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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민 Oct 30. 2022

에필로그

09 | 아이의 정원

  일요일 아침, 음악을 틀어놓고 각자 할 일을 하고 있었다. 아이의 노래가 멋지다는 말에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귀 기울여 노래를 들었다. 김진호의 ‘엄마의 프로필 사진은 왜 꽃밭일까’라는 노래였다. 가사를 따라가다 보니 꼭 아이가 자라고 자란 어느 날 나에게 불러주는 노래 같았다. 그리고 뒤이은 어머니의 잔잔한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눈가가 찡해졌다.


엄마의 사진엔 꽃밭이 있어

꽃밭 한가운데엄마가 있어

그녀의 주변엔 꽃밭이 있어

아름답게 자란 꽃밭이 있어


초록빛 머금은 새싹이었지

붉은빛 머금은 꽃송이였지

나를 찾던 벌과 사랑을 했지

그 추억 그리워 꽃밭에 있지


  올봄부터 정원에 꽃을 하나씩 심고 가꾸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주변의 꽃과 나무에 관심이 많아졌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사진첩에 아이 사진만큼 꽃 사진이 가득해졌다. 이름도 찾아보고 어떻게 자라는지 찾아보게 되고 작은 씨앗이, 작은 모종이 커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얼마나 설레고 즐거운지 모른다. 작은 씨앗이 자라 크고 단단한 꽃으로 자라는 과정이 꼭 아이가 자라는 모습과 닮았다. 


  프랑스로 떠나기 전에 밀양 집에 잠시 머물렀다. 서울에서 밀양으로 내려오면 계절의 풍경을 진하게 느낄 수 있어 참 좋다. 아이는 개구리 소리, 매미 소리가 가득하고 참외, 수박 같은 달콤한 과일들을 마음껏 먹을 수 있는 여름 풍경에 흠뻑 빠졌다. 특히 산딸기의 맛을 알게 된 이후 앉은 자리에서 한 소쿠리씩 먹었다. 아이가 골목에서 놀고 있는 걸 보고 옆집 할머니께서 산딸기를 한  움큼 주셨다. 아이는 산딸기를 순식간에 먹고는 옆집에 갔다 올게 하고는 혼자 밭을 가로질러 할머니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산딸기를 다시 한 움큼 얻어 집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 뒷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았다. 아이 혼자 어디를 가는 일을 상상해본 적이 없었는데 성큼성큼 갔다 집으로 돌아오는 아이의 모습이 신기했다. 여름의 내음만큼 아이도 싱그럽게 자라있었다.


  정원을 가꾸면서 육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작은 씨앗이 자라 크고 단단한 꽃으로 자라는 과정이 꼭 아이가 자라는 모습과 닮았다. 자꾸 들여다보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게 도와줘야 하지만 딱 거기까지만 내 역할이었다.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자라 언제 꽃을 피울지는 식물들 각자의 몫이다. 나는 그저 옆에서 묵묵히 지켜볼 뿐이다. 햇살 좋은 날에도 비바람이 부는 날에도 잘 자라기를 마음 가득 응원한다.


  아이가 생겨 엄마라는 이름을 달고 나니 왠지 나라는 사람은 완벽해야 할 것 만 같고 실수 없이 모든 걸 아이에게 해줘야 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아이가 커가는 하루하루가 모두 처음 겪는 일이었던 나는 참 많이도 서툴렀다. 그래서 아이에게 항상 부족한 엄마인 것 만 같아 자책도 많이 하고 어려운 시험 문제 앞에 앉아 있는 학생 같은 마음이었다. 그런데 아이가 친구하자고 한 날 마음이 한결 가볍고 수월해졌다. 내가 조금 서툴러도 완벽하지 않아도 친구처럼 이해해 줄 것 같았다. 


  아이가 내 품을 떠나 어린이집에 가고 학교에 가면서 점점 나와 떨어져 있는 시간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내가 모르는 아이의 시간이 많아졌다. 처음에는 그 시간들이 궁금해 집에 돌아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참 많이도 물었다. 이제는 아이가 이야기를 먼저 꺼내지 않으면 먼저 물어보지 않기로 했다. 몹시 궁금하지만 말이다. 그저 떨어져 있던 시간에 아이가 즐거웠기를, 몸과 마음이 다치지 않고 건강했기를 바래본다.


  꽃을 살펴보고 있는 내 옆으로 아이가 다가온다. 같이 고르고 심은 꽃들이 많아 여기저기 살펴 보며 종알 종알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다 꽃 받침! 하며 두 손을 얼굴에 꾀고는 웃는다. 우리는 언제까지 너의 말과 행동에 감동받을 수 있을까? 감사할 수 있을까? 오늘도 서로가 서로의 꽃이 되어 우리의 정원은 점점 풍성해지고 있다. 그리고 엄마 정원사는 변화하는 시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고 있다.



#엄마나랑친구할래 #정민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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