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다들 엄마가 시켜서 하잖아!(2)

-좀 치는 남자. 물론, 피아노를-

by 웅숭깊은 라쌤

<혼자서도 잘 놀아요-인프피 그 남자의 은밀한 취미생활>


처음엔 다들 엄마가 시켜서 하잖아!

-좀 치는 남자. 물론, 피아노를-


(2)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듯


남중을 다니던 내가, 남녀공학 무려 남녀 합반인 학교로 전학을 갔다. 설레는 마음으로 향했던 것과 달리 나를 대하는 분위기는 무척이나, 싸늘했다. 비수가 날아와 꽂히는 기분까진 아니었지만 서울, 그것도 부자들만 모여 산다는 여의도로 전학을 갔으니 시골뜨기에겐 분명 낯선 공간일 수밖엔 없었다. 게다가, 아버지가 서울 놈들에게 꿀리지 말라며 신풍시장에서 사주신 새 운동화는 오히려 나를 더 초라하게 만들었다. 교실 바닥을 밟고 선 운동화들은 나이키 혹은 아디다스뿐이었다. 하찮은 듯한 시선으로 모두들 내 운동화만 바라보고 있었다.

반전의 시간은 금세 찾아왔다. 당신이 예상하고 있는 것처럼 피아노가 그 역할을 했다. 음악 시간이었고, 음악실엔 피아노가 있었고, 그냥 무턱대고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고, 뒤늦게 들어온 음악 선생님마저 감탄 어린 시선으로 바라볼 뿐이었고, 학급 전체가 나를 주목했다. 내가 연주했던 곡은 클래식이 아니었다. 모차르트나 바흐였다면 아마 다들 무시했을지 모른다. 나는, 아주 센스 넘치는 나는! 이지훈&신혜성의 ‘인형’을 쳤다. 글쟁이들이 항상 ‘독자’를 고려한 글쓰기를 하듯, 청중이 즐겨 듣는 대중가요를 연주함으로써 ‘이 노래는 당신을 위한 거예요’라는 듯한 메시지를 전달해주었다. 당신은 이 표현이 지나친 확대 해석이라 할 수도 있겠으나 분명, 그날 이후 아무도 내 발을 바라보지 않았다. 발을 향하던 시선이, 손으로 향했다.


자신감이 과해져 좋아하던 여학생에게 ―피아노 연주로― 고백했다가 두 번이나 차이긴 했지만(한 학생에게 두 번 고백한 것이다. 두 명이 아니다.), 여하튼 피아노로 인해 시골뜨기 전학생 이미지는 벗어낼 수 있었다. 더더욱 피아노를 열심히 쳤다. 동네 문구점에서 500원짜리 악보를 사다 매일 같이 연습해댔고, 피아노 위엔 조성모, 얀, 이기찬 같은 발라드 가수들의 얼굴이 쌓여갔다. 나는 좀 치는 사람이었다. 물론, 피아노를.


그나저나 말이다. 어머니는 알고 계셨던 걸까.

아들이 이성 교제를 위해 피아노를 유용한 도구로 사용하게 될 것임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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