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웅숭깊은 라쌤 Nov 01. 2023

오이처럼 냉정할 수 있을까 – 오이 크래미 마요 무침

가장 보통의 레시피 - 소박한 식탁 위 발칙한 잡담들

 영어에는 ‘as cool as a cucumber’라는 속어가 있다. 오이처럼 차갑다, 혹은 냉정하다는 의미인데 오이 속 온도가 바깥보다 20도 이상 낮아서 이러한 표현이 탄생했다고 한다. 오이는 아삭한 식감에 시원한 맛까지 있어서 전 세계 지구인들 ―특히 등산인들―이 즐겨 먹는 채소이다. 그런데 반대로 오이를 못 먹어서 냉면이나 짜장면 같은 음식을 주문할 때마다 ‘오이 빼주세요’라는 요청을 하는 지구인들도 있다. 심지어 지인 중에는 오이를 못 먹어서 친해지고, 결국 커플이 된 이들도 있을 정도다. 오이가 맺어준 인연인 건가?

 그러고 보면 세상 모든 사랑은 기적이다. 80억 지구인 중 단 두 사람이 만나 사랑을 나눌 수 있다니! 친구를 만들 땐 제한된 범위나 한계가 없다. 그렇지만 연인은 단 한 사람이어야 한다. 80억 명 중 단 한 명만을 사랑해야 한다! 이러한 사랑이 정말 위대한 감정임을 알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사랑이 이어지는 가운데 종종 필요한 태도 중 하나는 ‘냉정함’이다. 가끔 우린, 오이처럼 차가워져야 할 때가 있다.     


 예를 들어 이런 것이다. 오이처럼 식어버린 상대에게 끝까지 매달리며 사랑을 갈구하는 것만큼 지치고 괴로운 일이 없다. 그럴 땐 상대가 그러하듯 나 역시 오이가 되어야 하는데 단칼에 끊어내는 건 좀처럼 쉽지 않다. 자존심이나 체면 때문인지, 아니면 자존심이나 체면이 전혀 발동하지 않아서인지 모르겠으나 냉정함을 갖지 못하고 매달리거나 애원하는 일이 발생해버린다. 뜨거운 사랑이란 표현은 있지만 ―보통 사랑이 식었다는 식으로 표현하지― ‘차가운 사랑’이라고는 하지 않는데, 열정적인 사랑은 쉽사리 포기할 수 없는 선물과도 같기에 지구인들은 좀처럼 오이가 되질 못하는가 보다.

 냉정함은 굉장히 긍정적인 의미로 작용하기도 한다. 평소 화가 많은 편인 나라는 지구인에게 꼭 필요한 말이기도 하다. 괜히 흥분해서 잔뜩 신경질을 내며 주변인을 불편하게 만들기 일쑤인데, 창피하게도 그런 언행을 일삼고 난 날 밤이 되면 좀처럼 잠이 오질 않는다. 꼭 그래야만 했을까, 하는 괴로움에 휩싸여 ‘이불킥을 시전하게’ 된다. 이불에 구멍이 날 지경이다. 그렇기에 때론 머리를 식혀줄 냉정함이 우리에게 ―특히 나에게― 필요하단 것이다. 이불을, 버릴 수는 없으니.     


 이렇듯 냉정함이란 사랑에만 국한되는 태도는 아니다. 인간관계에 있어서 혹은 난해한 삶의 단면을 마주함에 있어서 우리는 줄곧 오이의 외침을 들어야만 한다.      


 “나보다 차가울 자신이 있어?”      


 자신이 없었으므로, 혹시나 오이가 될 수 있을까 하여 오이 크래미 마요 무침을 해보았다. 원래 오이는 생으로 고추장 찍어 먹는 게 제일이지만, 그래도 조금은 특별한 반찬을 만들고 싶었는가 보다.

 오이를 써는 방법은 정해지지 않았다. 길쭉하게 채를 썰어도 되고, 동그랗게 편을 썰어도 된다. 이래도 오이, 저래도 오이일 뿐. 다만 소금에 절여 물기를 제거하는 과정은 아무래도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될 듯하다. 그래야 아삭아삭한 식감이 유지되고 나중에 간이 변하는 일도 없을 테니까. 크래미도 먹기 좋게 잘게 찢어주고, 마요네즈와 설탕을 넣어 같이 버무려주면 완성. 역시나 오이가 들어가서인지 상큼한 맛이 제격이었다. 

 그런데 오이를 먹으니! 희한하게 정말 오이가 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을리 없잖아. 오이 먹는다고 오이가 되면 돼지를 먹으면 돼지가 되겠……. 될 수도 있겠구나. 그렇지만 어쨌든 오이는 씹어 먹으면 그뿐, 오이가 되진 않았다. 여전히 난, 아무리 오이를 먹어도 냉정하지 못한 한심한 지구인일 뿐이었다.

뭐랑 무쳐도 다 어울리는 오이의 매력

 더는 한심하고 싶지 않았던 난 다시 냉장고를 열어 오이 크래미 마요 무침을 꺼내 입 안 가득 욱여넣고 와그작와그작 씹어먹었다. 그리고 천천히, 냉정함에 관해 고찰을 시작했다. ‘냉정’이란 단어를 좀 더 쉽게 이해할 순 없을까? 당연히 있지! 왜 없어! 당신에게만 알려주는 팁인데, 특정 단어의 의미를 깊이 파고들고 싶을 땐 그 단어의 반의어를 활용하면 된다. 냉정의 반의어, 열정.

 냉정과 열정을 함께 두고 보니 그 이해가 좀 더 쉬워졌다. 냉정과 열정을 다른 말로 바꾸면 결국 ‘이성’과 ‘감성’이었고, 이성적인 인간도 있고 감성적인 인간도 있다는 사실을 연이어 떠올리게 되었으니……. 그랬다! 나는 틀린 게 아니었다! 굳이 냉정함을 갖추고자 노력할 필요가 없음을, 비로소, 깨달은 것이다!

 나의 과잉 감정으로 인해 피해를 보는 이들이 생긴다면 그것은 늘 고치려 애써야겠으나 감성적이므로 난, 위로나 공감을 잘하는 편이다. 당신이 어떤 문제를 겪고 있을 때 문제의 해결책을 제시해주긴 힘이 들진 몰라도 난, 당신 편에 서서 함께 싸워줄 힘은 넘치게 가지고 있다. 조금씩 잘못된 부분을 고쳐나가면 그뿐, 굳이 오이가 되려 애쓸 필요는 없었다. 다른 성향은 있어도 틀린 성향은 없다고나 할까? 세상엔 이런 사람도 있어야 하고 저런 사람도 있어야 한다. 그래야 서로가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며 온전히 하나가 되는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법이겠지.     


 물론 오이가 될 필요가 없음을 깨달았다고 하여 앞으로 오이를 멀리하거나 하진 않을 것이다. 오이의 냉정함은 ―적어도 나에겐―과한 열정을 식혀주기 딱 알맞으므로. 대신 냉정한 오이보단,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되어 지구인 모두의 행복에 기여하고 싶다. 냉정함만 가득한 지구는 존속되지 못할 테니까. 어른이 있어야 아이도 있고, 여자가 있어야 남자도 있고, 문과가 있어야 이과도 있다. 그리고 열정이 있어야만, 냉정도 힘을 발휘할 것이다. 나의 부족함은, 당신이 잘 채워주겠지?     


 그나저나 참, 오이가 의외로 안주로 제격인 건 알고 있었어? 오늘 밤엔 당신과 소박하게, 오이소박이 한 그릇에 냉정과 열정 사이를 오가고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