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식에 충성하는 자, "給食, 忠"
진짜 행복한 사람은 ‘오늘 뭐 먹지?’란 고민을 매일 하며 산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 덩치가 큰 무언가를 좇는 그런 하루가 아니라, 소소하지만 소중한 것들을 조금씩 채워나가는 그런 삶. 별거 아닐 수 있지만 그런 순간들이 쌓이고 쌓여 거대한 행복을 만든다는, 마음가짐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말이다, 난 그들보다 훨씬 더 행복하다. 그 고민이란 단어 속 작디작은 부정적 의미조차도 완벽하게 차단해 주는 ‘급식의 세계’ 속에 살고 있으니까. 늘 다른, 그것도 맛과 영양을 고루 갖춘 식단이 누군가에 의해 매일매일 같은 시간 차려지는 마법. 게다가 생각지도 못한 낯선 세계 속 다른 인류의 음식을 접할 때도 온다. 이 어찌 행복이 아닐 수 있겠는가!
교직원 식당엔 들어서면 새 학년이 시작되고 처음 맞이하는 봄날의 그것처럼 은은히 퍼지는 온기를 느낄 수 있다. 한솥 가득 끓여내는 국물에서 모락모락 피어나는 증기에 얼굴을 대고 있으면 그 어떤 미스트도 흉내 낼 수 없는 촉촉함이 전해지기도 한다. 은색 식판에 밥을, 반찬을, 마지막에 국을 퍼 담는 동안엔 빨리 자리를 잡고 속을 든든히 채우고 싶은 욕망에 힘껏 휩싸인다. 그리고 비로소, 갖은 조합으로 한 숟갈 가득 음식을 담아 입안으로 가져가면 온갖 근심과 걱정이 사라지는 마법이 펼쳐지는 것이다. 아니 그런데 이 신성한 공간에서, 신비로운 순간에, 업무 얘기가 웬 말입니까! 먹는 그 순간만큼은 온전히 즐기고 싶다고요!
인류가 누릴 수 최고의 낙 樂이라 할 수 있는 ‘먹는 낙’은 쉽사리 포기할 수가 없다. 그런데 감히 나의 평화로운 점심시간을 와장창 깨부순 자가 있었으니, 교직원 식당으로 부리나케 달려 들어온 그의 정체는 다름 아닌 우리 반 반장이었다.
“선생님, 애들 싸워요!”
“밥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리는데, 이런 개 같은!”
위 발화는 10년이 지나도 여전히 잊히지 않는 실제 발화이다. 얼마나 점심시간을 사랑했으면 이런 상스러운 단어들이 입에서 튀어나왔는지……. 하지만 상스러움은 교실 속 장면이 더욱 그 정도가 심했는데, 한 녀석의 눈두덩이가 블루베리처럼 예쁘고 뽀얗게 익어 있었다. 그렇게 그날의 급식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대신 병원 이송과 학부모 상담이 빈자리를 채워주었다. 그래도 그게 더 인간적인 시절이었다. 치고받고 싸운 뒤 언제 그랬냐는 듯 다음날이 되면 녀석들은 야무지게 장난을 치며 힘껏 까부느라 정신이 없었으니까. 요샌 아이들 세계에 주먹질은 없다. 대신 학교 폭력 신고와 심할 경우 법정 다툼 같은 것들이 채워주고 있다. 애들 싸움이 부모의 전쟁으로 이어지는 참 삭막한 세상이다.
비록 급식이 사라지는 극심한 고통을 겪어야 했으나 청소년은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상태이기에 충분히 그러할 수 있고, 교사로서 올바른 성장을 도모해야 하는 책임이 있기에 역시나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장면이다. 그렇지만 말입니다, 그럼에도 말이죠, 밥 먹을 때 일 얘기는 정말이지 싫습니다! 한 번 더 말합니다, 먹는 그 순간만큼은 온전히 즐기고 싶다고요!
교사라는 직업은 특성상 점심시간이 온전히 보장되지 않는다. 제대로 쉴 수 있는 시간이 아니다. 물론 급식 덕분에 점심시간이 일반 직장인에 비해 더 길게 보장되는 측면이 있긴 하지만, 그만큼 남는 시간은 온전히 ‘일’로 환원된다. 선생님을 너무도 사랑하는 우리 아이들은 우릴 가만 놔두지 않기에. 특히 고등학생들은 내신 시험과 수능에 대한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므로 끊임없이 문제집을 들고 질문 폭격을 날린다. 게다가 담임 교사는 틈틈이 학생 상담도 해야 하고, 부장 교사는 틈틈이 회의에 참석한다. 그래서일까? 두 번 더 말합니다, 먹는 그 순간만큼은 온전히 즐기고 싶다고요!
물론 점심시간에 업무 이야기를 펼쳐낸다고 그걸 개인의 사상이나 인간성에 대한 비하로 연결 짓고 싶진 않다. 밥 먹는 순간에 다뤄야 할 만큼 시급한 사안일 수도 있고, 공허함을 깨려고 일부러 대화의 물꼬를 트는 나름의 노력일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밥 먹을 때 업무 얘기, 분명 서글픈 장면이 아닐 수 없다. 밥보다 일이 더 우선이어야 하는 상황은 대체 왜 만들어졌단 말인가. 하루에 고작 세 번 찾아오는 끼니마저도 온전히 즐길 수 없다면 무척이나 고달프고 고된 삶이다. 더불어 상대에게 대화의 물꼬를 틀고자 노력할 거였다면, 기왕이면 차라리 그 순간 함께 공유하는 급식 메뉴가 훨씬 더 괜찮은 주제가 아니겠는가. 이 음식 맛이 어떠하다, 이걸 이렇게 해서 먹으면 더 맛있다, 따위의 대화가 훨씬 더 나았을 텐데 말이다.
어쨌거나, 밥 먹을 때 일 얘기는 정말이지 싫다. 기왕에 펼쳐질 이야기라면 입맛을 돋우고 급식실의 온기를 해치지 않는 따스한 이야기였으면 좋겠다. 인생이 호락호락하지 않다지만 호락호락 아주 쉽게 흘러갔으면 좋겠고, 행복하게 살 수만은 없다지만 늘 행복하게만 살고 싶다. 별수 없이 그래야만 하는 때가 있다지만 그러지 않도록 별수가 생겼으면 좋겠고, 슬퍼서 눈물짓는 날 대신 기뻐서 웃음 짓는 나날들만 가득했으면 좋겠다. 결국 이 글은 즐겁고 행복한 나날에 대한 염원이자, 초라하고 쓸쓸한 인생에 대한 한탄이자, 더 나은 내일을 향한 발악이다.
그래서, 급식은 더욱 절실하다. 행운은 만나는 것이고 행복은 만드는 것이라고 하니, 내게 주어진 급식이란 행운을 끝까지 지켜 행복으로 유지하고자 애쓸 것이다. 더불어 내게 행복을 전해주는 수많은 존재들을 결코 놓치고 싶지 않고, 새로운 행복의 근원이 찾아왔을 때도 ―그들은 절대 사소하지 않기에― 기존의 것들을 흘려보내고 싶지 않다. 무한대로 뻗어가는, 한없이 쌓여가는, 그런 삶을 살고 싶은 것이다. 그러니 부탁드려요, 먹는 그 순간만큼은, 제발 함께 온전히 즐겨 보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