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외편. 취미가 되지 못한 것들(2)

미디 작곡, 내 것이 아니라 네 것이었구나?

by 웅숭깊은 라쌤

<혼자서도 잘 놀아요-인프피 그 남자의 은밀한 취미생활>

번외편. 취미가 되지 못한 것들


(2) 미디 작곡, 내 것이 아니라 네 것이었구나?

그러니까 때는 2011년. <슈퍼스타K>와 <위대한 탄생>에 밀려버렸지만, 다시 한번 옛 명성을 되찾으려는 시도가 있었으니, MBC <대학가요제>에 대한 이야기이다. 익스의 ‘잘 부탁드립니다’라는 노래가 세간의 주목을 받긴 했지만, 너무 잠시뿐이었다. 아마도 그게 마지막이지 않았나 싶다. 여하튼 나와 친구들은 대학 4학년을 마무리하며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추억을 쌓기로 했다. 우리 팀의 이름은 ‘광어회’. 빛날 광光, 말씀 어漁. 우리가 하는 말은 모두 빛이 되는 말이라는 의미로 지은 ―정말 진지한 마음으로 지은― 팀 이름이었다. (이 모임은 여전히 가장 끈끈한 모임이다.)

대학가요제에 참가하려면 반드시 자작곡이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 팀에서 작곡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나도 해본 적이 있던 건 아니지만, 어릴 때부터 피아노를 쳤다는 이유로 자진해서 곡을 쓰기로 했다. 아마 나도 해보고 싶었던 게 아닐까. 여기저기 발품을 팔아 곡 만드는 방법을 알아낸다. 이것이 바로 ‘미디 작곡’. 키보드를 연결해서 연주와 동시에 작곡을 할 수도 있지만, 그냥 컴퓨터로 음을 하나하나 찍어낼 수 있었다. 그런데 너무 복잡했다. 악기의 종류가 수만 가지가 넘었고, 그 안에서 내가 원하는 소리를 찾아내는 과정이 순탄치가 않았다. 최종적으로 만들어진 결과물은 100%는 아니었지만, 나름 만족스럽기는 했다. 악기 소리가 별로여도 멜로디는 마음에 드는, 그러니까 리코더로 불어도 모차르트는 모차르트이지 않겠나. 더군다나 유진, 영진 두 친구가 워낙 실력이 뛰어나 곡 자체의 부족함을 메워 주기도 했다. 그렇게 희대의 명곡, ‘남겨둔 말’이 탄생한다.


1차 예심은 음원 평가인데, 간단한 소개와 함께 만든 곡을 메일로 전송하기만 하면 되었다. 사실 기대를 안 해서 잊고 있었다. 그저 시도했다는 것 자체만으로 만족한 상태였달까. 그런데 2주 정도 지났을까, MBC로부터 연락이 왔다. 연락의 내용은 ‘1차 합격’. 우리 팀은 정식으로 여의도 MBC에 초대받았다. 2차 예심 참가라는 명목으로.

2차 예심을 통과하여 본선까지 진출했다면 아마 미디 작곡은 여전히 내 취미, 어쩌면 작곡가가 아예 내 직업이 되었을지도. 당신의 예상대로 2차 예심에서 우린 처참히 짓밟혔다. 정말 자존심이 상했다.

2차 예심의 심사위원들은 음악과 관련된 사람들이 아니었다. 모두 MBC 예능 PD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당시 MBC를 대표하던 <무한도전>, <황금어장> 등 이름만 들어도 알 법한 그 PD분들이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무대를 마쳤는데 이상하게도 그들은, 우리의 무대를 본 후 음악적 평가를 하지 않았다. 그저 우리의 스타성, 스타일, 뭐 이런 것들만 평가하고 있었다. 차라리 음악이 별로라고 하지…. 우린 음악으로 승부하고 싶었는데!

당신도 알다시피 그해 <대학가요제>는 과거의 명성을 되찾지 못했다. 난 그냥 이렇게 생각한다. 이게 다 우릴 떨어뜨렸기 때문이야, 라고. 여하튼 그날 이후 미디 작곡 프로그램은 아예 컴퓨터에서 지워버렸다. 내 길이 아님을 알아서인지, 상처가 깊어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꼴도 보기 싫었다.


그나저나, 중학생이던 동생이 내가 띵띵 거리는 소리에 관심을 갖더니만 이때부터 아예 작곡가로 진로를 틀게 되었다. 동생에게 꿈을 갖게 해주기 위해 누군가가 날 이용했던 걸까?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참 재미난 우리네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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