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종원이란 지구인이 있다. 대한민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고, 난 그를 좋아한다. 항간에서는 ‘그도 어차피 장사꾼이다’ 혹은 ‘대한민국 식문화를 망치고 있다’라고 비난하는 이들도 있으나, 장사꾼이란 건 결국 그의 사업수완이 좋다는 말이고 식문화를 망친다는 표현은 조금 과한 면이 있다. 좀 더 간편한 조리법을 제시하고자 애쓰고 있을 뿐이며 무엇보다 자신이 가진 음식에 관한 철학을 절대 누군가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골목식당>에서도 받아들일 수 없는 이들에겐 ―물론 그것이 갈등으로 이어지긴 했지만― 솔루션을 포기할 수 있는 선택지를 주곤 했다. 그러니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받아들이지 않으면 된다! 나도 절대 그의 모든 것을 ―특히 설탕에 있어서는― 그대로 답습하지 않는다. 더불어 이 지구인은, 대한민국 구석구석에 행복과 평화가 깃들기를 바라며 누구도 해내지 못할 실천가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질 않은가. 가진 사람이라고 다 그런 게 아님을 우린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기왕이면 사람의 선한 모습을 보려고 애쓰는 편이 개개인의 내적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도 좋을 것이다. 지적보다는 응원이, 지구를 더욱 밝게 만드는 방법이다.
그가 대중들에게 얼굴을 비칠 초창기 무렵, <마이 리틀 텔레비전>이란 프로그램에서 초간단 콩국수를 선보인 적이 있다. 사실 콩물 만들기는 워낙 까다롭고 번거로워서 쉽사리 도전하지 못한다는 문제가 있는데, 노력은 덜 들이고 맛은 비슷하게 낼 수 있는 비법을 알게 되었으니 이를 어찌 따라 하지 않으랴. 흔히 콩국수는 여름에만 먹는다고 생각하지만, 아니 왜 콩국수만 먹었을 거로 생각해? 콩국수는 거들 뿐, 돼지갈비 구워 먹고 나선 입가심으로 콩국수가 제일인걸?
사실 백주부(당시 프로그램에서 불리던 호칭)님께서 알려주신 레시피를 착안해서 새롭게 콩물 만들기를 시도했는데, 생각보다 결과물이 괜찮았다. 두부 한 모를 통째로 믹서기에 넣고, 그 두부 용기만큼 물을 한번 채운다. 백주부님은 물을 세 번 넣으셨는데, 난 그 대신 두유 한 팩을 넣었다. 두유도 콩으로 만들었으니 좀 더 콩 맛이 진하게 나지 않을까 싶었던 게지. 대신 백주부님 레시피에 들어 있던 땅콩버터는 생략. 땅콩버터는 괜히 참아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건 왜일까. 여하튼 통깨까지 듬뿍 넣고 재료들을 몽땅 갈아주면 거짓말처럼 콩물이 완성된다. 중간에 삶은 소면을 잘 깔아주고, 콩물을 살살 부어준 뒤 고명까지 올려주면 아주 고급스러운 콩국수 한 그릇 대령이오! 어때유? 맛있겠쥬?
그 와중에 오이는 또 왜 이리 많이..
자, 여기서 지구인들은 논쟁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 콩국수엔 소금이냐, 설탕이냐. 그런데 분명히 말하지만 여기서 굳이 망설일 필요가 없다. 난 무조건 콩국수엔 소금이다. 설탕을 넣는 건 상상도 해본 적이 없다. 그리고 그건, 잘못된 게 아니다. 특히나 콩국수와 늘 함께 곁들이는 김치, 김치와는 소금 넣은 콩국수가 훨씬 잘 어울린다. 누군가는 ‘콩국수에 설탕 넣어 먹는 사람이 진정한 맛잘알이다’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그건 그의 소신일 뿐 나의 소신은 틀린 부분이 없으니 그냥 그대로 밀어붙여도 된다. 소금파면, ―설탕파의 의견을 존중해주되― 소금이 맛있다고 당당하게 주장하자.
백종원이란 지구인에게 가장 강력하게 배울 수 있는 건 뭐니 뭐니 해도 뚝심이다. 남들이 뭐라 하든 자신의 소신을 믿고 있는 힘껏 밀어붙일 수 있는 용기! 그 소신이 옳은 일이기에 많은 이들의 지지를 받고, 응원을 받는 것 아닐까? 자영업자들을 위한 지역 경제 살리기, 음식점의 과도한 가격 거품 빼기와 양심 있는 가게 운영, 가맹점 수수료 인하, 세계에 한식 전파하기 등 그가 추진하고 있는 정책들은 참으로 칭송받아 마땅하다. 더군다나 온 국민이 그의 레시피를 따라 요리를 하는 모습을 보면 음식에 대한 노하우 역시 대단한 게 분명하다. 쉽게 맛을 내는 비법을 안다고 할까? 지구 곳곳을 다니며 음식 연구를 했다고 하는데, 그가 가진 음식에 대한 열정 역시 배우고 싶은 부분이다. 다양한 언어를 구사할 줄 아는데 그게 다 음식 주문 관련된 표현만 가능하다는 에피소드가 있을 정도니…….
강한 신념과 소신이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함으로, 혹은 개인적 이득을 취하기 위함으로 이뤄져선 안 되겠지만, 자기 주관이 뚜렷한 지구인은 분명 자존감이 높다. 주체적으로 삶을 설정하고 계획하여 그 단계를 밟아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설령 과정 중 실패가 뒤따르더라도, 후회도 결국 내가 해야 제맛이다. 그래야 오류를 수정하고 새롭게 장면을 펼쳐 나갈 수 있으니까.
다시 말하지만, 삶의 선택은 내가 주인이어야 한다. 그리고 외부로부터 강요받거나 타인에게 휘둘리며 억지로 삶을 영위하는 이들이 있다면, 과감히 초간단 콩국수를 만들어 먹어보길 권한다. 아주, 용기있게, 소금이든 설탕이든 팍팍 뿌려 먹기를.
고작 콩국수에 넣는 소금으로 소신있는 삶을 논한다는 게 조금 우습게 여겨질지 모르지만, 세상 모든 이치는 사소한 곳에도 다 녹아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요리를 한다. 당신과의 더 나은 삶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