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보통의 레시피 - 소박한 식탁 위 발칙한 잡담들
커리를 좋아한다. 3분 만에 뚝딱 만들어 먹는 카레는 그다지 즐기지 않지만, 인도식 커리는 정말이지 포기할 수가 없다. 미슐랭 가이드에서 별 세 개를 받은 식당은 ‘요리가 훌륭하여 음식을 맛보기 위한 목적으로 여행을 떠날 수 있는 곳’이란 의미를 지닌다고 하는데, 인도 커리 맛집으로 알려진 곳을 일부러 찾아가는 걸 보면 내게 인도 커리 맛집은 미슐랭 3스타의 의미를 지녔다고 할 수 있겠다. 양고기 머튼 마샬라는 새콤하고 매콤한 향신료가 어우러져 양고기의 맛이 더욱더 진하게 느껴진다. 치즈와 시금치로 맛을 낸 팔락 파니르는 깊고도 건강한 맛이 느껴져 역시나 추천할만한 메뉴다. 인도 커리 전문점으로 지금 당장, 가고 싶다!
돈과 시간에 늘 여유가 있는 건 아니었으므로 집에서 흉내를 내기 위해 무진장 애를 쓰곤 했다. 온갖 재료들을 배합하여 여러 번의 실패 끝에 ―유튜버들의 힘을 빌려― 비로소 완성된 진짜 커리. 이름하여, 인도식 버터 치킨커리!
큐브 형태로 썬 닭가슴살을 커리 가루, 소금, 간 마늘에 버무린다. 잠시 숙성했다가 팬에 겉면이 익을 정도로 구워준 다음 잠시 볼에 꺼내두는데, 팬에 눌어붙은 양념이 거슬릴 수가 있지만 사실 그게 핵심이다. 그 팬에 그대로 양파와 토마토, 견과류와 버터, 물을 넣고 바닥을 긁어가며 끓여주면 감칠맛이 제대로 구현될 수 있다. 적당히 끓으면 여기에 각종 향신료를 추가하는데, 가람 마살라와 칠리파우더 등 인도 커리 맛의 핵심인 재료들을 꼭 넣어주어야 한다. 기호에 따라 생크림을 넣기도 하지만 집에 없어서 대신 코코넛 밀크를 추가했다. 생크림은 없는데 코코넛 밀크가 찬장에 있는 이유는? 가끔 찬장을 열어보면 이렇게 생각지도 못한 재료들이 등장하곤 한다. 여하튼 그렇게 한소끔 끓여준 다음 핸드 블랜더로 몽땅 잘 갈아주면 우리가 아는 인도 커리의 모습이 비로소 갖춰진다. 아, 채에 한 번 걸러주면 토마토 껍질 같은 건더기들이 걸리므로 부드러운 커리를 위해선 필요한 작업이다. 마지막으로 미리 살짝 구워둔 닭가슴살을 다시 넣고 닭이 익을 때까지 끓여주면 된다. 물론 인도 커리 전문점 맛에는 한참 못 미치지만 그래도 흉내 정도는 낼 수 있었다. 다음엔 양고기나 소고기로도 도전해볼 생각이다.
그나저나 커리를 먹으면서 꼭 생각나는 게 있다면? 흰 쌀밥? 당연하다. 커리는 밥에 비벼 먹을 때가 제일 맛있다. 난은 어떨까? 인도 커리와 단짝인 난을 버터에 구워 함께 먹는 것도 역시나 빼놓을 수 없지. 그런데 그것 말고, 커리 한 숟갈을 뜨면 곧장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멜로디가 있지 않나? 재미난 가사와 신나는 가락으로 2010년부터 줄곧 사랑받고 있는 그 노래, 노라조의 <카레>!
노랗고 매콤하고 향기롭지는 않지만 타지마할
양파넣고 감자넣고 소고기는 넣지않아 나마스테
아아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르는 이 맛은
왼손으로 비비지말고 오른손으로 돌려먹어라 롸잇 나우
바삭바삭 치킨 카레도 바쁘다면 즉석 카레도 오 땡큐 땡큐
샨티 샨티 카레 카레야 완전 좋아 아 레알 좋아
샨티 샨티 요가 화이야 핫 뜨거운 카레가 좋아
인도 인도 인도 사이다
-노라조, <카레> 중
카레만 보면 가장 먼저 연상되는 것이 그들의 노래라면, 그리고 내가 그들이라면, 너무도 영광스러울 것만 같다. 사실 대단한 노래이긴 하다. 가만히 있어도 조빈과 이혁의 목소리가 절로 음성 지원이 될 정도이니, 그들의 영향력은 10년 넘게 대한민국을 뒤흔들 정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않을까?
음성 지원이라. 누군가의 목소리가 타인에게 기억된다는 건 어찌 보면 참 부럽기도, 부끄럽기도 한 일이다. 그 목소리가 추억이나 사랑, 축복과 같은 의미로 기억된다면 이루 말할 수 없이 기쁠 테지만 아픔이나 슬픔, 악몽과도 같은 부정적 의미로, 기억되기 싫은 의미로 전해진다면 얼마나 고통스러우며 후회가 될까.
하필이면, 어릴 때부터 남다른 이름 덕분에 사람들은 나라는 존재를 잘 기억했다. 이건 역시나 좋으면서도, 불편하기도 했다. 나라는 존재가 완벽하지 않았으므로. 아니 사실 완벽하지 않다, 정도가 아니라 참 부족하고 때론 미움을 유발하는 나쁜 이름이기도 했다. 어쩌면 이건 지금도, 그럴지도 모른다.
카레, 그러니까 인도 버터 치킨커리를 먹는다는 건 삶을 차근차근 돌아보는 행위이기도 하다. 지난 삶의 과오들을 떠올리며 한없이 반성할 수 있었으니까, 조금이라도 더 나은 지구인이 되기 위한 다짐을 할 수 있었으니까. 물론 반성과 다짐 후에도 계속하여 터무니없는 부족함을 뽐내겠지만, 그래도 기왕이면 나의 노력들을 당신이 봐주었으면 좋겠다.
당신에게만큼은 영원토록 좋은 이름, 좋은 목소리, 좋은 영혼으로 남고 싶은 나의 간절함을 헤아려주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