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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웅숭깊은 라쌤 Nov 24. 2023

미역국을 끓이는 생일날 아침

가장 보통의 레시피 - 소박한 식탁 위 발칙한 잡담들

 참 희한하게도 나와 동생, 그리고 어머니 모두 한 달에 태어났다. 동생은 11월 16일, 나는 24일, 그리고 어머니는 음력 10월 9일생이시다. 그러다 보니 열흘 새에 세 사람의 생일이 모두 모이는 경우도 생기곤 한다. 이럴 땐 그냥 한 방에 세 사람 생일을 몰아서 축하하기도 했다. 

 언제부터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생일의 의미는 축하받는 날이라기보단 한 살 더 먹어야 하는 안타까운 날로 여겨지곤 했다. 하필이면 내 생일은 추운 계절이어서, 이날이 오면 한 해를 잘 마무리하라는 누군가의 메시지로 여겨지기도 하고…… 또 한 해가 가는 건가 씁쓸하기도 하고……. 어릴 때야 생일이 오길 기다리며 올핸 어떤 선물을 받게 될까 기대하기도 했지만, 이젠 괜히 생일임을 알리는 것도 부담스럽고 민망하다. 카카오톡 프로필에서도 생일을 감춰놓은 지 오래다. 그런데 지구인들은 알고 있을까? 사실 생일은 태어난 이를 축하하는 날이 아니란 것을.      


 미역국은 ―간단히 만든다고 마음먹으면― 그리 어려운 음식은 아니다. 마른미역 한 줌을 물에 불려놓고, 불린 미역은 참기름에 버무려 볶아주거나 아예 참기름을 팬에 두르고 곧바로 미역을 볶아주는 방법도 있다. 조개나 관자, 소고기를 먼저 볶아주기도 하는데, 그건 취향에 따라 다를 듯하다. 여하튼 그렇게 미역을 볶다가 물을 부어주고 소금이나 간장, 간 마늘을 넣어 간을 맞춰주면 된다. 그런데 사실 본인이 끓인 미역국은 맛이 없다. 미역국은, 어머니가 끓여준 게 제일 맛있다. 장담하건대 그 아무리 유명한 한식 장인이 온다 한들 우리 어머니 손맛은 절대 따라올 수가 없다.     

 직장이 생기고 부모님의 울타리를 벗어난 뒤, 어머니 생신을 축하드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려는 때마다 어머니는 내게 작은 밀폐용기를 건네주곤 하셨다. 매년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챙겨주는 그 용기엔, 얼린 미역국이 들어있었다. 전복 껍데기를 넣어 오래 끓인 육수에 소고기도 야무지게 듬뿍 넣어 정성껏 만든 그 미역국은 ―심지어 얼려놓았음에도― 세상 그 어느 음식보다 따뜻하고, 포근했다. 생일 아침을 여는 첫 끼니가 미역국이 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구나, 하고 느낄 수 있었고 게다가 맛도, 아주 일품이었다. 어딜 가서 이런 최고급 미역국을 맛볼 수 있겠는가. 그저 감사하고, 죄송한 마음이 들 뿐이다.     

어머니가 챙겨주신 미역국


 우리나라에선 예로부터 출산한 산모에게 꼭 뜨끈한 미역국을 먹인다. 아무래도 출산 과정에서 피를 많이 흘렸을 테니 칼슘과 아이오딘이 많은 미역은 혈액순환에도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피를 맑게 하는 것은 물론 모유도 잘 나오게 하는 질 좋은 미역이 전국 곳곳에서 채취가 되니 미역국은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산후조리 음식이 되었을 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 그래서 생일날 미역국을 먹는 이유로 ‘낳아주신 어머니 은혜에 감사하라’라는 의미도 생겨난 게 아닐까. 물론 이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는 이들도 있다. 어느 유명 음식문화 평론가는 아무리 동방예의지국이라도 본인 생일날 축하 대신 효도를 강조하며 미역국을 먹는다는 해석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이에 대해 강한 반박의 어조를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러면 안 되나? 그냥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면 안 되는 건가?     


 생각해보면 부모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날이 일 년 중 며칠이나 될까 싶기도 하다. 어버이날이 있기는 하나 요상한 사회적 분위기가 감사의 마음보다 부담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어떤 선물을 드려야 하고, 금액은 어때야 하고, 그러면서 부모의 위치에 있는 이들끼리 비교 경쟁이 붙기도 한다. 이런 못된 감정들로부터 벗어나 오롯이 감사로만 하루를 채우기엔 생일, 내가 태어난 날이 딱이다. 생일이 겹치는 이가 아니고서야 내가 왜 부모님께 감사하는지 남들은 관심도 없을 테니, 이날만 한 날도 없다.   

   

 누가 뭐래도, 생일은 태어난 이를 축하하는 날이 아니다. 낳아준 이에게 감사하며 더 나은 삶을 영위하여 그들에게 보답하리라 마음먹고, 그리고 그 마음 그대로 실천하는 날이어야만 한다. 그냥 이건 적어도 나에겐 늘 그랬으면 좋겠다. 그래서 이 글에서의 당신은 오직, 어머니뿐이다.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그리고 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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