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가 ‘고프다’는 것에 관하여-
(3) 요리는 장비빨? 요리는 냉부빨!
인터넷TV를 설치한 후 제일 먼저 한 것은 JTBC 정액권을 결재하는 일이었다. 오직 <냉부> 다시 보기를 위하여. 자취인들은 늘상 고민을 반복한다. ‘저녁에 뭐 먹지?’라는 고민이 해결되면 ‘뭐 보면서 먹지?’라는 또 다른 고민에 시달려야 한다. 그러나 내겐 그런 고민이 없다. 8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매 끼니마다 내 밥상을 채워주는 <냉부>라는 콘텐츠가 있었기 때문. 여전하다. 나는 여전히 식사할 때 <냉부>를 튼다.
요리에 발을 들인 후 첫 시작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 원래 세상사가 다 그러하긴 하지만. 요리든 뭐든 무언가에 빠진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공통적인 현상이 있는데 일단은, 허우적거리기 마련이라는 것. 그래서 도구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된다. 장비빨. 장비빨을 세우기 시작한다! 지구의 요리인人들은 제일 먼저 잘빠진 칼과 도마를 구입한다. 아니 구입하려다가, 망설인다. 전문가용 조리도구들은 상상 이상으로 몸값이 높다는 걸 알게 되기에. 점점 이연복 셰프님의 중식도나 유명 유튜버들의 엔드그레인 도마 같은 건 사치스럽게 느껴질 것이고, 이에 그들은 세상 모든 것이 다 있는 ‘다이소’로 향할 것이다. 물론, 나 역시 그러하였다.
다이소 덕분에 생긴 여윳돈 —이라 불러도 될지는 모르겠으나— 은 고스란히 식재료에 투자할 수 있게 된다. 장비빨 대신 재료빨을 세운달까. 그렇다면 과연 어떤 식재료를 살 것인가. 아마 지구의 요리인人들은 스테이크용 소고기를 알아볼 것이다. 로망부터 실현해야 하니까. 스테이크와 파스타 같은 요리를 고급 레스토랑도 아닌 집에서, 스스로, 해먹었다는 자신감과 만족감을, 얻고자 할 것이다. 물론, 나 역시 그러하였다.
이제 다음 단계, 소고기에 좌절할 차례다. 우리나라 소들의 몸값이 역시나 상상 이상으로 높다는 걸 알게 된 지구의 요리인人들은, 호주와 미국의 대평원을 떠올린다. 그곳에서 뛰어노는 소들의 몸짓, 그 아름다움을 찬양하며 과감히 재료빨을 포기할 것이다. 구워놓으면 어차피 다 똑같다며, 잘 구우면 한우 못지않을 것이라며, 스스로 위안을 삼을 것이다. 물론, 나 역시 그러하였으나 결과적으로 정말 그러하였다. 정말 한우 못지않은 맛이었다. 이는 역시나 <냉부> 덕분이었는데 이번엔 김풍 작가의 앙숙, 최현석 셰프였다. 최현석 셰프는 쿡방에 딱 맞는 인물이었다. 화려한 기술에 입담, 시원시원한 설명까지. 덕분에 요리 초보자도 손쉽게 스테이크를 뚝딱하고 만들어냈다.
<냉부>에는 아무래도 15분이라는 제한 시간이 있다 보니 일반인들도 쉽게 따라할 수 있는 요리 레시피가 많다. 인피니트 성규 편에 등장한 김풍 작가의 ‘토달토달’은 뜨끈한 해장 요리로 제격이며, 케이윌 편에서 미카엘 셰프가 선보인 ‘치킨마요랑깨’는 닭가슴살 요리의 반전과도 같은 매력을 뽐낸다. 닭가슴살에 깨를 묻혀 튀겨낸 치킨마요랑깨는 겉바속촉의 진수를 보여주는 요리이다.
자취인들을 위한 초간단 레시피만 존재하는 건 아니다. 호텔 레스토랑 급 비주얼을 자랑하는 고품격 요리는 물론 어머니 생각이 물씬 나는 집밥 한 상, 게다가 빵과 디저트까지 후딱 만들어내는 <냉부> 셰프들이었다. 그들에게 빙의하고자 경기도 안성에 사는 30대 YES 총각은 틈만 나면 요리를 해대기 시작했다. 고작 라면이나 겨우겨우 끓여대던 그 시절의 자신을 지워내고 싶었는지 이젠, 절대 밥 한 끼도 대충 때우는 법이 없다.
그나저나 말이다. 결혼을 하려면 <냉부>를 끊어야 할까? 언제쯤 나는 NO 총각이 될 수 있을까. 당신도 알아야 한다. 요리라는 취미는 21세기 남성에게 필요한 취미이긴 하지만, 그것이 독이 될 수도 있음을 말이다. 사람은 불편하거나 필요한 게 있을 때 변화를 추구하기 마련이니까. 나는 지금 결혼이 안 고프다. 혼자서도, 아주 잘 먹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