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 엄마가 되고
01. 꿀떡 마음
오늘은 여느 날과 다름없는 평일이었지만 한국은 추석이라 아이가 학교에 가기 전 서둘러 양가 부모님께 영상 통화로 인사를 드렸다. 가족들 얼굴 보며 실컷 웃고 뒤돌아서니 마음이 헛헛해졌다. 오전 일과를 마치고 송편을 사러 한인 마트에 갔다. 송편은 보이지 않아 아쉬운 대로 삼색 꿀떡을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아이에게 간식으로 그릇에 담아줬다.
- 윤아, 추석이니 맛있는 떡 먹자.
- 우와! 이 분홍색 떡은 엄마를 사랑하는 내 마음 같아.
- 정말? 다른 색깔 떡은 어떤 마음이야?
- 초록색은 나무의 마음이고 하얀색은 우리 모두의 마음이야. 나는 엄마를 사랑하니까 분홍색 떡부터 먹어야지.
아이는 웃으며 분홍 꿀떡을 콕 찍어 한입에 쏙 넣고 오물오물 먹기 시작했다. 오물거리는 입을 한참 바라보았다. 꿀떡보다 더 달달한 아이 덕분에 그리움만 가득했던 마음이 어느새 사르르 녹아 달곰해졌다.
02. 하트 달걀
며칠 아픈 내색을 했다. 아이는 골골대는 나에게 아프지 말라며 약도 챙겨주고 선물도 전해줬다. 그런 아이에게 고마워 저녁으로 준비한 짜장밥 위에 하트 달걀을 만들어 올려줬다. 그런데 아이가 한 입 먹더니 눈을 동그랗게 떴다.
- 엄마, 방금 밥 말고 다른 것도 몸속에 들어온 것 같아요.
혹시나 음식에 달걀 껍데기라도 들어갔나 싶어 놀랐는데 아이는 심각한 표정을 하는 나를 보며 웃으며 말한다.
- 이 달걀 모양 같은 엄마 사랑이요. 히히히.
아이를 보고 있으면 엄마가 보고 싶어진다. 나는 이런 딸이었던 적이 있었던가. 한 번은 있었겠지 하고 기억을 샅샅이 훑어봐도 찾을 수가 없었다.
03. 이선희가 좋아
오랜만에 매주 챙겨 보는 프로그램이 생겼다. 셋이 노트북 앞에 둘러앉아 저녁을 먹으며 보는 재미가 있어 아이가 가장 기다리는 시간이기도 하다. 오늘은 싱어게인 마지막 회를 하는 날이었다. 마지막 무대로 이선희와 참가자들이 나와 함께 노래를 불렀다. 윤이는 그 무대가 인상적이었는지 그날 이후 한동안 이선희의 <그 중의 그대를 만나>를 매일 틀어 달라고 했다.
- 윤아, 이 노래가 왜 좋아?
- 엄마, 사랑~하고 부르는 게 진짜 좋아.
오랜 지인인 선생님 집에 놀러 갔다. 윤이는 어김없이 이선희의 노래를 요청했다. 선생님은 윤이에게 왜 이선희가 좋은지 물어보았다.
- 윤아, 이선희가 왜 좋아?
- 엄마 목소리랑 닮았어요.
이런. 윤이에게 콩깍지가 단단히 씌어있나 보다. 아이의 그 콩깍지가 오랫동안 벗겨지지 않기를 바라는 무모한 마음을 가져본다.
04. 하트 종이접기
주말 아침, 아이는 상자에서 색종이와 종이접기 책을 살펴보고 있었다. 책을 넘기며 혼자 이리저리 해보는데 잘 안되는 눈치였다. 아이는 아직 혼자서 종이접기를 해본 적이 없었다.
- 윤아, 꼭 책에 있는 것처럼 안 해도 돼. 원하는 대로 접어도 돼.
- 엄마, 그럼 5번부터 접어도 돼?
- 그래도 되는데 책에 있는 걸 똑같이 접고 싶으면 1번부터 순서대로 접어야 해.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한참을 집중해서 바스락거렸다. 그러더니 나를 불러 손에 올려주었다.
- 엄마 선물이야! 엄마한테 하트 선물해 주고 싶어서 포기 안 하고 끝까지 접어 봤어.
아침부터 폭풍 감동이었다.
- 우와! 정말 고마워. 진짜 멋있다. 아빠한테도 접어서 선물해 줄까?
