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별이 빛나는 밤에(3)

-라디오와 함께 잠드는 밤-

by 웅숭깊은 라쌤

<혼자서도 잘 놀아요-인프피 그 남자의 은밀한 취미생활>


우리의 별이 빛나는 밤에

-라디오와 함께 잠드는 밤-


(3) 지구인은 추억을 먹고 살아요


나는 아날로그 감성이 매우 풍부한 사람이다. 매년 여름방학이면 학급 아이들을 위해 손 편지를 쓰곤 했다. 당신도 경험해보면 알겠지만, 서른 명이 넘는 아이들을 위해 정성껏 글을 쓰다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내가 왜 이걸 시작했을까’이다. 팔이 떨어져 나갈 듯한 고통이 밀려오니까. 그래도 아이들 한 명 한 명을 떠올릴 수 있어 이건 참 좋은 감성이다. 녀석들은 ‘이 인간은 방학까지 잔소리냐’라며 온갖 투정을 부릴 수도 있겠지만, 이 세상 교사들은 다 안다. 그 잔소리가, 하나부터 열까지 다 널 위한 소리라는 걸.

라디오도 꽤 아날로그적이다. 라디오에선 예상치 못한 순간 지구인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추억, 그 추억이란 사진을 마음껏 인화해주기 때문이다. 특히나 음악이 그렇다. 시간과 공간은 따로 존재하지 않는데, 우린 음악을 들으며 그 시절과 그 시절의 공간을 떠올리게 된다. 마치 사진을 찍어내듯. 김민교의 ‘마지막 승부’가 흘러나왔을 땐 모든 순간을 위해 전부를 걸었던 초등학교 운동회를 떠올렸고, 에메랄드 캐슬의 ‘발걸음’을 들으며 중학교 시절 동창의 얼굴을 그려보기도 했다. 이래서 라디오는 지구인에게 필요하다. 지구인은, 추억을 먹고 사는 동물이니까.


달릴 때, 운전할 때 당신은 아마 있는 힘껏 음악을 틀고 있지 않을까. 휴대폰 블루투스를 연결해 멜론 차트 순위에 매겨진 음악 리스트를 자동 재생시키고 있는 당신이 혹시라도 이 글을 본다면, 가끔은 정말 가끔은 라디오를 들어봤으면 좋겠다. 그곳에도 음악이 있다. 당신에게 선택된 음악은 아닐지라도, 예기치 못한 감흥이 당신에게 배달될지도 모른다.

게다가 청취자의 사연은 우리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 소설이나 에세이 한 편을 읽는 듯한 꽤 기분 좋은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나와 다른 세계에 머무는 이가 어떠한 형태로 살아가고 있는지 분명 당신은 궁금해하고 있다. 그래서 독서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다가 라디오의 사연은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다. 라디오의 작가들은 아무 사연이나 막 선택하지 않으므로, 꽤 극적이고 흥미로운 이야기가 흘러나올 것이다.


그러니 속는 셈, 쳐보는 건 어떨까?


라디오를 듣는 시간에 관해 언급했을 때 ‘누가 요즘 라디오를 듣느냐’라며 매우 촌스러운 사람 취급을 당했던 적이 있다. 그런데 말이다. 진짜 촌스러운 건 다름 아닌 ‘편견’이다. 스스로 쳐 놓은 울타리만이 지구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분명 외계인일 것이다. 외계인 주제에, 감히!


라디오가 전해주는 추억을 먹으며 우린 그렇게 자라고 있다. 우리의 취미 덕에 우리는 지구인이자 우주인으로 업그레이드되고 있다. 아무것도 아닌 듯한 취미가 우릴 ―아무도 모르는 새에― 조금씩 성장시켜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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