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식에 충성하는 자, "給食, 忠"
‘아재’라는 표현을 국어사전에서는 ‘아저씨를 낮춰 부르는 말’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낮춘다는 것이 비하한다고 여겨질 수 있으나 우린 이것을 오히려 친근감 있게 느끼기도 한다. 그런데 이건 좋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듣기 좋은 이야기도 되풀이되면 나쁜 말이 되는 것처럼, 아재 개그는 적당해야만 한다. 하지만, 아재 개그를 날리는 그들에겐 ‘적당히’가 없다. 쉴 새 없이 내뱉는 무차별 폭격에 모두들 사투를 벌이기 일쑤다. 그리하여 감히 외치노니 여러분, 밥 먹을 때 아재 개그는 정말이지 싫어요!
사실 아재 개그에도 역사가 있다. 1990년대 <최불암 시리즈>, <만득이 시리즈>가 기원이 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이후 ‘뚱딴지’, ‘우야꼬’, ‘땅콩찐콩’ 등 <만화 일기> 시리즈가 히트를 치며 ‘허무 개그’, ‘썰렁 개그’가 전성기를 맞이했다. 아마도 이러한 유행은 ‘유치하지만 피식 헛웃음이 나올 수 있는 개그’ 정도로 통용되었을 것이나, 안타깝게도 세월이 흐르며 조금씩 변질되어 버렸다. 아재 개그가 ‘부장님 개그’라 불릴 때가 있었는데 전혀 웃기지 않는 농담 따먹기 식의 개그에도 부장님이란 이유로, 억지웃음을 지어야 하는 데에서 만들어진 표현으로 생각된다. 아마 부장님은 그날 밤 본인의 유머 감각을 뿌듯해하며 기분 좋게 잠이 들었겠지. 한때 SNS상에 올라와 화제가 되었던 한 사연을 소개한다.
“교수님이 ‘오늘 메뉴는 산채비빔밥인가? 죽은채비빔밥보다는 낫지’라고 하니깐 조교들이 모두 웃는다. 나도 저런 권력을 손에 넣고 싶다.”
이 시대의 아재 개그를 날리는 그 ‘아재들’도 마찬가지다. 상대의 웃음이 억지인지 아닌지를 구분하지 않고 무작정 던지기만 하는 그들의 노력은 특히 점심시간에 힘껏 발휘된다. 자, 이번 기회에 급식과 관련한 당신의 소위 ‘아재력’을 테스트해 볼까? 오늘의 급식 메뉴가 ‘스파게티’라면 아재들은 어떤 개그를 날릴까? 삼, 이, 일, 땡! 놀랍게도 그들은 날씨 이야기를 한다.
“스파게티가 나온 걸 보니 오늘 날씨는 습하겠띠?”
뭐, 이런 식. 그나마 이 정도는 아주 무난한 수준이다. 메뉴에 버섯이라도 있으면 큰일이다! 버섯은 그들에겐 세상에서 가장 야한 음식이므로. 버섯, 다 버섯……. 성적 발언이 절대 단순 농담으로 치부되지 않는 요즘 세상에서 그러한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헷갈릴 정도로 불안감이 엄습한다. 이걸, 계속 들어야만 합니까!
아재 개그를 수시로 날린다는 건 ―받아들이는 이의 재미 여부를 떠나― 예의의 문제로 연결 지을 수도 있다. 본인이 권력자라는 인식을 가진, 타인을 대하는 태도가 아주 가벼운 이들이나 던지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허무 개그’, ‘썰렁 개그’의 전성기를 살아온 어른들에겐 아재 개그가 무척이나 흥미롭게 여겨지겠으나 지금 소위 MZ라 불리는 이들은 놀랍게도 그 시절에 ‘태어난’ 세대이다. 그들의 유머 코드는 기성세대의 그것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고, 그들의 웃음을 유발할 수 있는 키워드나 방향성은 어른들이 판단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닐 것이다. (나도 MZ가 아니라 그게 무엇인지 잘은 모르겠다) 그러므로 조금은 ‘조심할’ 필요가 있다. 내가 살아온 방식을 그저 나이가 어리고 지위가 낮다는 이유로 강요해선 안 될 테니까. 오히려 그들의 삶을 존중하고 이해하며 동화되고자 애쓰는 것이 한 살이라도 더 먹은 이들의 책임이자 의무 아닐까?
이렇게까지 이야기했지만, 사실 개인적으로 아재 개그를 그리 싫어하진 않는다. (따지고 보면 나도 아재긴 아재다) 어쩌다 한 번, 가끔 들리는 아재 개그는 아재 개그 탄생의 목적처럼 피식, 하며 웃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더군다나 나이를 먹을수록 소통의 대상이 부족해지는 이 땅의 아재들이 안쓰럽기도 하다. 오죽하면 이렇게까지 할까, 라고 생각하면 한두 번은 능히 참아줄 수 있다.
결국 결론은 하나다. 과하지 말자는 것. ‘적당히’를 모르겠다면 아예 하지 말자. 무리한 소통은 단절로 이어질지니 이 땅의 아재들이여, 아재 개그는 차라리 같은 아재들끼리 합시다! 서로를 이해하고 감싸줄 수 있는 최고의 상대는 비슷한 처지에 있는 누군가이지 않겠습니까? 김치전에 막걸리, 제육에 소주, 먹태에 맥주 뭐든 좋으니 아재들이여, 우리끼리 맘껏 취하며 힘껏 아재 개그를 날려보자고요!