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 나를 알아가는 시간
지난여름 캠퍼 밴을 빌려 바다로 여행을 떠났다. 우리는 프랑스 남쪽 Saint-Clair(쌩클레흐) 해변 근처의 캠핑장에 도착했다. 우리 옆에도 캠핑카로 여행 중인 가족이 있었다. 반가움에 지나가며 프랑스어로 인사를 했다. 그런데 웃으며 인사하면서도 어색한 분위기는 뭘까. 특히 옆에 있던 중학생 아이는 나를 흘금 보고는 만다. 아무래도 옆에 있으니깐 자주 마주치게 되어 자꾸 인사를 하게 되는데 조금은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며칠 뒤 옆집 아주머니께서 먼저 영어로 이야기를 건넸다.
- 안녕하세요. 우리는 아일랜드에서 왔어요. 어디서 오셨어요?
- 아! 안녕하세요. 저희는 파리에서 왔고 한국 사람들이에요.
- 반가워요. 여기 바다 참 좋네요.
그렇게 인사를 나눈 후 우리는 오며 가며 더 반갑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옆에서 무뚝뚝해 보였던 중학생 아이는 윤이에게 다정한 형이 되어줬다. 사실 나는 옆집 가족들이 당연히 프랑스 사람들인 줄 알았다. 영어를 쓰는 사람들에게 계속 프랑스어로 이야기했으니 그쪽에서도 당혹스러웠을 것이다. 여전히 나는 프랑스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어느 나라 사람인지 구별할 수 없다. 같은 아시아인이라고 해도 잘 모르겠다.
아이와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맞은편에 앉은 아저씨가 아이를 보며 수줍게 “니하오” 하고 인사를 한다. 아마 아저씨가 알고 있는 아시아인은 중국인이거나 아시아의 언어가 니하오뿐 일 확률이 높다. 아저씨의 인사에 아이는 무슨 말인지 의아해했다.
- 아저씨가 방금 한 말은 안녕하세요라는 중국어야. 아저씨가 윤이를 만나서 반가웠나 봐. 그런데 중국 사람인 줄 알고 중국어로 인사한 거야. 쓰는 말이 달라도 얼굴이 비슷한 사람들이 많아 사람들이 헷갈릴 수 있거든.
타지에 나와 있으면 인종차별과 관련한 일들에 민감해진다. 나도 모르게 피해자가 되기도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생각도 말도 행동도 더 조심하려고 노력한다. 서로의 다름을 발견하는 건 정말 쉬워도 그 다름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일이 이리도 마음을 써야 하는 어려운 일인지 몰랐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마음인 나를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보느냐가 아니라 내가 나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살피는 일이 어색했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는 어느 학교의 학생, 어느 회사의 사원으로 나를 표현하였다.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는 누구의 엄마로 나를 소개를 하였지만 나를 나타내기에는 어딘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프랑스에 와서는 나를 한국인이라고 소개하였지만 참 낯설고 어색한 그리고 참 가벼운 기분이 들었다. 돌아보니 작은 단위로 촘촘히 어딘가에 소속되어야 안정감이 들었던 것 같다. 아니 그 편이 고민할 것도 없이 편했던 것 같다.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는 새로운 세계로의 초대였다. 누구의 엄마라고 표현하기에는 너무 넓은 세계였다. 그리고 이방인으로 프랑스에서 생활하면서는 그 고민의 세계는 더욱 확장되었다. 나는 누구지? 나를 어떻게 소개할 수 있을까?
어디 소속이 아니라 내가 가진 것들로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자유롭고 당당한 태도를 가지고 싶다. 아이가 자신의 정체성으로 고민하는 때가 오면 저 깊은 땅속에 갇히지 않고 자유로울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줄 수 있는 친구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날이 오기 전에 숙제를 열심히 풀어봐야겠다.
#엄마나랑친구할래 #정민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