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보통의 레시피 - 소박한 식탁 위 발칙한 잡담들
돈을 벌고 싶다. 그것도, 엄청 많이!
난 정말이지 부자가 되고 싶다. 마음이 부자이면 괜찮은 삶이라고 하지만, 현실은 언제나 고달프고, 잔인하며, 가끔은 정말 리셋에 대한 열망이 들기도 하지 않은가. 고작 돈 몇 푼에 이런 생각까지 한다는 게 참 가슴 아픈 일이긴 하지만, 이러한 열망이 피어난 덕분에 가슴 한구석에 숨어있던 심지엔 불이 제대로 붙었고 이제 내 삶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난 한시도 허투루 쓰지 않는다. 삶의 모든 장면을 공허하게 비워두는 법이 없다. 그래서 지금도 퇴근 후에 쓴 커피를 마셔가며 잠을 쫓아가며 글을 쓰고 있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를 위하여!
Football Manager라는 악마의 게임이 있다. 그리고 나는 이 악마의 노예로 10년을 넘게 보냈다. 심지어 직장을 갖게 된 이후에도 틈만 나면 게임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축구 감독이 되어 선수를 영입하고 전술을 짜 팀을 운영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워낙에 유럽 축구에 관심이 많다 보니 발을 들인 이후 좀처럼 그 발을 뺄 수가 없었다. 잠깐만 해야지, 했는데 반나절이 지나있기 일쑤였고, 다음 날 출근할 준비도 하지 않고 새벽까지 붙들고 있던 적도 있었다. 한심하다고 말하는 자여, 당신의 컴퓨터에 FM을 깔고 한 시간만 해보면 나의 심정이 십분 이해될 것이다. 악마와 맞서 싸우기엔 지구인의 힘은 너무도 미약하다.
사실 지금도 최신 버전의 <FM 2023>이 깔려 있긴 하지만, 절대 이 아이콘을 더블 클릭하지 않는다. 이건 나의 하루를 갉아먹는 못된 악마의 날카로운 이빨임을 깨달았기에, 나의 인내는 유혹을 충분히 잘 이겨내고 있다.
나는 거의 매일 해가 지면 밖으로 나가 달리기를 한다. 당연히 이건 건강을 위해서다. 일주일 중 6일간 술을 퍼마셨던 폐인 같은 삶은 이젠 더는 없다. 젊은 시절 발목 골절로 여전히 관절이 좋진 않지만, 달리다 걷다를 반복하며 매일 조금씩 그 거리를 늘려가고 있다. 달리기만 한 운동이 있을까. 돈도 안 들고, 장소에 구애받지 않으며, 무엇보다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지 않다. 그래서인가, 매일 밤 동네 어르신들은 나의 달리기 메이트가 되어 주신다. 뽕짝을 크게 트는 건 조금 자제해주시면 좋겠으나, 그래도 어둔 밤을 환히 밝히는 소중한 지구인들이 내 주위에 머문다는 건 참 고맙고 행복한 일이다.
당신은 이쯤 되면 어쩌다 그런 전환점을 갖는 게 가능했는지 궁금하겠으나, 나의 전환점은 이제 당신에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이 글을, 당신이 전환점으로 삼으면 되는 것이다!
어느 정도의 부자를 꿈꾸는지도 한번 말해볼까? 그건 바로 규동, 그러니까 소고기덮밥에 올린 소고기의 양이 얼마나 되는지에 달려있다. 1등급 한우 차돌박이를 산처럼 쌓아 규동을 만들 수 있다면, 난 그걸로 족하다.
재료도 많이 필요 없다. 멸치육수에 설탕, 간장, 액젓을 넣고 끓이다가 채 썬 양파를 한가득 부어주고, 양파가 반 정도 투명해지면 소고기를 잔뜩 넣어 육수가 베이게끔 졸여준다. 달걀물을 두르고 익혀줘도 되는데, 뭐 없어도 그만이다. 고기가 산처럼 쌓여있는데 다른 게 뭐가 필요해! 흰 쌀밥 위에 고기와 양파를 덮어주고 달걀노른자와 잘게 썬 대파로 플레이팅. 끝! 밥 한 숟갈에 차돌 두 점을 올려 먹자. 밥보다 고기가 많은 덮밥을 맛보면 부자가 된 기분을 맘껏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난 반드시 부자가 될 것이다. 그런데 그냥 부자는 아니고, 마음조차 뜨뜻한 그런 부자가 되고 싶다. 첫 책을 출간하고 처음 받은 인세를 모조리 복지 단체에 기부했던 초심은 아직 나에게 유효하다. 유효하다 못해 더욱 커지고 있다. 그리고 전환점을 겪은 이후 내 삶엔 새로운 목표가 생겼으니, 그건 온 지구인이 마음껏 소고기를 산처럼 쌓은 덮밥을 맛보게 하는 것이다. 누구도 배고픔에 굶주리지 않고, 추위에 허덕이지 않으며, 아픔에 좌절하지 않는 그런 세상. 내가 진정으로 만들고픈 세상의 참모습이다.
여전히 나는 미약하기에 지구인 모두를 위한 무언가를 할 정도의 능력은 없지만, 나는 알고 있다. 혼자서는 할 수 없지만, 손길은 또 다른 손길이 되고 그 손길은 다시 새로운 곳으로 이어지며 결국 지구 곳곳에 뻗어나가게 된다는 것을.
당신이 궁금해할 비밀, 전환점에 관해 다시 말해보자. 사실 꽤 오랜 시간 나의 의식은 무의식이었다. 슬픔조차도 자취를 감춰가고 있었다. 허나, 수많은 목소리는 결코 날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았다. 미친 듯이 흔들어 무의식을 의식하게 해 주었고, 그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 목소리들은 변함없이 늘 그 자리에 있었다는 걸. 내게 삶에 목적을 던져주는 소중한 존재들이었음에도 그간 나는 왜 눈과 귀를 막아왔던가. 은행에 쌓인 물리적인 크기의 빚보다 훨씬 더 거대한 ‘세상에 대한 빚’을 진 사람임을 이제는 안다. 그래서 더 치열하게 글쓰기를 하는 것이다. 내가 계속하여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그 빚을 갚으라는 누군가의 배려일지도 모른다. 온 힘을 다해 닳아지지 않는 도구처럼 살고자 한다. 나의 언어가 명예를 외치면, 스스로 목청을 뽑을 것이다.
규동, 그러니까 소고기를 산처럼 쌓아 먹는 덮밥을 온 지구인과 함께 나눈다는 꿈. 이 초심을 잊지 않기 위하여 오늘도 나는 새로이 태어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