- 아빠 하트는 엄마가 접어줄래? 정말 힘들었거든.
힘든데도 끝까지 만들어 보려고 애썼을 아이에게 고마웠다. 엄마도 힘든 순간에 도망가지 않고 너처럼 끝까지 해볼게.
05. 엄마의 진짜 실력
파리에는 킥보드를 타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아이들도 킥보드를 타고 씽씽 쌩쌩 지나간다. 아이는 오며 가며 형들 타는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더니 하나씩 잔기술들을 연마해 나갔다. 아이도 이제는 제법 속도를 느끼며 잘 타게 되었다. 오늘은 아이가 누가 더 빠른지 시합을 하자고 했다. 준비 땅! 아이의 속도에 맞춰 가고 있었다. 그런데 아이가 옆에서 큰 소리로 외쳤다.
- 엄마! 이게 진짜 실력이야? 엄마의 진짜 실력을 보여줘!
아이도 어리다고 봐주는 게 싫은 모양이었다. 그래서 온 힘을 다해 달렸다. 힘껏 달렸는데 아이가 이겼다. 물론 킥보드와 달리기는 불리할 수밖에 없다고 했지만 마음은 어머나! 깜짝 놀랐다. 이제 킥보드 타는 아이 옆을 설렁설렁 산책하듯 걷기는 안될 것 같다. 앞으로 너와 발을 맞추려면 운동 열심히 해야겠다. 언제 이렇게 큰 거니?
06. 꿀벌이 전해준 마음
아이와 둘이 공원으로 놀러 갔다. 잔디밭에는 하얀 망초와 노란 민들레로 가득했다. 오늘따라 바람과 햇살과 하늘빛이 설레는 봄 같았다. 벤치에 앉아 아이가 간식을 먹는 동안 잠시 풍경들을 둘러보며 쉬고 있었다. 아이가 풀밭으로 천천히 걸어가더니 몸을 숙여 무언가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둘러 내 곁으로 다시 돌아왔다.
- 엄마, 꽃 위에 꿀벌이 진짜 많아.
- 정말?
벌이 많은 건 신기했지만 자리에서 일어나고 싶지는 않았다. 나뭇가지들이 바람에 일렁이는 풍경들을 계속 바라보며 앉아 있고 싶었다.
- 응, 근데 벌이 나한테 뭐라고 말하던데?!
- 뭐라고 그랬는데?
- (속삭이며) 엄마도 같이 와서 보면 좋겠대.
벌이 그렇게 이야기했다는데 별수 있나. 무거워진 엉덩이를 힘껏 일으켜 세워 아이가 이끄는 대로 풀밭 구경을 나섰다. 정말 셀 수 없이 많은 벌이 이 꽃에서 저 꽃으로 비행하며 부지런히 꿀을 모으고 있었다. 아이와 함께 숨죽여 벌들도 관찰하고 민들레와 개망초에 가려져서 보이지 않던 작은 풀꽃들도 곳곳에서 발견했다. 내 발끝에서 이렇게 부지런히 봄 인사가 전해지고 있었다니. 오늘도 아이 덕분에 지나칠 뻔한 발끝 풍경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07. 내가 다섯까지 셀 게
자려고 불을 끄고 누워있는데 아이는 잠이 안 오는지 뒤척이더니 슬며시 속삭인다.
- 엄마 품에 안겨서 자면 사랑이 가득 해지는 기분이야.
아이의 네 번째 생일부터는 혼자 자기로 했는데 이런 순간들을 놓친다고 생각하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네 번째 생일날이 되었다. 이날도 평소처럼 같이 책을 읽고 잘 자하고 일어나려고 하는데 아이가 오 분만 더 같이 있으면 안 되냐고 물어본다. 안될 것 없지 하고 누워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아이가 크게 숨을 들이쉰다.
- 엄마, 이제 내가 다섯까지 셀 게.
- 다섯까지 세면 엄마는 엄마 방으로 갈까?
- 응. 하나, 둘, 셋, 넷, 다섯.
잘 자, 좋은 꿈 꾸고 내일 또 만나자 하고 아이의 방문을 닫고 나오는데 왜 이렇게 섭섭한지. 내심 오늘도 같이 자자고 하길 바라고 있었다. 아이는 또 이렇게 또 한 뼘 씩씩해졌는데 나는 밤새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엄마가 너한테서 독립하는 연습이 필요할 것 같다.
#엄마나랑친구할래 #오늘의이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