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보통의 레시피 - 소박한 식탁 위 발칙한 잡담들
힌두교 신화에는 정말 많은 신들이 등장하지만, 그중 세상을 창조하는 신 브라흐마, 세상을 유지하는 신 비슈누, 그리고 세상을 파괴하는 신 시바, 이렇게 세 신이 가장 중요한 존재로 여겨진다. 그런데 조금 독특하게도 세상을 유지하는 역할을 맡고 있던 비슈누가 만물 창조에 개입한 적이 있었으니, ‘우유의 바다 휘젓기’라는 인도의 창조 신화이다.
태초에 선한 신 ‘데바’와 악한 신 ‘아수라’라는 집단은 지속적인 전쟁을 벌여오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데바들의 우두머리인 ‘인드라’가 성인 중 한 명인 ‘두루바사스’를 우연히 만났는데, 인드라가 실수로 두루바사스가 전한 꽃다발을 땅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게다가 인드라가 타고 있던 코끼리가 꽃다발을 짓밟기까지 하여 순간 화가 난 두루바사스는 인드라에게 저주를 걸어버린다.
“내 성의를 무시하다니! 당신과 당신을 따르는 모든 신들은 힘을 잃게 될 것이오!”
그의 저주가 통했는지 데바는 자꾸만 아수라에게 패배를 거듭했다. 인드라를 비롯한 데바들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위대한 신 비슈누를 찾아간다. 비슈누는,
“우유의 바다를 휘저으면 암리타를 얻을 수 있다. 그걸 마시면 불로장생의 힘을 얻을 것이다.”
라고 말했다. 역설적이게도, 데바들끼리만 우유의 바다를 휘젓기엔 무리가 있었으므로 그들의 적인 아수라와 힘을 합쳐 ―공평하게 나누어 마시자는 약속을 하고선― 암리타를 얻기 위한 휘젓기에 돌입한다. 휘젓기는 무려 천 년 동안이나 이어졌는데, 신들의 의사로 알려진 ‘단반타리’가 암리타를 들고 나타나자마자 데바와 아수라는 ―역시나― 동맹을 파기하고 암리타를 독차지하기 위한 싸움을 벌였다. 그 싸움의 승리는 아수라의 몫이었는데, 그때 비슈누는 아름다운 여인 모히니로 변신하여 아수라를 유혹한 뒤 암리타를 빼앗아 다시 선한 신들에게 나눠주었다.
우유의 바다를 휘젓는 천년의 세월 동안 바다에선 수많은 새로운 존재들이 탄생하였는데, 그중 하나가 비슈누의 부인이자 부와 행운의 여신 ‘락슈미’이다. 락슈미와 관련한 여러 전설과 일화들이 있지만, 여기서 언급하고자 하는 것은 ‘바질’과 관련한 부분이다. 락슈미가 지상에서의 육체를 버리고 천상계로 승천할 때 그녀의 육체가 부패하여 간다크강이 되었고 그녀의 머리카락은, 바질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인도에서는 60가지 바질의 품종 중 하나인 ‘홀리 바질’을 성스러운 약용 식물로 아주 귀하게 여기고 있다. 바질은 면역력과 눈 건강 증진, 피부 노화 방지, 심신 안정화, 골밀도 강화 등의 효능도 지니고 있다고 하니 그야말로 신이 인간 세상을 떠나며 남기고 간 축복 가득한 선물이지 않은가! 참 멀리 돌아오긴 했지만, 결국 바질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바질이 가진, 위대함에 관하여!
인도뿐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에서 신성하고 건강한 재료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바질은 역시나 페스토로 만들어 먹는 게 제맛이다.
페스토는 원래 ‘빻다’라는 말에서 기원했으므로 정통 페스토는 절구에 재료를 넣고 직접 빻아주어야 하지만, 절구가 있을 리 없잖아? 대신 최첨단 머신, 블렌더에 넣고 갈면 아주 쉽게 뚝딱 완성된다. 바질 한 줌, 마늘 두 알, 올리브오일, 소금과 치즈 가루를 넣어주는데, 여기에 잣을 넣어주면 좋겠지만 잣은 상당히 비싼 재료이므로 대신 호두를 넣는 게 ―우리 집에선― 대세이다. 물론 캐슈너트나 아몬드, 다른 견과류도 가능! 넣는 재료의 양은 기호에 따라 조절할 수 있을 듯하다. 나도 처음 만들어본 뒤부터 마늘은 한 알만 넣고 있다. 잠깐, 마늘을 덜 먹어서 아직 인간이 못된 건가? 여하튼 완성된 페스토는 색이 아주 고와 보고만 있어도 흐뭇해지며, 바질의 향긋함이 은은하게 피어올라 코끝을 건드리며 식욕을 돋우기도 한다.
바질 페스토로 만든 음식엔 꼭 ‘바질 페스토’라는 표현이 앞에 덧붙는다. 바질 페스토 파스타, 바질 페스토 리조또, 바질 페스토 샌드위치 등등. 당신은 어처구니없다고 여길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바질 페스토는 밥에 크게 한 숟갈 넣어 같이 볶았을 때나 고추장 삼겹살 한 점에 듬뿍 얹어 먹을 때 가장 맛있다. 특히 삼겹살과는 쌉싸름하고 상큼한 맛이 어쩌면 그렇게 잘 어울리는지, 쌈 채소가 따로 필요 없을 정도다. 물론 이건 취향 차이니까 날 너무 이상하게 보지 말아줘! 혹시 알아? 바질 페스토 고추장 삼겹살이 유명 레스토랑 신메뉴로 등장하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라니까?
어디에 등장하든 늘 주연으로 빛나는 존재감이, 어디에나 잘 어울리고 쉽게 녹아드는 유연함이, 바질에게 있다. 게다가 건강까지 선사하니 그야말로 축복이 아닐 수 없는 신의 선물, 바질.
내 덕에 당신은 이제 바질 페스토를 곁들인 어떤 음식을 먹을 때마다 락슈미 여신의 축복을 느끼게 될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니까? 세상 모든 지구인을 위하여 ―특히 당신을 위하여― 더욱 치열하게 탐구하고 헤매일 테니, 당신은 당신의 삶이 축복임을 기억해주길. 나라는 존재가 신이 당신에게 전한 축복이라는 것도, 당신이 얼른 알아야 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