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보통의 레시피 - 소박한 식탁 위 발칙한 잡담들
강원도 산골짜기에서 농사를 짓는 사촌 형님께선 명절 즈음이면 한가득 표고버섯을 보내주신다. 이 표고는 들기름에 구워 소금만 살짝 뿌려 먹어도 맛이 일품이다. 그런데 여기에 일등급한우 차돌박이를 함께 구워내면 어떨까? 그야말로 끝판왕 수준의 음식이 마련된다. 표고버섯 우린 물로 밥을 지어 표고버섯 밥을 만드는 건 또 어떻고! 버섯의 진한 향이 당신이 머무는 공간을 강원도 산골의 평화로운 숲속으로 이끌지도 모른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우리나라엔 유독 버섯을 넣어 끓인 백숙 요리 집이 많은 듯하다. 산지가 많은 우리나라의 버섯 맛이야 모르면 간첩, 아니 간첩들도 버섯 맛은 잘 알고 있을 테니 모르면 외계인? 버섯과 닭 육수가 진하게 우러난 국물 한 숟갈을 뜨면 아무리 힘이 센 동장군도 겁이 나서 도망갈 정도이니, 사람들이 많이 찾는 이유가 있겠지. 그런데 말이다. 산골짜기에선 왜 이 좋은 버섯으로 리소토를 만들어 먹지는 않는 걸까? 너무 엉뚱한 이야기인가? 버섯 리소토도 크게 떠서 한입 가득 채우고 나면 건강은 물론 세련되고 그윽한 풍미까지 작렬할 텐데!
정말이지 낯설고도 어색한 강원도와 이태리의 만남. 표고버섯 리소토로 이 난관을 금세 극복할 수 있다. 그 첫 단계, 리소토용 쌀 준비! 유럽에서 쌀 재배가 가장 활발히 이뤄지는 이탈리아 내에서도 카르나롤리 쌀은 그 품질이 가장 우수한 것으로 평가받는데, 질감이 단단한 편이라 리소토용으로 매우 적합한 제품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이 카르나롤리도 인터넷에 검색하면 순식간에 우리 집 문 앞에 배송되어 온다.
다음 단계는 한쪽에선 치킨 스톡을 풀어 닭 육수를 만들어주고, 다른 한쪽에선 잘게 썬 표고버섯을 올리브유에 볶아주는 것이다. 버섯 색이 진하게 변하면 잠시 그 팬은 빼주고, 다른 팬에 버터를 넣고 양파와 마늘을 볶다가 카르나롤리 쌀을 두 주먹 넣어준다. 당연히 이건 2인분 양이지. 당신과 함께 먹을 리소토니까. 화이트 와인을 넣고 저어주다가 중간중간 치킨 스톡을 한 국자씩 넣어주면 매우 크리미한 리소토가 구현되기 시작할 것이다. 단, 젓는 행위와의 사투가 벌어져야만 한다. 금방 타기도 하고, 이걸 방지하기 위해 한꺼번에 많은 육수를 넣으면 그건 쌀을 볶는 게 아니라 삶는 것이 되어 버릴 수 있으므로.
마지막 단계. 쌀이 어느 정도 익었을 때 아까 볶아놓았던 강원도 산골의 표고버섯을 넣고 한 번 더 볶아주는 것이다. 아주, 살짝만. 버터와 치즈까지 넣어주면 비로소 정성 가득한 표고버섯 리소토 완성이다. 아, 아예 리소토 위에 슬라이스한 표고버섯 조각들을 올려버리자. ‘나 표고버섯 리소토에요’하고 당당히 말하듯, 그렇게.
내 인생에 새로운 목표가 하나 생겼다. 강원도 산골짜기에 버섯 크림 리소토 전문점을 차리는 것. 수요일엔 재료 준비, 그리고 목요일부터 토요일까지만 영업하는 주 3일제 특별한 식당이다. 나머지 요일은? 놀아야지! 산골이라 손님 걱정되지 않느냐고? 맛있으면 다들 찾아오기 마련이다. 3일 장사해서 돈이나 벌겠냐고? 돈 벌려고 장사하려는 게 아니다. 아니, 그 전에 많이 벌어 놓을 테다! 산골 생활이 불편하지 않겠냐고? 어차피 쓱 하고 오는 배송도 있고 로켓처럼 배송하는 회사도 있으니 전혀 걱정되지 않는다. 모든 걸 다 떠나서, 내 곁엔 소중한 당신이 있을 텐데!
반대로 이태리 밀라노의 화려한 번화가에서 각종 버섯을 넣어 끓인 진하디진한 국물의 닭백숙도 팔아보고 싶다. 산에서 직접 캔 나물 반찬을 늘어놓고 겉절이와 양념장까지 한 상 가득하게.
“Buono, buono.”
“Delizioso!”
어디선가 수염 난 이태리 미식가들의 감탄사가 들려오는 것만 같다. 그리고 이건 허무맹랑한 상상에 지나지 않는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다. 이제, 지구는 하나가 되었으니까!
당신도 알 것이다. 지구는 오직 지구일 뿐, 지구 표면에 그어진 경계는 조금씩 무너지고 있다는 것을. 급격한 기술 발전으로 인해 각국의 문화는 매우 빠른 속도로 전파되며 지구인 모두를 하나로 이어주고 있다. 서로의 문화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더 풍요로운 지구를 만들고 있는 셈. 그리고 이건, 그래야만 한다! 더는 서로와 서로를 구분 지으며 굳이 다른 점을 부각할 필요는 없다. 우린 모두 하나! 지구촌! We are the world!
지구에 점과 점을 잇는 선이 굳이 필요하다면, 그건 둘로 쪼개는 경계선이 아닌 지구인들을 하나로 묶는 ‘연결선’이었으면 좋겠다. 강원도 산골에서 채취한 표고버섯으로 만든 이태리 음식, 표고버섯 리소토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