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보통의 레시피 - 소박한 식탁 위 발칙한 잡담들
나는 감자가 정말 싫었다. 소금이나 설탕이 없으면 완전 맹탕이랄까? 스스로 맛을 내지 못하는 쓸모없는 식재료라 생각해왔다. 게다가, 감자는 너무 못생겼다! 쉽사리 손이 가질 않았다.
외모는 살면서 중요한 요소가 아니라는 입에 발린 소리는 하고 싶지 않다. 누군가를 바라볼 때 외모도 충분히 평가 요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사람마다 판단의 기준은 다른 법일 테니. 나도 분명 상대의 외모를 본다. 그게, 일단은 보기 싫어도 볼 수밖에 없다.
“여자를 볼 때 어딜 먼저 보는 편이야?”
“그거야 당연히 얼굴? 누군지는 확인해야 할 것 아냐!”
그런데, 외모가 ‘전부’라는 인식은 분명 잘못된 것이다. ‘스스로를 못생겼다고 말하는 개그맨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미모의 여성과 결혼을 한다는 건 사회적으로 잘 알려진 사실인데, 외모가 전부였다면 그들 모두 사랑을 포기하고 살았어야 한다. 결국 사랑은, 외모를 뚫고 내면에서 솟아난 그 지구인의 됨됨이, 진심, 이런 것들로 완성되는 게 아닐까. 그리고 알고 보면 외모라는 것은 ‘얼굴 생김새’를 넘어 그 사람의 분위기, 패션 감각, 몸매 등 다양한 요소가 결합한 것이므로 충분히 노력으로 극복 가능한 부분이기도 하다.
게다가 사랑에 빠지면, 그 사람이 세상에서 젤 예쁘고 멋져 보인다. 일단 콩깍지가 씌면 실제 그 사람의 객관적 외모 수준은 판단이 불가능해진달까. 다들 한 번씩은 경험해봤을 것이다. 반대로 누가 봐도 잘생기고 아름다운 그 사람이 내 연인이 된다는 가정을 했을 때 몸서리치게 싫었던 적도 있었을걸?
그러니 혹시나 자신이 못생겼다고 생각하며 좌절하고 있다면, 외모와 사랑받는 것은 별개라는 사실을 기억해줬으면 한다. 다행히 나는 이것을 확실히 깨달았고 그리하여 이제, 감자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잘 알고 있다. 그 깨달음은 다름 아닌 바삭하고 고소한 감자채전을 부쳐 먹은 뒤부터 시작되었다.
감자 껍질을 벗기는 용도로 만들어진 심지어 이름조차 ‘감자칼’인 그 필러를 이용해 못생긴 감자의 허물을 벗겨낸다. 그러고 나면 숨어 있던 매끈하고 뽀얀 살결이 드러날 것이다. 다음 단계에선 새로운 도구, 채칼을 이용해 팔뚝이 끊어져라 감자를 쥐고 위아래로 비벼준다. 비벼준다는 표현이 정확한지는 모르겠으나 왠지 어울리는 느낌이다. 비벼주면 알아서 썰리는 채칼의 위대함! 인간의 역사는 도구의 발전과 그 궤를 함께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언젠간 감자를 넣고 버튼 하나만 누르면 알아서 뚝딱 감자채전이 완성되어 식탁 위에 차려지는 시대도 오겠지? 그때에도 난 요리를 하고 있을까?
여하튼 이제 소금 한 꼬집과 밀가루 반 컵을 넣고 감자채들을 버무려 준다. 사실 감자 자체에 전분이 있어서 딱히 다른 가루를 사용하지 않아도 되고, 밀가루 대신 부침가루나 전분 가루를 넣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제부턴 정말 쉽다. 프라이팬에 감자채를 얇게 펴고 식용유를 넉넉히 부어준 다음 노릇하게 튀기듯 부쳐주는 것이다. 혹시나 더 예쁜 색감이 나오지 않을까 하여 달걀 한 알을 풀어 같이 구워주었는데, 비주얼 장인 블로거분들은 따로 프라이를 하여 채전 위에 올려주는 방식을 많이 사용하고 있었다. 아, 아예 치즈를 왕창 올리는 것도 시도하고 싶은 방법이었다. 맥주 안주로 딱이지 않을까 싶다.
나는 이제 ―콩깍지가 씌었는지― 감자가 참 좋다. 특유의 진한 고소함을 간직하고 있으며 짠맛, 단맛, 신맛, 심지어 매운맛까지 여러 가지 맛과 다 잘 어우러지는 장점마저 지녔다. 특히 튀기고 찌고 굽는 어떤 방식도 다 받아들이는 포용력까지 갖추고 있어 감자 요리는 지구인 누구나 쉽게 즐기는 편이다. 프랑스의 프렌치 프라이, 미국의 매쉬드 포테이토, 이탈리아의 뇨끼, 그리고 강원도의 감자옹심이까지! 그러고 보니 감자의 매력은 그간 나만 모르고 있었구나? 나만 못생겼다며 괜한 선입견으로 감자를 멀리하고 있던 거구나?
당신이 혹시라도 지금 당신의 외모에 불만족스럽다면, 당신이 가진 다양한 매력을 뽐내기 위해 애써보는 건 어떨까? 이 지구에 태어난 어떤 생명체도 다 사랑받을 자격이 있고 그럴 능력이 있으므로, 당신 역시 그러할 것이다. 콩깍지에 단단히 씐 내가 당신을 예뻐해 줄 테니 외모 걱정은 아주 잠시, 잠시면 충분해!
그리고 반대로 나태주 시인께서 감자, 아니 <풀꽃>이란 시를 통해 말씀하셨듯 세상 모든 것들을 바라볼 때 ―나와는 달리― 좀 더 자세히 보고, 오래 보았으면 좋겠다. 선입견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당신을 둘러싼 세상은 온통 아름다운 것들로 가득할 테니까.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 나태주, <풀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