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다들 엄마가 시켜서 하잖아!(1)

-좀 치는 남자. 물론, 피아노를-

by 웅숭깊은 라쌤

<혼자서도 잘 놀아요-인프피 그 남자의 은밀한 취미생활>


처음엔 다들 엄마가 시켜서 하잖아!

-좀 치는 남자. 물론, 피아노를-


(1) 정말이다. 엄마가 시켜서 했다.


언제부턴가, 아니 정확히는 군대에서 전역한 후로 ‘엄마’라고 부르는 게 어색해졌다. 군대도 다녀왔으니 스스로를 ‘철든 놈’이라 여기고 싶었던 걸까. 엄마는 엄마가 아니다. ‘어머니’다. 지금이야 엄마가 엄마가 아닌 어머니이지만, 어머니가 어머니가 아닌 엄마인 시절도 있었을 거다. 그래 이건, 그때의 이야기이다.


7살 때 우리 가족은 아파트에 살았다. 부자인 척 하고 싶었으나 솔직히 고백하면 그 아파트는 군인 아파트, 그러니까 해병대 장교였던 아버지를 위해 나라에서 내어준 조그마한 평수의 오래된 아파트였다. 핵심은, 그 아파트 단지에 피아노 학원이 참 많았다는 점이다. 군인 남편을 둔 아낙네들이 소일거리로 피아노 학원을 운영하고 있었다. 우리 집엔 피아노가 없었고, 피아노 학원을 다니기엔 학원비가 비쌌고, 그래서 내겐 두 가지 선택지가 주어졌다. 슬기네 엄마, 윤주네 엄마. 내 어머니, 아니 우리 엄마는 내게 두 엄마 중 한 엄마를 선택하라 하셨다. 하느냐, 안 하느냐에 대한 선택지는 애초에 없었다. 그리고 나는 윤주네 엄마를 선택했다. 윤주네가 더, 가까웠으므로.

그렇게 시작된 피아노는 경기도 김포에서 경남 진해로 이사를 가며 단 일 년 만에 이별하는 수순에 이르렀으나, 진해에도 군인 아파트는 있었고, 군인 남편을 둔 아낙네들이 있었고, 그들 중에는 피아노 학원을 운영하는 이도 있었다. 윤주네 엄마에서 원기네 엄마로, 내 피아노 선생님은 바뀌게 되었다. 그렇게 다시 시작된 피아노는 경남 진해에서 경기도 화성으로 이사를 가며 다시 일 년 만에 이별하는 수순에 이르렀으나, 경기도 화성에도 군인 아파트가…. 여하튼 또 새로운 선생님께 피아노를 배웠다.

그런데 이상했다. 경기도 화성에서 우리 가족은 이사를, 가지 않았다. 일 년이 지났음에도 이사를, 가지 않았다. 그래서 피아노 선생님은 바뀌지 않는 듯했으나 놀랍게도, 선생님이 이사를 갔다. 더 놀라웠던 건 더 이상 아파트 단지에 피아노 선생님이 없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번엔 정말로, 피아노와 이별하는 줄로만 알았다. 그렇지만 내 어머니, 아니 우리 엄마는 정말 강인한 분이셨다. 아예 우리 집에, 그 값비싼 피아노를 들이신 것. 더불어 외부에서 선생님을 집으로 모셔 오셨다. 나의 피아노 역사는 결코 멈출 기색이 없었다.

7살 때부터 배우기 시작한 피아노. 실력이 느는 것 같진 않았으나 진도를 나가기는 했다. 바이엘에 이어 체르니 100, 30, 40을 떼고 모차르트, 바흐를 쳤다. 물론 하논이나 명곡집 같은 책들도 함께. 보통 때가 되면 ―특히 남자애들은― 피아노를 때려치우고 속셈 학원을 가는 게 정상이지만 내 어머니, 아니 우리 엄마는 선견지명이 있으신 분이었다. 악기 하나는 할 줄 알아야 나중에 커서 도움이 될 것이니 끝까지 배우라는, 명을 내리셨다. 그래서, 끝까지 배웠다.

정확히 중3이 되어서야 피아노 배우기는 끝이 났다. 이땐 서울로 이사를 갔는데 서울 애들은 공부를 잘했고 난 못했으므로, 비로소 어머니는 피아노 대신 공부하는 학원을 보내셨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내 피아노 역사가 끝이 난 것은 아니다. 배우기가 끝이 났을 뿐, 여전히 집에는 피아노가 있었으므로 나는 매일 피아노를 쳤다. 조금 달라진 게 있다면 그때의 피아노 연주는 내 어머니, 아니 우리 엄마가 시켜서 한 게 아니었단 점이다.

언제부턴가, 난 피아노에 푹 빠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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