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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웅숭깊은 라쌤 Nov 12. 2023

빼빼로는 먹는 게 아니다

가장 보통의 레시피 - 소박한 식탁 위 발칙한 잡담들

 지구인 모두가 그렇게 챙기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엔 기념일이 참 많다. 상술인지 뭔지 하여간 매달 14일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데이는 물론 명절과 생일, 크리스마스, 핼러윈, 더불어 연인들의 경우 사귀기 시작한 날짜를 헤아려 100일, 200일 일정 기간이 지나면 그 날짜를 또 기념일로 삼는다. 말고도 스승의 날, 어린이날, 어버이날과 같은 달력에 표시되는 기념일도 있는데 이젠 심지어 11월 11일, 빼빼로 데이란 것도 생겼다. 거의 일 년 내내 거듭되는 축제의 연속이다.

 워낙 기념일이 많다 보니 이때 어떤 선물을 받게 될까 기대하는 마음이 커지는 게 사실이다. SNS가 활성화되어 있는 요즘 시대엔 뽐내기 위한 수단으로 그 선물이 활용되기도 한다. 고급 레스토랑에서 찍은 사진이나 고가의 명품들을 보고 부러움을 드러내는 이들도 종종 보게 되는데 반대로, 선물을 하는 처지에선 비용이나 선물의 종류를 고민하는 데에 큰 어려움이 따른다. 어쩌다 선물이 ‘부담’이란 이름으로 변질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차라리 빼빼로 데이는 속 편한 날이 아닐 수 없다. 빼빼로 데이엔, 빼빼로를 선물하면 되니까!     


 그런데 이게 웬걸? 출근했더니 학교에서 학생들이 빼빼로 데이를 기념해 동네 편의점에서 구매한 그 빼빼로가 아닌, 직접 만든 수제 빼빼로를 선물로 내미는 게 아닌가. 심지어 포장지에 이름까지 써서 ‘빼빼로 돌려막기’를 차단하는 치밀함까지 보여주었다. 

치사하게 이름을 쓰다니.

 빼빼로와 그다지 친밀함이 없는 나로선 받으면 매우 흡족해할 다른 누군가에게 전해주려 했으나 어쩔 수 없이 ‘관상용’으로 간직해야만 했다. 그런데 솔직히 이름까지 적힌 그 빼빼로를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지는 건 사실이었으니……. 선물은, 그게 뭐가 되었든 받으면 기분이 좋은 법이다. 황금 빼빼로도 아니고, 값비싼 고급 레스토랑 음식도 아니지만, 선물을 준비하며 낑낑댔을 아이들의 모습을 상상하니 기특하기도, 대견하기도, 고맙기도 했다. 그래서 그 마음을 더욱 잘 헤아리기 위하여 직접 빼빼로 만들기에 도전했으니!     


 인터넷에 검색하니 빼빼로 만들기 DIY 세트가 넘쳐나게 마련되어 있었다. 처음이니까 쉬운 방법으로 시도하는 게 맞겠다고 생각하며 가장 저렴한 세트를 주문했는데, 그 구성이 아주 알차고 방법도 자세히 안내되어 있었다. 뭐야, 할만한데?

 초콜릿을 중탕해서 녹이고, 스틱 과자에 초콜릿을 담그거나 혹은 고루 발라준다. 그리고 초콜릿이 굳기 전 겉에 야무지게 크런치나 견과류를 묻혀주면 끝. 진짜 끝이었다! 물론 잘 굳게 하려고 냉동실에 넣어두었다가 쟁반에 딱 달라 붙어버려서 떼는 도중 부러지는 녀석들이 적지 않게 있긴 했지만, 그래도 나름 성공이었다. 선물용 예쁜 포장지에 담아주는 센스까지 발휘하면 200% 만족 보장! 아, 정말 장사를 해야 하는 걸까. 제과점을 차려봐? 나도 모르게 괜한 자신감이 팍팍 뿜어져 나왔다.      

빼빼로를 만드는 과정
예쁘게 담아주세요:)


 빼빼로는 먹는 거지 주고받는 게 아니라는 말도 있던데, 직접 만들어보고 나니 빼빼로는 주고받는 게 맞다! 어차피 혼자 다 먹으면 살만 찌고 건강에도 안 좋을 테니, 사랑하는 사람이나 주변인들에게 마음을 담아 선물해보면 어떨까? 조리 과정이 어렵지 않고 재료 준비도 간편하지만, 받는 이들은 그런 걸 따지지 않을 것이다. 그저 상대의 깊은 마음을 헤아리고 정성 어린 선물에 감사할 뿐, 왜 먹지도 않을 걸 줬냐며 따지고 드는 이는 없을 게 분명하다.      


 혹시나 상대가 전해준 선물에 실망한 적이 있다면, 나는 얼마다 상대에게 베풀었는지를 헤아려보자. 여기서 주의할 점은, 그 베풂이 가격 측면에만 머물러선 안 된다는 점이다. 사랑이란 가치가 돈으로 측정되는 건 결코 아닐 테니까. 아니 그리고, 상대보다 더 주면 안 돼? 꼭 그렇게 비율이나 가격을 따져가면서 사랑하면, 그게 사랑이야?     


모든 것을 주는 그런 사랑을 해봐

받으려고만 하는 그런 사랑 말고

너도 알고 있잖아 끝이 없는걸

서로 참아야만 하는걸

사랑을 할 거야 

사랑을 할 거야

아무도 모르게 너만을 위하여

나를 지켜봐 줘 나를 지켜봐 줘

아무도 모르는 사랑을

-녹색지대, <사랑을 할 거야> 중     


 매일매일 특별하게 살아가면 얼마나 좋을까. 다만 그런 날들이 누군가로부터 사랑받는 날, 혹은 사랑을 확인하는 날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사랑을 전하고 사랑을 확인시켜 주는 날이 되었으면 좋겠다. 받으려고만 하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위로받기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며 사는 삶이 우리의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 것이라고, 나는 분명 확신한다.

 사실 짧은 문자 메시지 속 한 문장으로도 지구인들은 누구나 충분히 위로받을 수 있고 반대로 위로를 전할 수도 있으니 우리 모두 따스한 한 마디부터 실천해보면 어떨까?     


 “당신은 지금 정말 잘하고 있어. 그리고 항상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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