아놓아야지.
06. 꿈
아이와 나란히 누워 책을 읽고 이제 잘 자라고 인사하며 문을 나섰다.
- 윤아, 잘 자! 꿈나라에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을게.
- 엄마! 나는 꿈나라에서는 어른이거든. 그래서 나만의 시간이 필요해. 엄마 기다려줄 수 있지?
어른이 되어 있는 아이의 모습이 그려지지 않았다. 네가 커가는 동안에도, 우리 곁을 떠나 혼자 길을 떠나도 언제나 기다리고 있을게. 그때까지 바쁘다는 이유로 재촉하지 않을게. 천천히 떠났다 천천히 돌아오렴.
07. 4월 엘리베이터에서
4월 어느 날 저녁을 먹고 산책을 하러 나왔다. 파리 집에는 우리 셋이 간신히 탈 수 있는 엘리베이터가 있다. 여느 때처럼 셋이 꼭 붙어 타고 내려가는데 덜컹 소리와 함께 안쪽 문이 활짝 열리더니 중간에 멈춰버렸다. 놀란 마음에 동동거리는데 아이가 한마디 한다.
- 조금만 참아봐요. 곧 구조팀이 우리를 구해줄 거예요.
아이가 좋아하는 타요, 슈퍼 윙스, 고고 다이노 덕분인가. 위급 상황에는 누군가 우리를 꼭 구해줄 거라 굳게 믿고 차분히 기다렸다. 40분 후에 아이의 말처럼 우리는 구조되었고 반짝이는 에펠탑을 보고 집으로 돌아왔다. 산책길에 가득 핀 노란 민들레 꽃들을 보았다. 아마 그 아이들도 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어른들을 기다리고 있지 않았을까. 아이들의 믿음을 잘 지켜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믿음이 잘 지켜지기를 소망해 본다.
08. 엄마, 나는 지금 노력 중이에요.
아이가 수술하고 한 달 정도 깁스를 해야 했다. 깁스를 풀고 나면 바로 걷고 달리기를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깁스를 풀었는데 제대로 걷지 못하는 것 아닌가. 처음에는 안쓰러웠던 마음이 시간이 지날수록 예전처럼 걷지 못할까 불안한 마음에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엄마의 조바심으로 아이를 다그치곤 무거운 마음으로 부엌에서 점심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때 아이가 느린 걸음으로 한발 한발 걸어왔다.
- 우와. 부엌에서 윤이 오랜만에 보는 것 같아.
- 엄마, 나는 지금 노력하고 있는 중이에요.
아차차. 믿고 기다려주면 되는 것을 또 후회할 말과 행동을 했다. 아이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옆에서 사부작 놀았고 나는 더 정성 들여 점심을 차렸다. 며칠 뒤 아이는 조금씩 걷고 달리기 시작했다. 며칠만 더 참을 걸 그랬다. 믿고 기다리는 일이 참 어렵다.
#엄마나랑친구할래 #오늘의이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