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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웅숭깊은 라쌤 Oct 26. 2023

졸인 걸 튀기면 얼마나 더 맛있게? - 연근조림튀김

가장 보통의 레시피 - 소박한 식탁 위 발칙한 잡담들

 대한민국 어느 동네나 해당 지역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저렴한 값에 판매하는 마트가 있다. 신선한 채소를 구하기 쉬워서 한 번 들르면 이것저것 담느라 바빠진다. 물론 단점도 있는데, 내가 원하는 종류가 없을 때가 많다는 점이다. 지역 농민분들이 재배하는 채소들 위주로 진열되기에 주로 보편적인 종류만 보게 되곤 한다.

 어느 날, 그간 보지 못했던 ―마치 내 허벅지처럼 생긴― 길쭉하고 못생긴 녀석들이 진열장에 채워지고 있었는데 농민분께서는 일을 마치신 후 주머니에서 을 꺼내 상품명을 ‘연근’이라고 쓰셨다. 아, 연근은 저렇게 생겼구나. 연근이라고 하면 주로 잘린 단면이 이미지로 떠올랐기에 굉장히 낯설고 신선한 만남이었다. 이것도 인연인데, 담아! 가득 담아!

 지구인들이 식재료 구매에 있어 합리적인 소비를 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 유통기한! 냉장고가 아무리 애를 써도 오래 묵힌 재료들은 썩어버리기 마련이니까. 그래서 해당 식품의 유통기한이 임박하면 얼른 ‘냉털’을 해야 한다. 그리고 한동안 방치해 두었던 연근 두 덩어리가 눈에 들어왔으니, 잘 손질된 것들만 사용하다 덩어리째 놓인 녀석을 그간 손도 못 대고 있던 탓이었다. 별 수 있나, 잘 손질해서 와구와구 먹어줘야지!     


 연근을 졸였다. 다시마 육수와 간장, 물엿을 넣고 한껏 졸여 완성된 최고의 밥반찬. 참고로 연근을 조릴 때 생강을 넣기도 하는데 우리 집엔 잘 없는 재료라 간장조림을 할 땐 대신 팔각 한 알을 넣어주곤 한다. (그런데 이건 왜 있지?) 그러나저러나 한 입 베어 물면 치아 자국이 생길 정도로 부드럽게 씹히는 쫀득함이 있고, ‘단짠단짠’이란 말을 음식으로 형상화하면 곧장 이 음식이 튀어나올 것만 같을 정도로 계속해서 손이 가는 매력까지 지닌 연근조림 덕분에 며칠은 반찬 걱정 없이 보낼 수 있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있었으니! 연근을 많아도 너무 많이 졸인 것이다. 거의 5~6인분의 양을 졸여서 어떻게 다 먹을 작정이었을까. 그래도 뭐, 처음엔 걱정이 없었다. 연근 사냥꾼에게 이 정도는 식은 죽 먹기와도 다르지 않았으니까. 연근은 맛도 맛이지만 체중 감소에 도움을 주는 것은 물론 위장 건강 관리에도 큰 역할을 한다고 하는데 이걸 안 먹고 배겨? 아니, 잠깐만, 그런데, 식은 죽은 맛이 없잖아. 죽은 따뜻해야 제맛인데? 게다가 아무리 맛난 음식도 여러 끼 연속으로 먹다 보면 자연히 질리는 법. 이러다간 연근에게 내가 사냥당할 판이었으니. 해결책을 강구하다 떠오른 비책, ‘신발도 튀기면 맛있다’라는 오래된 전설이 다시 연근에게 손을 내밀게 했다. 그래, 난 연근을 쉽게 포기할 수 없어!      


 냉장고 구석에 숨어 있던 연근조림을 꺼내 물에 살짝 헹궈주었다. (굳이 헹궈주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튀김가루와 물을 1:1 비율로 섞어 반죽 물 만들어주기. 죄다 담가! 연근 전원 입수! 제군들, 반죽 물은 제대로 입었나? 아주 만족스럽군. 그렇다면 뜨겁게 온도가 오른 기름에 이번엔 입유 入油! 튀김옷만 익혀지면 되니 아주 금세 꺼내주도록 하지. 들리는가? 아름답게 튀겨지는 소리가!     

침 꿀꺽 연근 조림 튀김

 완성된 연근조림 튀김? 아니 이건 졸인 연근 튀김? 여하튼 이 튀김을 꺼내 늘어놓으니 정말이지 아주 먹음직스러웠다. 간장에 졸여져 까만 연근에 튀김옷을 입혀 놓아 그간 보지 못한 색다른 비주얼이 시각을 통해 입맛을 자극하는 듯했다. 실제로 한 입 베어 물었을 땐 밥이 생각나기도, 맥주가 생각나기도 했으니 그야말로 일석이조, 일거양득,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짭짤한 맛과 ‘겉바속촉’ 식감이 환상적으로 어우러졌다. 연근은 지루함 없이 오랜 시간 내 끼니를 책임져주었다.     


 식품에 유통기한이 있듯 사랑에도 유효기간이 있다고들 한다. 아마 이걸 ‘권태기’라고들 하지? 그런데, 사랑은 분명 다르다. 아무리 좋은 것도 지루하게 반복되면 결국 지쳐서 질리게 되겠지만, 이건 상대에 대한 배려와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다. 유효기간 없는 사랑을 추구할 수 있단 말이다!

 여기서 난 당신에게 변화를 요구하려는 게 아니다. 나의, 변화를, 그러니까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구나, 하는 결심을 한 것이다. 상대가 권태를 느낀다고 하여 그걸 상대에게 책임을 돌려서는 안 된단 말이다!

 전적으로 내 탓이라고 ―논리적으로 따지고 들면 할 말이 없지만― 그냥, 그렇게 여겨보는 건 어떨까?      

 건강 관리를 해서 튀어나온 뱃살 빼기,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새로운 취미 갖기, 상대가 좋아하는 영화나 음식 같이 즐기기, 뭐 이런 것들. 족히 시도해볼 만한 변화이다.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죽는다는 말도 있지만, 어차피 사람은 사랑이 소멸되면 죽는다. 사랑 없이는, 지구인은 살아낼 수 없다. 가톨릭 성가 46번 <사랑의 송가>에도 이런 가사가 있지 않은가.     


 “사랑 없이는 소용이 없고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렇다! 우리에겐 사랑이 필요하고, 사랑을 갈구해야 하며, 사랑 없이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리란 걸 생각하며,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한 노력을 하자. 간장에 졸여진 난 지금도 당신에게 충분히 매력 넘치는 사람이지만, 언젠가 당신이 날 지루해할 때쯤이면 튀김옷을 입고 더욱 당신을 홀릴 작정이다. 각오하는 게 좋을걸? 나한테서 끝까지 헤어 나올 수 없을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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